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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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변화와 만남: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3 23:48: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846   
"변화와 만남"

오늘은 '변화와 만남'이란 주제로 제가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변화합니다. 우리는 체험으로 이러한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변화하지 않고 현재의 상태로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일 변화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죽은 것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죽음만이 변화를 멈추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변화한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육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반드시 긍정적으로 변화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변화될 수도 있다는데 있습니다. 긍정적인 변화를 이른바 진보 또는 성장이라 하고 부정적인 변화를 후퇴 또는 퇴보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한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각자 잃은 것도 있을 것이고, 또 얻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득보다 실이 더 많다면 부정적으로 변화한 것이고 실보다 득이 더 많다면 긍정적으로 변화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 우연히 제 자신을 바라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매일 마다 양심성찰을 하지만 일상에 쫓기다보니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의 제 모습이 지원자 때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져 있다고 느꼈습니다. 지원기 때의 순수한 마음과 열정은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리고 남은 것은 무디고 완고한 마음과 나태와 안일뿐이었습니다. 마음의 평화와 기쁨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순간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살려고 수도원에 들어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가? 이렇게 되어 간다면 이 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수도생활을 할수록 오히려 예전보다 못해진다면 분명 이 생활 자체에 문제가 있든지 아니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저는 부정적으로 변화된 제 자신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수도원에 입회했을 때와 현재의 내 모습을 비교해 볼 때 각자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변화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변화되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지원기때의 그 순수와 열정이 아직 남아 있는지, 초기의 인간적, 정서적 결점들은 개선되었는지 아니면 더 자라나 버렸는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삶은 과연 이타적이고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바뀌었는지 진지하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버려야할 것과 간직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간직하고 키워가야 할 것은 수도생활을 시작할 때의 초발심 즉 순수와 열정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수도생활은 올바른 방향으로 설 수 없고 또 끝까지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초기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끝까지 견지하는 수도자야말로 참으로 존경할만한 수도자가 아닌가 합니다. 또한 정직성, 성실성, 단순성, 소박함, 검소함 등도 우리가 간직하고 키워가야 할 것들입니다. 흔히 이런 말을 듣곤 합니다. "수도생활을 하려면 고집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집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고집이 있습니다. 이것을 일명 똥고집 혹은 옹고집이라 합니다. 즉 남의 생각과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과 입장만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을 죽이는 고집입니다. 또 아직 세월에 때묻지 않은 어린 후배들에게 마치 도통한 사람처럼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선배들도 예전에는 다 너희들처럼 생각했고 생활했지." 그러면서 속으로 "녀석들 얼마나 가나 보자."하고 말하곤 합니다. 아름답고 좋은 것들은 결코 한때 간직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말끔히 반납해 버리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키워가야 할 것들입니다. 오히려 이런 옹고집과 타성이 우리가 반납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버려야 할 것 중 이중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말과 행동이 다르고, 여기서 한 말과 저기서 한 말이 다르고, 이 사람에게 한 말과 저 사람에게 한 말이 다른 것입니다. 예컨대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말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위 아부근성으로 나타납니다. 즉 자기와 이해관계가 있고 힘있는 사람에게는 상냥하고 굽실거리지만, 힘없는 소위 별볼일 없는 사람은 마구 짓밟고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근성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 안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진급하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이런 처세술로 자신을 위장하며 살아갑니다. 실로 비참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도 있을 수 있는 이런 이중성은 공동체를, 수도생활을 파괴하는 독소가 됩니다. 또한 자리와 감투에 대한 집착, 시기와 질투심, 나태와 안일, 교만 등은 우리가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괴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심 없는 깨끗하고 순수한 인간,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것은 취하고 키워가되 나쁜 것은 버리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함께 사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있던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 둘 잃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흔히 남들과의 비교와 경쟁에서 나옵니다. 이는 공동생활의 부정적 측면입니다. 예컨대 누가 형제들을 위해서 보이지 않게 선행을 실천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내가 노력해 보아야 어떤 변화도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왜 나만 바보처럼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강한 회의가 일기 시작합니다. 소위 본전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서 이제까지 하던 선행을 멈추게 됩니다. 공동생활은 이처럼 우리에게 부정적 작용을 미쳐 우리를 퇴보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변화에 있어 만남이 중요합니다. 