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강론

우리 사람 안에 담긴 하느님의 신비

                                                                                            박 안셀모

미사 도입부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묵상하며

구원의 역사 안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그 기묘한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날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는 그리스도교 구원에 대한 근본 진리이며,

우리 삶에 중심이 되는 신비입니다. 우리는 매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가슴에 십자가를 세기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본질인 “사랑” 안에서 드러나는 이 신비적 관계에 참여함으로서

구원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늘 우리를 새롭게 사랑으로 창조해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

그 사랑을 전해 주시는 예수님,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해 주시는 성령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하도록 합시다.

강론

찬미 예수님!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삼위일체라는 말은 한 하느님이 세 '위격'(位格, upostasis, persona, subsistentia)으로서 존재하는데,

이 위격들은 하나의 하느님 본성(本性, phusis, natura)이고, 하나의 본질(本質, ousia, essentia)이며,

 하나의 실체(實體, substantia)라는 말입니다.

이 세 위격들은 동일하고, 동일하게 영원하고 전능합니다.

하느님 안에는 실제로 구별되는 관계(關係, relatio)가 있으며, 이 위격들은 서로 구별됩니다.

또한 각 신적 위격은 전적으로 다른 위격들 안에 존재하며,

세 위격들이 각기 하나의 참 하느님이십니다.

이러한 내재적 삼위일체론은 사람들을 하느님과 더 소원해 지게 했다는 지적을 받으면,

칼 라너와 몰트만을 거쳐, 이레네오와 같은 교부들의 가르침을 토대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그 구원의 신비 안에

한분이신 하느님께서 창조주 성부와 구원자 성자, 그리고 성화와 협조자이신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당신을 계시해 주셨다는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론이

내재적 삼위일체론을 보완하여 하느님의 신비를 설명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교리서나 사전을 보면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바로 바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딱딱한 이런 배움은 각자에게 맡기고,

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신비가 구체적으로 우리 삶 안에 어떻게 실현되어가는 지에 대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무(無)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이후로 당신의 모상을 지닌 인간을

당신 사업의 도구로 사용하시고, 인간의 역사에 함께 하시며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닮았다면 우리 인간들 안에도 서로 다르나 하나를 이룰 수 있는 신비스런 모습이 담겨져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사람 안에 담긴 하느님의 신비”라는 주제로 묵상한 것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요즘 저는 자전거를 타고 장충동 분원에서 정동 사무실로 출퇴근 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한국 남자 수도회 장상협의회 사무국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이 서울 정동에 있기 때문에, 저희 수도원의 서울 장충동 분원에서 머물면서 소임을 하고 있습니다.

성소 담당자라서 주말이면 왜관 본원에 내려와 성소자들과 젊은이들을 만나고 있구요).

복잡한 지하철보다 훨씬 자유롭고, 운동도 되어서 요즘 출퇴근 시간이 즐겁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시청 앞 광장으로 가는 길에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참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멋지게 잘 차려 입고 서울 나들이 온 노(老)부부가 덕수궁 앞에 있었는데,

양복을 입은 할아버지는 약주를 한잔하셨는지, 모자를 얼굴에 묻고 길에 누워서 쉬고 계셨고,

바로 그 옆에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앉아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의 표정이나 태도가 다른 사람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대게 남편이 그렇게 길바닥에 누워있으면 창피하기도하고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할 텐데,

그 할머니는 전혀 그런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남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한적한 곳으로 가던지, 아니면 화를 내며 남편을 버려두고 갈 수도 있을 텐데,

그 할머니는 할아버지 바로 옆에 어떤 부끄러움이나 원망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앉아 계시면서

할아버지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남편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조금도 지루한 내색 없이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함께 했던 두 분의 세월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만나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때 그 사람과 내가 온전히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에게 무엇을 주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상태에 이릅니다.

