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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일 강론]

‘깨어있음’은 ‘사랑하고 있음’이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대림 제1주일입니다. 대림시기는 회개와 선행으로 재림하실 예수님을 깨어 기다리고, 희망과 설레임으로 우리 곁에 오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지금 우리 곁에 날마다 찾아오시는 사랑의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다시 태어나실 수 있도록 마음을 비우고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해마다 대림절을 시작하지만 지난해의 시작은 오늘의 시작과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4주간의 긴 피정을 시작하는 오늘, 더욱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 안에 주님께서 탄생하실 수 있도록 다른 곳에 두었던 나의 마음을 주님께 되돌리고, 깨어 기도하며, 나눔과 선행의 실천을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어 주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이 미사 중에 함께 기도하도록 합시다.

(아울러 오늘 영명 축일을 지내는 전 안드레아 부원장 수사님과 윤 안드레아 수사님을 비롯한 안드레아 축일을 맞으시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도 이 미사 중에 기도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를 향한 나선형의 삶인 수도생활과 교회 전례력

제가 처음 수도원에 입회한지 며칠 되지 않았던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어느 신부님께서 수도생활에 대해 소개해 주시면서 칠판에 나선형의 원을 크게 그리셨던 기억이 납니다. 밖에서부터 큰 원을 그리셔서 가운데 하나의 점에 이르기까지 반복해서 촘촘하게 선을 그리시면서 수도생활은 이와 같다고 하셨어요. 즉 원과 같이 수도원에서의 일상은 똑같이 반복되는 기계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의 점, 즉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나선형의 삶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일상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실은 어제와 다르며 멈추지만 않고 계속 그 길을 걸어간다면 조금씩 조금씩 주님을 향해 가까이 갈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대림시기로 교회력으로 한해를 시작하는 오늘 문득 그 나선형의 수도생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교회 전례력도 늘 반복되는 듯하지만, 실제는 하나의 종착지를 향한 나선형의 여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해에도 대림절을 지냈고 파스카의 시기를 지냈지만, ‘오늘의 나’는 ‘지난해의 나’가 아니기 때문에 같은 말씀이라도 지나쳤던 지난해의 말씀이 올해는 더욱 강하게 와 닿기도 하고, 지난해에 강하게 느꼈던 것이 올해는 무덤덤해질 수도 있습니다. 한 해, 두 해 그렇게 교회 전례력 안에서 육화와 파스카의 신비를 묵상하며 예수님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갈 때, 우리는 예수님을 참으로 닮아 그분과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 여정도 결국은 주님과 일치하여 참된 행복을 영원히 누리는 것이 그 목표이듯이, 교회 전례력도 예수님과의 일치라는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지난해와는 다른 올해의 새로운 시작, 즉 나의 육화와 나의 파스카를 지향하며 우리에게 은총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전례 안에서의 “오늘”이란 말은 “현재화”(Anamesis)라는 의미를 지니며, 그 전례를 지금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로 변화시켜 주는 상징적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2. ‘깨어있음’은 ‘사랑하고 있음’이다.

