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회 > 오늘의 강론 > 동영상으로 보는 부활대축일 낮미사와 강론

지금 밖에는 어젯밤부터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차갑게 메말랐던 대지에 봄비가 하늘에서 조용히 내리고 있습니다. 예년과는 달리 부활이 빠르기 때문에 산천초목은 아직도 봄을 틔우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단비로 말미암아 봄이 활짝 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입니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는 우리 공동체 전체가 무척 힘든 때였습니다. 성삼일을 보내면서 작년 화재 때 삼일에 걸쳐 일어났던 일들이 주마관상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번 강론을 준비하면서 제가 작년 부활 낮미사 때 했던 강론을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작년 강론 가운데 한 대목을 읽어보겠습니다. “저는 성금요일 새벽부터 오후까지 불이 우리의 삶의 터전을 맹렬히 집어 삼키는 것을 보고 주님의 십자가 고통과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죽음의 화마가 주님을, 생명의 주님을 집어삼켰습니다. 건물이 불에 휩싸인 것을 보면서 눈에서 눈물이 났지만 불이 원악 커서 그 열기에 제 눈물이 말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성토요일 주님께서 무덤에 계시는 날에, 뼈대만 남은 수도원 건물의 앙상한 외양을 바라보면서 무거운 침묵을 느꼈습니다. 더욱이 바람이 심하게 불어 건물에서 재만 남은 잔해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금요일에는 불을 끄느라고 정신이 없었지만, 모든 상황이 종료된 토요일에는 이런 심각한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점점 더 마음이 무거워지고 무척 산란했습니다. 더욱이 몸만 빠져나온 저를 비롯한 형제들의 허망한 모습을 보면서 한숨밖에는 나오는 것이 없었습니다.” 화재가 난 지 벌써 일 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나온 일 년을 생각하면 여러 상념들이 떠오릅니다. 화재 잔해를 정리하고 건물을 복구하는데 무척 힘들었고 참으로 고통과 인내를 요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외적 복구보다는 공동체 내부적으로 더 많은 아픔과 갈등의 시간이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는 지난 일 년 동안 하느님의 섭리와 하느님의 인자하신 손길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고 우리 공동체에 소중하고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에서 조용히 내려 대지에 생명을 움트게 하는 봄비와 함께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우리 모두는 평화로운 침묵 가운데 부활을 맞이했습니다. 주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이 날, 저는 하느님의 축복을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 전례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아니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 그 자체입니다. 마치 봄비가 천지만물에 축복인 것처럼 부활도 모든 사람들에게 복 자체입니다. 어젯밤 성야 미사 첫째 구약독서에서 우리는 창세기 말씀을 감동적으로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만드실 때 피조물들을 보시면서 당신 친히 7번씩이나 ‘보기 좋았다’고 감탄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다른 피조물들은 말씀으로만 창조하셨지만, 유독 우리 사람만은 당신 모습으로 손수 빚으셨습니다. 더 나아가 창세기 저자는 이렇게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창세 1,28). 그렇습니다. 첫 창조 때 하느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복을 내리시는 분으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오늘은 새로운 창조의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주간 첫날” 아직 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간 마지막 날은 하느님께서 창조 사업을 마치시고 쉬신 날인 구약 백성의 안식일이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안식일 그 다음날인 주간 첫날은 새로운 창조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창조의 첫날인 오늘 주님께서는 생명의 주인으로 우리에게 드러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옛 창조를 완성하는 새로운 창조의 날입니다. 옛 창조 때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복을 주신 것처럼, 새로운 창조의 날인 오늘 하느님께서는 더 큰 복 자체인 당신 아드님을 복으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런데 막달라 여자 마리아를 비롯한 제자들은 복 자체이신 분을 보지 못하고 텅 빈 무덤, 어떠한 증거도 되지 못하는 허망한 빈 무덤만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창조의 날, 곧 부활의 날을 맞았지만 생명 자체이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만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실망한 나머지 제자들에게 가서 “사람들이 무덤에서 주님을 빼돌렸습니다. 어디다 옮겨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 역시 2000년 전 제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복 자체이신 분이 우리에게 다가오시지만, 우리 마음 깊숙이는 절망과 슬픔과 어두움이 짓누르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 내면에 깊이 감추어진 두려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부정적 목소리, 나 스스로를 가치없는 존재라고 외쳐대는 내면의 목소리에 질식되어 우리는 복 자체이신 분을 참으로 맞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최근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흉악한 살인 사건으로 인해 우리 사람들의 존엄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법무부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사형제도는 존속되어야 하고 강력하게 시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이렇듯 내적 외적으로 우리는 두려움과 의혹과 불신과 거부라는 죽음의 어두운 무덤에 아직도 갇혀 있고,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사랑받지 못한다. 너는 안된다’는 메시지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빈 무덤만을 보고 그것에만 연연하는 사람은 결코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는 부활의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빈 무덤은 희망이 없는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 자체이신 주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무덤이 없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빈 무덤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졌다면, 위에 있는 것을 찾으시오. 거기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제 눈을 들어 주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의 현실을 상징하는 땅에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 곧 하늘과 결합되어 높여졌습니다. 아니 하늘이 땅에 내려왔다는 표현도 맞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간적 상황에 동참하심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지위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 자체이신 분이 우리와 결합되었기 때문에 우리도 복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만물과 모든 사람이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어두운 무덤 안에도 부활의 광채가 빛나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고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과 내일을 성실히 그리고 묵묵히 그리고 감사하면서 걸어 나갑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안배해주시고 다 마련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의 어떠한 잘못과 결점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 날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알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