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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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성금요일(나해)-사랑과 십자가: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3 23:34: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86   
성 금요일(나해) 강론(1997. 3. 28)

"사랑과 십자가"

제 1독서: 이사 52,13-53,12
제 2독서: 히브 4,14-16; 5,7-9
복 음: 요한 18,1-19,42

얼마전 신문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소설가가 기고한 글인데 종교인들 특히 성직자들에 대한 비판 기사였습니다. 그는 인격적으로 미성숙하고 수준 이하의 종교인들, 성직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팔아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무리라는 것입니다. 보기만해도 지긋지긋하며 하루빨리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들이라고까지 강변하였습니다. 이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좀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사실 수궁이 가는 부분도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종교인들, 성직자들에게 신물이 났기에 이렇게 신문에까지 기고하였겠습니까? 이 글은 가짜가 아닌 진짜에 대한 갈망을 대변하고 있다고 봅니다. 실제 가짜가 판치는 우리 사회 안에 많은 사람들이 진짜를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짜 종교인, 진짜 성직자, 진짜 수도자를 원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의 수난 성 금요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드러난 사랑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참 신앙인의 길, 진짜가 되는 길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예수의 수난과 죽음이 주는 한가지 핵심적 메시지. 그것은 사랑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랑 때문에, 사랑을 위하여 수난 받으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어쩌면 우리에게 통속적으로 들리거나 무감각하게 다가올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그 말이 너무 남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라고 하면 먼저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혹은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을 먼저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합니다. 예수께서는 당신 죽음과 부활로 그것을 입증해 주셨습니다. 사랑의 결과는 십자가였고, 그 십자가는 부활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교훈입니다. 내가 보여준 바로 그 사랑을 너희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전 삶으로, 온 몸으로 사랑을 가르치셨고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입니까? 예수의 수난과 죽음은 우리에게 이에 대한 해답을 던져줍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십자가 죽음이라는 가장 쓴 잔을 주고, 아들은 그 잔을 받아들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보여준 이 사랑 안에서 사랑의 참된 본질이 드러납니다.

그 사랑은 첫째 울타리를 벗어난 사랑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편협하지 않았습니다. 내 아들만을 생각하지 않고 모든 이도 함께 생각한 사랑이었습니다. 여기서 사랑의 보편성이 드러납니다. 그 사랑은 죽음이라는 쓴잔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어느 부모가 자녀에게 쓴잔을 주고 싶겠습니까? 성자에 대한 성부의 사랑은 요즘 젊은 세대의 자녀 사랑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요즘 사람들의 자녀 사랑은 너무 편협하고 옹졸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내자식, 내새끼 하며 옹야옹야 키운 자식들은 결코 올바로 클 수 없습니다. 이기적이고 버릇없는 아이로 크게 됩니다. 대구시교육청 자료집에 자녀를 망치는 다음과 같은 비방들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 "자녀를 망치려면 아주 어려서부터 자녀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주어라. 그러면 그 자녀는 온 세상이 자기 것이 될 수 있다고 오해하며 자란다." "자녀가 나쁜 언어를 쓰더라도 웃어넘겨라. 그러면 자기가 재치 있는 줄 알고 더욱 못된 말과 그릇된 생각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용돈을 달라는 대로 다 주는 것", "자녀가 치우지 않은 잠자리나 책상 등을 대신 정돈해 주는 것" 등은 모두 자녀를 망치는 멋진 방법들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들의 지나친 과잉보호는 오히려 자녀를 망치게 됩니다. 무조건 감싸고도는 것이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참된 사랑은 쓴 잔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잘못 이해합니다. 내 자식,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것을 또 달콤한 잔만을 주는 것을 사랑이라 착각하기 쉽습니다. 울타리 안에 갇힌 사랑이어서는 안됩니다. 끊임없이 내 자식, 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뛰어 넘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참된 사랑은 그 울타리를 뛰어 넘는데 있습니다. '나'에서 '너'로, '우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수도생활도 이 울타리를 뛰어 넘기 위한 하나의 수단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보여준 사랑은 또한 자기를 희생하는, 내어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 죽음이라는 쓴잔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두려움과 고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아버지의 뜻에 따르셨습니다. 사랑은 자기 희생입니다. 자기 재산이나 시간, 심지어 생명마저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자기 것을 챙기고서는 또 그러한 마음으로는 결코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위해 자기를 내어주는 것이 참 사랑이며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이 뜻을 얼마나 잘 따르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뜻'과 '내 뜻'을 분별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내 뜻'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로 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는 미명 하에 '내 뜻', '우리 뜻'을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느님의 집을 아름답고 성대하게 꾸며야 한다며, 그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며 엄청난 예산을 들여 거대한 성당을 짓는 일이라든지, 본당이나 수도 공동체든 간에 그 수입과 예산의 대부분이 자체 관리, 유지비로 소모되는 일. 이러한 일들 앞에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참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 냉철히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예수의 참된 제자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길. 그것은 이웃을 위한 자기 희생의 길, 십자가의 길 외에 그 무엇도 아닙니다. 예수와 같이 쓴잔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쓰다고 이내 뱉아 버린다면 결코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달콤한 잔만을 받으려는 자세에선 자기 희생이나 헌신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쓴잔을 마시려 하지 않는 데서 가짜가 나옵니다. 가짜는 사랑의 참된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십자가를 멀리합니다. 대신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이나 달콤한 세속적 가치들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기준입니다. 돈을 밝히고 오락에 빠져든, 그리고 명예와 자리에 눈이 먼 종교인, 성직자들은 모두 가짜임이 분명합니다. 돈, 권력, 명예, 자리, 학벌 따위 같은 가치들이 우리 마음과 정신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이러한 것들을 무시하고 우습게 여길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삶, 수도의 삶은 바로 부차적, 세속적 가치들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만일 그러한 가치를 지향한다면 예수의 참된 제자가 아닙니다.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예컨대 누가 돈을 잘 벌거나 많이 배웠다고 해서, 또는 중요한 자리에 있다고 해서 그를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굽실거립니다. 소위 알아서 기는 것입니다. 그래야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신 없고 비굴한 삶의 처세는 세속적 가치들을 지향하는데서 나옵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그러한 것들로 평가되어서는 안됩니다. 성실하고 진실된 삶의 자세나 순수함, 또는 정신적 깊이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세속적 가치에 젖어 사는 사람들은 결코 사랑을 위한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랑은 울타리를 뛰어 넘는 것이고 자기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이 보여준 사랑의 본질입니다. 이 사랑은 십자가라는 쓴잔을 통해 표현되었습니다. 예수의 수난과 죽음이 주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사랑을 위한 십자가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이 길은 참 신앙인의 길이며, 예수의 참된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한마디로 진짜가 되는 길입니다. 이 거룩한 날, 수난과 죽음을 통해 드러난 예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우리도 사랑을 위한 십자가의 길로 나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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