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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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공동체의 중요성: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3 23:50: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019   
"공동체의 중요성"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자주 들곤 합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격과 성향이 천차만별이고, 생각과 생활방식도 달라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때론 보이지 않는 긴장과 갈등으로 골머리를 썩히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까지 살 필요가 있는가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사실 함께 산다는 것은 쉬운 일 같지 않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그 자체가 기적처럼 보입니다. 혼자 살면 아마 가장 편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차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사는 생활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느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특별히 수도 공동체 생활은 중요합니다. 그것은 복음화를 위한 중요한 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동생활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게 됩니다. 함께 아름답고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우리 베네딕도회의 일차적 소명이라 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함께 잘 살 수 있는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라 생각합니다.

함께 잘 살기 위해선 먼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형제들이 서로를 불신할 때 공동체는 분열되고, 공동생활은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도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넓어지기는커녕 갈수록 거칠어지고 사나워짐을 종종 체험합니다. 수도생활을 통해 우리는 사랑을 무기로 한 그리스도의 전사가 되어야 하지만, 잘못되면 사랑 대신 미움과 증오의 무기를 갖게 되고 공격적, 전투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소위 지존파, 막가파가 되는 것이지요. 모든 희망을 상실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입니다. 왜 그런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불신이 가장 큰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공동체에 대한 불신, 지도자에 대한 불신, 형제들에 대한 불신이 우리 마음을 자꾸 좁게 하고, 공격적이고 전투적으로 변하게 한다고 봅니다. 그럼 왜 불신하는가? 불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먼저 공동체나 단체 안에서 행해지는 어떤 일들이 분명한 원칙이나 기준 없이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이루어질 때 불신이 생겨납니다. 또한 규칙이나 원칙이 일관성 없이 사람에 따라 달리 적용될 때 그렇습니다. 살다보면 종종 가치의 혼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배운 대로, 원칙대로 생활하려 하다보면 융통성이 없다느니, 융화하고 화합할 줄 모른다느니, 현실감이 없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반면 장상이나 형제들의 눈을 피해가며 적당히 살고, 앞과 뒤가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달라도 눈에 띄지 않고 거스르지만 않으면 그 사람 대인관계가 원만하다, 현실감이 있다 하고 쉽게 치부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간혹 모범적인 수도자, 훌륭한 수도자로 인정받을 수도 있습니다.

