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일(착한 목자 주일) 강론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자

미사 전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부활 제4주일은 착한 목자 주일이면서, 성소주일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사제성소와 수도성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한 젊은이들에게 성소의 길을 소개하여 주님께 응답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도록 노력하는 날입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목자이신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분 목장의 양떼들입니다. 우리가 목자이신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분의 인도에 따라 보다 더 충실히 살기를 다짐하며 이 미사를 정성껏 거행하도록 합시다.

목자이신 그분께서 어린양이 되시어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되신 이 거룩한 파스카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해 잠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분의 자비를 청하도록 합시다.

강론

 찬미 예수님!!

저는 2001년부터 성소 담당을 하면서 매년 이맘때면 성소주일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보냈는데, 올해는 수도원 공사 관계로 성소주일 행사를 할 수 없어 몸은 편안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과 걱정이 밀려옵니다.

아빠스님은 건축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서울로 가시고, 정든 성당과 건물이 순식간에 부서지고, 허허 벌판이 된 듯한 수도원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참 찹찹해 집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후배 수사님들을 보면 힘이 생겨납니다.

모든 이들이 화재 후 고생을 참 많이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우리 수련자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또 감사합니다.

수도성소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고민하다가 입회 후, 몇 달 만에 화재로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지금까지 무진장 고생을 많이 하고 있지만, 말없이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로 보면 먹구름이 가득한데, 아래에는 새싹이 돋고 있으니, ‘수사님들이 나를 살게 한다.’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어쩌면 삶의 고달픔에 힘겨워 하다가도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이네 다시 힘이 생긴다는 부모의 마음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소리 없이 묵묵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형제들에게서 우리 시대의 목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궁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며 말로 행동으로 다른 이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목자들에게 더 이상 기대를 접은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못하게 하는 5명의 의인이 우리 가운데 분명 있기에 우린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요?

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파란 풀밭 즉 하느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목자는 매우 자상하게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양들은 앞장서 가는 목자를 따라 나섭니다.

여기서 먼저 봐야 할 것은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목

자는 양들을 사랑하고 양들도 목자를 사랑한다면 서로의 음성을 알아듣고 서로 뭔가 통하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눈짓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게 됩니다.

서로 신뢰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도둑은 낯선 존재입니다.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서로 통하지가 않습니다.

욕심을 갖고 사람들을 대합니다. 다 빼앗아가고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도둑은 훔치는 것이 본연의 일이니까요!!

요컨대 목자와 양의 관계는 서로 잘 아는 관계, 잘 통하는 믿고 사랑하는 관계이지만, 도둑과 양의 관계는 서로 잘 통하지도 않고 서로의 이익을 위한 관계인 것입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도둑과 양의 관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서로 잘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섭섭한 말이나 배신, 혹은 손해를 끼치며 도둑이 되어 오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 순간 서로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서로가 다른 목소리를 내며 관계는 단절됩니다.

그 때부터는 목소리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못마땅하게 됩니다.

아무리 용서하려고 해도 분하고 섭섭하고 억울해서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양심의 가책만 더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가 통하지 않는 관계는 우리만이 아니라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안과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잘 알듯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와 제자들이 기대했던 하느님 나라 사이에서 서로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당신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자 심지어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시기 까지 합니다.

게세마니 동산에서 나를 위해 좀 깨어 기도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해도 졸기만 하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달라졌습니다.

특히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서로의 다른 말을 통하게 만들어 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됩니다.

우리의 힘으로 회복 불가능한 관계를 다시 이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고, 서로간의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를 다시 이어 주기 위해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오시고 계십니다. 우리 각자가 주님께로 가까이 다가 갈 때 주님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럴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게 됩니다.

그리고 용서도 사랑도 가능하게 됩니다. 그때는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 타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