만남은 한 인간의 삶을 엄청나게 좌우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 '그 부모에 그 자녀'란 말이 있습니다. 훌륭한 스승에게서 훌륭한 제자가 나오고 훌륭한 부모 밑에서 위대한 인물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대개 위대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스승이나 부모 또는 벗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형제들을, 어떤 공동체를,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훌륭한 수도자로 클 수도 있고 또 괴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먼저 형제를 잘 만나야 됩니다. 매일 누구와 더불어 생활하고 대화를 나누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의 질은 달라지게 됩니다. 혹시 누가 나를 만나서 변질되고 엉뚱한 길을 가게 한 일은 없는지, 내가 남긴 발자취가 다른 형제에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공동체 역시 중요합니다. 수도 공동체는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사회나 정치 단체와는 다릅니다. 이해관계를 떠나 신앙 안에 하나로 모인 단체입니다. 따라서 구성원들간에 인격적인 나눔과 친교가 필수적입니다. 형제들간에 또 윗사람과 아랫사람간에 진정한 인격적인 통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구성원들간에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공동체라면 그건 결코 참된 공동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사회나 정치 집단과 하등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동체에서는 남의 눈치나 보고 자기 이권만을 챙기는 얄팍한 처세술만을 배우게 됩니다. 끝으로 지도자도 중요합니다. 지도자의 의식과 성향 그리고 인격은 아랫사람들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도자가 어떤 의식과 성향 그리고 인격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아랫사람들은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예컨대 올바른 분별력과 결단력을 지닌 지혜로운 지도자 밑에서는 훌륭한 제자들이 배출되지만 그렇지 못한 지도자 밑에서는 소인배들만 생겨납니다. 소위 지혜로운 임금 밑에는 충신들이 있고 어리석은 임금 주위에는 간신들과 모리배들이 들 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도자는 특별히 앞에서 입에 단 말을 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하고 쓴 말을 하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만남은 중요합니다. 좋은 형제, 좋은 공동체, 좋은 지도자를 만나면 그만큼 좋은 수도자가 될 확률이 큽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결국 관권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인생은 자기가 가꾸어 가는 것이고 죽어서 각자 자기 삶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노력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어찌 보면 정작 우리가 만나야 할 분은 하느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분을 제대로 만날 때 우리는 인격적, 영적으로 성숙된 인간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종종 "내가 지금 왜 이곳에 있는가?"라고 자문하곤 합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갖고 싶은 것 갖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하지 않고 이렇게 불편하게 살고 있는가?" "왜 사소한 것 가지고 서로 아귀다툼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와 같이 인간적, 영적으로 성숙되고 완전한 인간으로 변화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수도생활은 우리가 그러한 변화에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생활을 통해 점차 성숙된 인간으로 변화되어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분명 이 생활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기쁨과 평화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밑지는 장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수도생활에서 참 기쁨을 찾지 못한다면 스스로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만일 그러한 깊은 성찰 끝에 길을 잘못 들었다는 확신이 들었다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더 늦기 전에 자기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수도원 안에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길에 최선을 다해 응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디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로 사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를 지금 이곳에 붙들어 매는 끈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이나 공부 아니면 남들의 시선이나 가족 친지들의 기대를 꺽을가 하는 두려움 또는 밖에 나가 먹고 살 걱정 때문일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를 붙들어 메는 끈이 하느님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끈을 과감하게 끊고 하느님이라는 끈으로 우리를 묶어야 합니다. 하느님 외에 다른 끈은 결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조금만 시련이 닥쳐도 쉽게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만이 매일의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여기에 붙들어 메는 유일한 이유이자 끈이어야 합니다. 수도생활은 참으로 이 생활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결코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억지로 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하려하면 탈이 납니다. 억지로 할 때 기쁨과 평화가 없고 매일 인상만 글고 살게 됩니다. 진정 수도생활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이 생활을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 서원에 묶여 있고 또 그것을 파기해서도 안되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불가(佛家)의 묵계(默契)에 깊이 공감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 또 수도생활을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만이 이 생활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스스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베르나르도, 너는 왜 이곳에 왔느냐?" 내가 지금 왜 여기 있는지를 매번 새롭게 인식함은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를 나태와 안일에서 깨어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사부 성 베네딕도의 다음 말씀을 매번 깊이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구여, 그대는 무엇을 위해서 왔는가?"(RB 60,2) 즉 나는 과연 무엇 때문에 이곳에서 살고 있는가? 이곳에서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우리가 이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 우리는 결코 퇴보하지 않고 점차 긍정적으로 변화되어 하느님께 나아갈 것입니다. 이 물음은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하나의 중요한 화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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