이러한 일치된 사랑의 모습은 아기를 향한 어머니에게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부부와 모자 간의 관계 안에는 둘이면서 하나인 체험, 사랑의 체험이 있습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제 자전거는 달려서 서울역 앞 STX 본사 앞에서 수정리 트라피스트 수녀원 주위에 조선소 건립을 반대하는 시위장에 도착했습니다.

봉쇄 수도원의 수도자들과 마을 주민들 100여명이 모여서 한목소리를 내며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반대의 소리를 높이 외쳤습니다.

다시 명동 성당에 가서 대운하 반대 천주교연대를 결성하는 미사를 함께 봉헌하고

명동성당 앞에서 한 목소리로 대운하 반대를 소리쳤습니다.

저녁이 되자 시청 앞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촛불 시위를 하기 위해 모여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의와 평화, 환경을 위해 하나가 되어 외치는 그 모습 안에서도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뭔가 강한 하느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과 정의를 위해서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지 사람들이 하나로 일치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완전한 사랑의 일치를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약하고 한계가 있으며,

때로는 집단 이기심을 위해 힘을 모으고, 모은 힘을 악하게 사용하는 인간이기는 하지만,

선과 정의, 사랑과 평화를 위해 하나 되는 모습들 안에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습이 스며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그 본성상 내재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이 나누임도 없이 분리됨도 없이,

손상됨도 없이 오직 한분으로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 구원을 위해 자신과 동등한 성자와 성령을 파견함으로써

당신의 흘러넘치는 생명을 우리에게 내어주셨고,

이 구원 업적 안에서 우리는 한분이신 그분이 창조주 성부, 구원자 성자, 협조자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살아계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내재적 삼위일체론과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론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느님은 본질상 자신을 열고 타자에게 내어주는 사랑자체이시며,

그러한 하느님의 신비가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구체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계시되었다면,

사랑 자체이신 그분의 자녀들인 우리 역시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의 본성을 키워갈 때,

세상에 사랑을 창조하고, 그 사랑을 전하며,

세상을 거룩하게 하는 성부, 성자, 성령의 하느님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부간에, 부모와 자녀 간에, 그리고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나누는 사랑을 통해

인간은, ‘서로 구분되나 그 본성으로는 하느님 안에서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의와 평화를 위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기 위해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외치는 소리를 드높일 때

그 안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드높이는 찬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재적 삼위일체론이든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론이든 그 중심에는 타자를 위한 내어줌의 사랑이 있습니다.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타자를 위한 온전한 내어줌의 사랑이 있을 때,

서로가 하나 되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이 향기가 되어 번져나갈 것입니다.

그 사랑은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창조시켜 주는 사랑(성부)이요,

자기 목숨마저도 희생하는 사랑(성자)이며, 우리를 아버지 하느님께로 인도해주는 사랑(성령)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가 된다고 해서 모두 똑같이 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자전거의 두 바퀴가 일치를 한다고 하나로 합쳐진다면 불편하기 짝이 없듯이, 일치가 획일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가정 공동체에서, 교회 공동체에서 수도 공동체에서 각자의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상호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때 그 사랑이 흘러 넘쳐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삼위일체대축일인 오늘 우리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단순히 당신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이나 하나로 일체를 이룬다는 것을 고백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호를 그으며 모든 일을 시작하고 마치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삶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사랑을 통해 일치를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창조와 구원과 성화를 공동으로 이루어 내신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 역시 세상을 향해 공동으로 이루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날마다 새롭게 창조되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님 보시기에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고,

사람이 되신 하느님과 같이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여 진실한 사랑을 베풀고,

영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늘 머무시며 성화 하시는 하느님과 같이 사람들과 세상을 거룩하게 하고 복음화 하여

사람들이 모두가 기쁨과 평화 가운데 하나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삼위일체적 사랑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모상이 담겨져 있기에 불완전하나마 삼위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씨앗이 주어져있습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그 씨앗을 키워나갈 때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새로운 창조와 생명, 그리고 사랑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