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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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3주일(나해)-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릅시다: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3 23:44: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186   
연중 제3주일(나해) 강론(1997. 1. 26)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릅시다"

제 1독서: 요나 3,1-5,10
제 2독서: 1고린 7,29-31
복 음: 마르코 1,14-20

"종교환자"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10여년 전 제가 군에서 들은 말입니다. 종교인에 대한 군대식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종교병에 걸린 환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개신교 신자는 개신교 환자, 불교 신자는 불교 환자, 가톨릭 신자는 가톨릭 환자가 됩니다. 왜 하필 '환자'인가? 사실 '신자'와 '환자'는 말마디 하나 차이이지만 그 내용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환자'라는 말은 바로 종교인들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맞다는 생각도 듭니다. 종교는 사회를, 세상을 치유하는 기능을 지녀야 하건만 요즘 우리 사회를 볼 때 치유는커녕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모습을 적지 않게 보기 때문입니다. 치유자가 아닌 치유 대상이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기복적이고 개인주의적 신앙,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생활, 불의에 대한 침묵, 역사의식의 부재, 부와 권력과의 결탁 등 이 모든 것들이 바로 광신자, 사이비 신자를 만드는 종교병의 원인들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비쳐지고 있습니까? 혹시 종교병에 걸린 '그리스도교 환자'로 비쳐지고 있지는 않는지요? 왜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쉽게 이 병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부르심과 응답이란 주제로 참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길에 대해 생각해 볼까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첫 제자들을 뽑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호수가를 지나가시다가 네 명의 어부를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내 뒤를 따르시오. 당신들이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소."(마르1,7) 보자마자 갑자기 자기를 따르라니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자를 뽑는 예수의 독특한 방식입니다. 그분의 부르심은 이처럼 단도직입적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명령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사람 보는 눈도 우리와는 분명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특별히 잘난 데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일개 어부였을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무얼 보시고 이들을 복음선포의 도구로 뽑으셨겠습니까?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대로라면 좀더 재능 있고 많이 배운 사람이었어야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제자를 뽑으신 기준은 우리 기준과는 다릅니다. 그분은 사람의 겉모습을 보시지 않고 내면을 보셨습니다. 겉으로는 모두 볼품 없는 사람들이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의 단순하고 순박한 마음을 보셨던 것입니다. 이런 마음만이 복음의 씨앗을 받아들여 싹틔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 복음은 예수의 부르심에 그들이 '즉시' 따랐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고 이것저것 이해타산을 따진 끝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응답에는 일말의 망설임이나 지체함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예수가 내세운 조건은 단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주겠다는 것뿐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들은 이미 소문을 듣고 예수가 혹시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기대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낫선 사람의 부름에 그렇게 선뜻 응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아마도 그들의 단순하고 순박한 마음이 이런 즉각적인 응답을 가능케 하지 않았나 합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예수를 메시아로 알아보게 하였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마음의 단순성과 순수함은 부르심을 받고 또 이에 응답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지 못하면 부르심을 받는 것도, 이에 응답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 이것은 부르심과 응답을 위한 결정적 요소입니다.

그들은 또한 예수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이는 이전 삶과의 완전한 결별 즉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꿈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니느웨 사람들은 참된 회개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마음을 바꾸어 하느님께 돌아섰습니다. 오늘 전례의 강조점은 바로 여기에 곧 회개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십니다(마르꼬1,15 참조). 회개의 삶은 바로 예수를 따르는 삶입니다. 이 삶은 '모든 것'을 버려야 가능합니다. 즉 모든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와 질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특별히 버려야 할 것들은 현세적 쾌락과 욕망, 인간적 야심과 탐욕, 그리고 부, 권력, 학벌과 같은 온갖 세속적 가치들입니다. 세례와 수도서원은 이에 대한 공적인 약속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례와 수도서원 후에도 우리가 버린 것들을 새롭운 형태와 교묘한 방법으로 다시 하나 둘 주워 모으려 합니다. 그래서 힘과 권력을 지향하고 높은 곳으로만 올라가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힘없고 낮은 사람을 무시하고 짖밟습니다. 또 안락한 생활을 추구하고 재물에 집착합니다. 이런 세속적 가치 추구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따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마음과 정신을 병들게 하고 윤리적 타락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종교병입니다.

많은 사람이 '버림' 없이 예수를 따르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세상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오로지 한 가지 일에 투신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이 땅에 그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제2독서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사로부터 초탈한 삶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삶은 분명 예수의 제자들이 걸어야 할 길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 선포와 건설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실제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공통된 전제가 있습니다. '버림'이 없거나 이미 버린 것들을 다시 주워 모을 때 사이비 신자 곧 종교병 환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비장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얼어죽을 각오', '맞아 죽을 각오', '굶어 죽을 각오'. 이는 빨치산의 3대 각오입니다. 그들은 좋은 세상,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이런 비장한 각오로 혁명에 투신하였습니다. 하물며 이런 현세적 행복보다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의 투신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계속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나서야 합니다. 그때 '종교 환자', '그리스도교 환자'가 아닌 참된 종교인,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사회나 공동체가 '신자'가 아닌 '환자'들로 가득찰 때 그 사회와 공동체는 병들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의 네 어부들과 같이 우리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나섭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사심 있는 불순한 마음으론 결코 예수의 부름을 듣고 응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부르심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잠자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 뒤를 따라 오너라"고. 이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소리는 수많은 소음 속으로 묻혀 버리고 말 것입니다. '버림'과 '따라나섬'. 이것은 우리 삶을 통해 계속됩니다. 우리는 최종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길을 떠나야 합니다.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그분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그분은 그 길에 우리를 동행하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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