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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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33주일(가해)-깨어 있는 삶: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3 23:35: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183   
연중 제33주일(가해) 강론(1996. 11. 17)

"깨어 있는 삶"

제 1독서: 잠언 31,10-13.19-20.30-31
제 2독서: 1데살 5,1-6
복 음: 마태 25,14-30


오늘 전례는 지난 주일에 이어 깨어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삶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깨어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깨어 기다려야 하는가? 깨어 있는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 복음과 독서 말씀은 바로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깨어 있는 삶이란 과연 어떻게 사는 삶인지 보여 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그것을 잘 활용하여 두 배로 늘렸습니다. 반면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을 그대로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셈을 하였을 때 재산을 늘린 종들은 칭찬받았고 그렇지 못한 종은 단죄받았습니다. 여기서 달란트는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능력 또는 재능을 의미합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각자 나름대로의 달란트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 달란트 혹은 두 달란트를 받았고 또 어떤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받았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받은 달란트의 양이나 종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달란트의 양을 얼마나 많이 늘였는가가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잘 활용했는가를 물으십니다. 그래서 다섯 개 받아 다섯 개를 더 벌은 종이나 두 개 받아 두 개를 더 늘인 종이나 똑같이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반면 그것을 그대로 땅에 묻어둔 종은 단죄받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달란트는 결코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재능이나 능력을 어떻게 활용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에 따라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살다보면 우리는 자기가 받은 달란트에 우쭐하거나 의기소침해 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머리를 자랑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재산과 지위 또는 재능을 자랑하곤 합니다. 이는 남들과의 비교와 경쟁에서 오는 쓸데없고 부질없는 짓입니다. 하늘 아래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고,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없습니다. 높고 낮음과 귀하고 천함은 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들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다 평등하고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직책과 지위, 재산과 학식, 재능 따위로는 결코 그 사람의 인격과 가치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가난하다고, 많이 배우지 못했다고, 재능이 없다고 부끄러워하거나 부러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 고유의 달란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기 달란트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두번째는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지 말고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복음에서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을 그냥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땅에 묻어 두었다는 것은 게으르고 나태한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자기 능력을 활용하지 않고 자기 역할에 불충실했음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잠자고 있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 종은 깨어 있지 못하고 잠자고 있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있습시다"(1데살 5,6). 그것은 주님의 날이 도둑처럼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1데살 5,2참조). 깨어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않아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저 입만 벌리고 않아 떨어지는 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노상 성당에 않아 값싼 은총을 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깨어 있는 삶이란 이런 수동적인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주체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입니다. 몇 년전 극성을 떨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던 휴거 신봉자들은 임박한 세상 종말 앞에 깨어 있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가진 재산을 다 바치고, 직장과 학교와 가정을 다 포기하고 함께 모여 기도하며 소위D-Day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결국 세상에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깨어 있는 삶을 그렇게 이해했던 것입니다. 깨어 종말을 기다린다는 점에서는 우리와 같지만 깨어 기다리는 그 방법이 달랐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깨어 있는 삶이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삶은 건전한 상식 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가정과 직장과 학교를 버리는 현실과 등진 삶이 아니라 현실 안에서 자기 역할에 충실한 삶입니다. "비록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와 같은 자세로 사는 삶입니다. 결코 시한부 종말론자들 처럼 현실을 등지고 자기 본분을 저버린 허공에 뜬 황당한 삶이 아닙니다. 또한 가정은 돌보지 않고 기도회다 봉사할동이다 하여 여기저기 분주히 쫓아다니는 삶도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요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의 달란트의 비유가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즉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지 말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목적을 위해 선용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신 목적은 결코 개인의 출세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공동의 선익과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재능이나 능력은 공동의 선익과 세상의 변화를 위해 활용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그것은 남을 지배하고 죽이는 도구로 전락해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줄 것입니다.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입니다"(마태 25,29).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각자 받은 달란트를 잘 활용할 때 더 큰 상급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깨어 있는 삶이란 공동의 선익을 위해 자기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삶입니다.

동시에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삶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기 역할을 망각할 때가 있습니다. 몸에 있어서도 각 지체가 하는 일이 다르듯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도 다 다릅니다. 결코 손이 머리가 하는 일을 대신할 수 없고 다리가 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자기 역할을 망각하고 남의 역할에 참견할 때 혼란이 오게 됩니다. 그때 삶은, 공동체는, 사회는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요사이 자기 역할을 망각하여 역사의 심판대에 오른 정치 군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이미 역사의 심판을 받은 수많은 정치인, 경제인, 지식인, 종교인, 군인들을 기억합니다. 이러한 불행은 결국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탐욕이 불러온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대형 비리들과 사건들은 모두 자기 역할을 망각했거나 자기 역할에 불충실한데서 오는 것입니다.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 군인은 군인으로서, 지식인은 지식인으로서, 종교인은 종교인으로서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국민의 고혈을 빠는 정치인, 출세를 위해 지식을 팔아먹는 지식인, 하느님을 팔아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종교인, 국토방위는 저버리고 정치일선에 뛰어드는 정치군인은 모두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온 세상의 변화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삶의 참된 의미입니다. 즉 하느님이 주신 자기 재능과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이 세상과 이 사회를 하느님의 뜻에 맞게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예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깨어 있는 삶이 아닌가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해 가는 이 때 우리 삶을 재점검해 보고 깨어서 주님을 맞이하도록 노력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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