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부활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승천 대축일을 지내고 2주 후에는 성령강림 대축일로 부활시기가 끝납니다. 그런데 부활은 단순히 예수님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명확하게 분명하게 똑똑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실 부활을 명확히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앎은 머리에서 마음으로 내려가야됩니다. 머리에서 끝난다면 부활은 그냥 지식과 앎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내려가야지만 주님의 부활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놀라운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나는 그대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나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이나 고아는 참으로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고아는 가장 가까운 사람인 부모와 관계가 끊어진 이들입니다. 그래도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난 고아들은 낫지만, 이혼한 부모로 말미암아 고아 아닌 고아들이 받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요즈음에는 ‘황혼 이혼’보다 더 심각한 ‘대입 이혼’이라는 것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4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 사이에 부부들 사이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 부부들은 그동안 자녀 양육 때문에 참고 지냈지만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거나 다닐 나이가 되면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다고 합니다. 이 연령대 이혼 건수는 지난해 3만 4831건으로 5%가 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혼인 생활만 이렇게 붕괴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도생활도 마찬가지로 위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도 그렇지만 많은 수도회들에서 특히 종신서원자들이 하느님과 공동체에 한 서원을 파기하고 수도원에서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수도생활에서도 관계의 붕괴가 급속도록 전개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저는 종신서원을 하고서도 수도원에서 나가는 형제들을 보면 마치 제 자신이 고아가 된 기분입니다. 더 나아가 부부나 수도자들이나 우리 모두는, “혹시 나도 이혼을 하거나 수도원에서 나가는 사람 가운데 하나는 아닐까” 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도 떨칠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태풍을 만난 듯 좌불안석입니다.

우리 인생살이는 복잡한 것 같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참으로 단순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인생살이는 ‘관계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 생을 시작하고 그 관계를 완성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너와 나와 우리의 관계에서 끊어진 사람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단절된 사람은 내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숨을 쉬지만 내적으로는 생명이 없는 사람입니다. 관계 안에서 기도도 나오고 일도 나오고, 또 하느님도 나오고 사람도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관계에는 참된 관계와 거짓 관계가 있습니다. 거짓 관계는 어떤 이기적인 목적 때문에 상대방을 물건으로 대하는 것이며 피상적으로 스쳐지나가는 만남뿐입니다. 이런 관계는 조폭과 같은 패거리 관계일 뿐입니다. 패거리 인간관계는 다른 사람이 그 그룹의 삶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에 바탕을 두는 것이고, 따라서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하고만 교재하게 됩니다. 그 역할을 못하는 사람은 그 무리에서 철저히 배재됩니다.

참된 친교는 내가 그 사람 안에 있고 그 사람이 내 안에 있을 때만 형성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당신 자신이 관계 안에 있음을, 또 당신을 관계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대들은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그대들이 내 안에 있으며, 나도 그대들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 안에, 우리는 예수님 안에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서로 안에 현존 할 때만 너와 내가 참된 친교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와 내가 참된 관계 안에 있기 위해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것 같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선적으로 하느님 안에 현존하고 또 하느님이 우리 안에 현존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맺는 친교는, 하느님과 맺는 관계를 밖으로 드러내는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님과 관계를 더 친밀히 맺을 수 있습니까?

중세기의 위대한 신비가인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덧붙임을 통해서가 아니라 덜어냄을 통해서만 영혼 안에서 발견됩니다.” 지금 수도원에는 봄을 맞아 나무들이 연한 색깔로 잎을 키우고 있습니다. 나무들은 겨울이 다가오면 제 몸의 무게를 덜어냅니다. 가지와 이파리로 향하던 수분을 뿌리로 보내고 수분이 빠진 잎은 낙엽으로 떨어집니다. 이렇게 해서 나무는 지상에 노출된 가지가 동사(凍死)하는 것을 막습니다. 나무들은 이렇게 제 몸의 것들을 덜어냄으로써 겨우살이를 대비할 뿐 아니라, 지금처럼 파릇파릇 잎새가 피어날 새 봄을 준비합니다. 덜어냄을 통해서 나무들이 새 생명을 꽃을 피우듯, 우리 인생에도 덜어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들은 얼마나 교만하고 인색하고 탐욕스럽고 질투를 하고 나태합니까. 이러한 욕망에서는 우리 영혼을 살찌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기적인 욕심을 덜어냄을 통해서만 우리 마음에 우리 영혼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참된 친교는 우리를 더욱 개방적인 사람으로 더욱 열린 사람으로 변모시킵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나 수도원에서 친밀감이 없다고 그래서 살기 힘들다고 한탄만 합니다. 그러나 친밀감은 채워져야 하는 욕구가 아닙니다. 친밀감은 내가 먼저 점차적으로 상대방에게 애정을 두고 신뢰하고 그 사람을 더 이해할 때 저절로 생겨나는 산물입니다.

하느님께서 가정 공동체나 수도 공동체 안에서 저 사람과 친교를 맺고 살도록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의 상대방이 고통받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또 그 사람을 통해서 나의 약점, 아직도 성숙되지 못한 내 자신을 의식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이 다른 이들을 보는 대로 다른 이들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을 봅니다. 그 사람들을 더 이상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들 안에서 하느님을 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눈으로 살아가기 시작할 때, 우리는 매우 상처를 입기 쉽고 매우 가난해집니다. 그렇지만 이 가난은 우리의 부유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의 영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약함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과 힘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