형제. 자매 여러분, 교회 전례력은 대림절을 시작하는 ‘오늘’, 4000년을 고대하며 메시아를 기다렸던 유대인과 같이 우리도 간절한 마음과 그분을 알아 뵈올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 날 심판 때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세상과 나 자신에게만 쏟았던 이기적인 마음을 주님께 되돌리고, 깨어 기도하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사랑과 정의를 나누고 실천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기다림의 시기를 마칠 즈음에는 고대하던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새롭게 태어나 우리가 기쁨과 평화 가운데 작은 예수님으로서의 삶을 살며 세상에 빛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4주간의 긴 피정의 첫 주인 오늘의 화두는 “깨어있음”입니다. (둘째 주는 ‘회개’, 셋째 주는 ‘기쁨’, 넷째 주는 ‘탄생 준비’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는 구원 받았으며,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종말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셔서 시작된 구원을 완성해 주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깨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약한 우리는 언제 오실지 모르는 그분을 깨어 기다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과 자신에게 더 많은 마음과 관심을 쏟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약한 우리들에게 교회 전례력은 다시금 경각심을 일깨워 줍니다. 그분께서 우리 곁에 언제 오실지 모르니 깨어있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깨어 있음”이라는 말을 가만히 묵상하다보면, 그것은 바로 “사랑하고 있음”과 같은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오심을 ‘깨어 기다려야 한다’는 말은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사랑이신 주님을 깨어 기다리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사랑하고 있어야 하며, 사랑을 살아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 가운데 그분을 만나는 길은 ‘그분처럼 사랑할 때’이며, 사랑하고 있음, 그것은 바로 그분을 만나고 있음이요 그것은 ‘깨어 그분을 기다리고 있음’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이 바로 그분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동안 해야 할 과업이 있다면 바로 그분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워 가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깨어 사는 삶일 것입니다.

만약 지금 가만히 눈을 감고 예수님께서 내 앞에 계시다고 상상해 볼 때 기쁨과 감사, 반가움과 충만이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요, 깨어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앞에 계신 그분 앞에 부끄러움과 죄스러움, 후회감이 가득 느껴진다면, 지금 깨어 있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양심은 살아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앞에 계신 그분 앞에 원망과 증오가 가득하거나, 그분께서 내 앞에 계신다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면 내 영혼이 메말라 버리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부터 돌을 버리고 막달레나 여자 마리아와 예수님 곁을 떠났다는 요한복음의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처럼 우리 모두는 세월 앞에 많은 죄와 두 얼굴의 위선과 끝없이 솟아나는 욕심 가운데 자신의 나약함을 누구보다 잘 알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림절을 시작하는 오늘 다시 우리 영혼을 두드려 졸거나 잠자고 있는 나를 깨워 그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속에 움켜진 미움과 증오의 돌을 던져 버리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으로 용서와 나눔의 삶, 곧 사랑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때 지금 내 영혼은 다시금 깨어 날 수 있을 것입니다.

3. 사랑이신 그분과 하나 되는 사랑의 여정 - 우리 사랑은 나선형의 사랑

자매. 형제 여러분, 우리가 어린 시절에 세상을 바라보던 것과 지금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참 많이 변했음을 느낄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안목이 커가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갈수록 주님을 향한 우리 각자의 영적인 면도 더 풍요로워지고 그 사랑을 닮아갔으면 좋을 텐데, 어떤 이들에게서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사랑도, 성인처럼 원숙한 사랑도 찾아 볼 수 없는 그저 욕심과 위선적 사랑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예수님께 가까이 가고 있는가는 그 사람의 삶에서 저절로 풍겨 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언제나 ‘얼마나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있느냐?’는 것일 겁니다.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시하거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함부로 빼앗고 억누르며, 속이며 상처 주는 가운데 점점 사랑의 궤도에서 벗어나 스스로 썩은 냄새를 풍기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받은 상처를 용서하지 못해 증오와 미움의 세월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궤도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위선과 이기적인 일상, 미움과 증오의 일상을 벗어나 “주님을 향한 사랑의 궤도”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듯 한 일상이지만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비워 새롭게 가다듬고 주님을 향한 사랑의 궤도를 따라 다시금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일 겁니다. 그 길은 반복되는 듯 지루한 길이지만, 나선형처럼 그 가운데 계신 참된 사랑이신 주님께로 우리를 인도해 줄 것입니다. 새롭게 대림절을 시작하며 내 삶의 궤도를 점검하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며 묵묵히 그분을 향해 우리가 가야할 본래의 길을 홀로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은혜를 청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함께 걸어갈 때 그 길을 가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바로 사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처럼 사랑하며 그분께서 가신 사랑의 길을 걸어가는 삶이 바로 깨어 사는 삶이며 그러는 가운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은총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의 성탄을 맞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품고 4주간을 기다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따뜻한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 맡기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