불신은 또한 장상과 수하, 형제들 상호간의 통교부족에서 온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서로가 모두 동상이몽 식이지요. 많은 경우 윗사람들의 생각과 아랫사람들의 생각이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대화가 없어서 그렇다고 봅니다. 대화가 없으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불신하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금 우리 공동체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만큼 살아가는 것도 어찌 보면 하느님의 은총이요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수도원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종종 거룩하다고 하거나 수도원을 천국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온갖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칫 여기에 속기 쉽습니다. 이들의 말만 믿고 자만하거나 자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들이 본 것은 우리의 겉모습일 뿐 속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첫선때 상대에게 첫눈에 반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눈이 멀게 됩니다. 그래서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것을 사랑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중 하나인 '눈먼증'이라 합니다. 그러다 결혼해 살면서 그동안 못 보았던 속 모습을 보게 되면 실망하고 심지어는 쪽박이 깨지게 되지요.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칭찬하는 소리만을 믿고 그래도 우리가 잘 사는구나! 교회에서 그런 대로 큰 역할을 하고 있구나! 하고 자만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의 속 모습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속을 늘 되돌아보고 겸손해져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우리 현실을 좀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데도 복잡하고 골치 아프다고 그냥 지나치면 반드시 곪아터지게 됩니다. 안보고 안 들으면 가장 속이 편할 것입니다. 그러면 스스로는 평화로울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실상, 공동체의 실상을 못 보게 됩니다. 어떻게 썩어가고 있는지, 어떻게 병들어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상처가 악화되면 나중에 도저히 치유불능의 상태가 옵니다. 안 본다고 결코 문제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당면 문제에 직면하고 용기 있게 대처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현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솔직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수도원에 처음 오는 신자들이 우리보고 하는 말만을 액면 그대로 믿고 단순히 자위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겉과 속이 같아지도록, 그 차이를 줄이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우리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서로에 대한 신뢰부족이라 생각합니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면 공동체가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를 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어떻게 살려야 합니까? 우선 위에서부터의 솔선수범이 우선적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윗물이 오염되면 아랫물도 자연히 오염되기 마련입니다. 소위 정치인들은 이런 말을 마치 특허나 낸 듯이 쉽게 내뱉곤 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합심해서 이 어려운 갱제난국을 극복해 나갑시다. 우리 모두 사치와 낭비를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맵시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외유에다 고급 호텔, 고급 술집, 고급 식당에서 돈을 물 쓰듯 뿌려댑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행동 앞에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그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도생활의 쇄신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결코 누구도 남에게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쇄신은 남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해야 합니다. 공동체를 위한 근검절약이나 규칙준수도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입니다. 따라서 나부터 솔선수범 해야 합니다. '우리 한번 잘 살아 봅시다'라고 말하는 그 사람부터 잘 살아야 합니다. 적어도 그런 노력의 흔적이라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에 설득력이 있습니다. 솔선수범이 생명입니다. 특별히 윗사람들, 중책을 맡은 사람들이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합니다. 형제들을 위해 자기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이때 공동체 안에 불신이 사라지고 신뢰가 회복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의 두 번째 문제는 힘이 너무 분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활동들이 너무 많고 다양하다 보니 우리의 힘이 외부로 분산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동체는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으로는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또 밖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한다 할지라도, 공동체가 무너지면 모든 것도 끝장입니다. 그래서 먼저 공동체를 살려야 합니다. 공동체를 강화하고 살리는 일이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리라 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시선을 이제 밖에서 안으로 돌리고, 흩어진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기술을 배우는 것도 일차적으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 다음 여력이 있을 때 교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겠지요. 비록 공동체 밖에서 교회를 위해 일한다 하더라도 공동체와의 연결 없이 이루어지는 일들은 모두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공동체와의 연결 속에서 일해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도생활이 개인의 이상이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공동체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공동체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또 공동체로부터 힘을 얻어야 합니다. 각자 뿔뿔이 흩어져 밖으로만 돌 때 공동체는 약화되고 지속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밖에서 성인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는 쉽습니다. 반면 안에서 인정받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먼저 집 안에서 인정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공동체를 크고 작은 여러 기어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큰 기계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기어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갈 때 큰 동력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서로 맞물려 있지 않고 겉돌면 동력 전달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기어들입니다. 우리 역시 서로를 신뢰하고 힘을 모을 때 공동체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를 위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최근 제가 씨름하고 있는 가장 큰 화두입니다. 공동체에 경제적 수입을 많이 올리는 것인가? 실제 이를 위해 우리는 각 소임지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합니다. 경제적 측면도 현실적으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면이라 생각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듯이 먹고살아야 기도도, 봉사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제적 기여로 공동체에 대한 우리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특별히 후배들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컨대 공동기도나 공동실습에 함께 해주는 것, 더 나아가 생활의 모든 면에서 먼저 솔선수범 하는 것, 공동규칙에는 치외법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제 생활로 보여주는 것 등이라 봅니다. 치외법권을 누리는 사람이 있을 때 형제들은, 후배들은 혼란스러워지고 힘이 빠지게 됩니다. 또한 길이나 복도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 것, 남의 침묵과 고요를 생각해 문을 조심스럽게 여닫는 것,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이나 시설을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것, 형제들에 대한 최소한의 봉사인 주간 봉사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 등입니다. 이런 것들은 공동체에 활기와 생명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이런 드러나지 않는 작은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를 위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처럼 공동체를 위하는 것은 어떤 거창한 일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형제들과 후배들을 위해 이런 보이지 않는 마음 씀씀이와 모범적 자세인 것입니다.

만일 원칙보다는 편법이 우세하고, 예외가 일상적인 것으로 통용될 때, 규칙을 지킨다는 것이 우스워 보이고, 규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특별히 동일한 규정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때, 모든 형제가 규칙 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수도자의 가난과 순명, 겸손과 인내, 원칙이 강조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것으로부터 완전히 감면 받은 것처럼 살아갑니다. 만민은 법 앞에 평등하듯이 모든 이가 규칙 앞에 평등해야 합니다. 동일한 규정이 이 사람과 저 사람에게 다르게 적용된다면 그 규칙은 힘을 잃게 됩니다. 공동 규칙은 지위나 능력 등 그 대상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우리 삶의 지침이라 생각합니다. 규칙에 치외법권 지역이 존재하는 한 아무리 규칙을 강조해도 별 설득력이 없습니다.

공동체에 희망을 걸어봅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서로 신뢰하며 힘을 모아 공동체를 살리고자 노력할 때 분명 공동체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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