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휴게실 창문 가에 앉아 아침 묵상을 하고 있는데 어떤 노인 수사님 한 분이 제게 조용히 다가 오셨습니다. 그분은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저에게 ‘용서’를 청하셨습니다. 저는 영문을 몰라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대체 내가 이 분께 무슨 예의에 어긋난 무례하고 잘못된 행동을 해서 그분의 착하고 여린 마음을 상하게 해 드렸나’ 하고 무척 당황했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고백하건대, 사실 저는 성격이 좋지 않아서 지금까지 본이 아니게 다른 형제들에게 말로나 행동으로 걸림돌이 된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그 수사님은, 제가 그분에게 무슨 잘못을 하거나 화를 내서가 아니라, 단지 제가 후배들을 가르치는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에 당신의 행동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알고 싶어서 오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사는 꼴이 요 모양 요 꼴인데 어떻게 저보다 한참 어른이신 그분에게 무슨 훈시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오히려 수사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이 경험은 저에게 충격이었고, 이 수사님을 통해서 사순절의 참 의미를 살아있는 의미를 눈으로 똑똑히 느꼈습니다. 더 나아가 자비를 청하는, 용서를 청하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아름다움은 바로 그 수사님이 살아오신 수도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분이 우리 가운데 숨어 계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힘과 용기를 얻고 수도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느님과 수도 형제들 앞에서 참회를 하려고 이렇게 모여 있습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저녁기도 찬미가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랑의 창조주시여 사순절 재의 계절에 눈물로 드리는 기도 어여삐 들어주소서.

샅샅이 살피시는 주 연약함 익히 아시니 회개한 우리들에게 죄사함 내리옵소서.

복되신 성삼이시여 주님은 굽어보시어 재지킨 우리 정성에 열매를 내려주소서”.

이 찬미가에서, 주님은 “모든 것을 샅샅이 살피시는, 모든 것을 굽어보시는 주님”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다, 살핀다”는 동사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모든 죄악과 잘못과 허물을 하느님께서 일일이 세세히 다 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행동을 마치 무슨 감시자나 형사처럼 캔다는 뜻이 아닙니다. 찬미가는 분명히 우리에게 말합니다. 곧 하느님이 살피시는 것은, 또 하느님이 미리 아시는 것은 바로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가 행하고 있는 정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샅샅이 살피시는 주 연약함 익히 아시니”하고 노래합니다.

이와 더불어, 찬미가 시작에 하느님을 ‘사랑의 창조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우리 죄악과 허물에 대한 노여움보다는, 우리 연약함과 재지키는 우리 정성을 굽어보시는, 사랑이 흘러 넘치시는, 우리 생명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는 ‘사랑의 창조주’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랑이 지극한 하느님을 우리 창조주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의 눈물로 기도로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죄보다는 사랑이 앞섭니다. 죄는 사랑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아드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의 눈물로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한없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응답과 보답으로 참회를 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회로서 드러나는 응답은 사실 우리 자신의 행위이기 앞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느님 안에서만이 우리의 참회는 풍부한 열매를,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미가에서 “복되신 성삼이시여 주님은 굽어보시어 재지킨 우리 정성에 열매를 내려주소서” 하며 오직 하느님만이 열매를 내려주실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참회, 회개는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되는 신비입니다. 하느님과 화해하면서 동시에 형제들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 화해할 때 참다운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수도가족 형제들 가운데는 이 신비를 몸으로 사는 형제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형제들은 숨어있습니다. 이 형제들 때문에 우리 공동체가 끊임없이 성장하고 지탱하는 것입니다. 사실 화해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당위성을 잘 알고 있고 또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만일 화해가 필요하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는 하느님과 우리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쟁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형제 여러분, 서로 용기와 격려를 주고받으면서 기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고 자비를 줍시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길잡이신 주님이 계십니다. 또 이 길을 이미 걸어간 선배 형제들이 있고 여기 있는 우리 역시 선배들의 뒤를 따라 갈 것입니다. 또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을 따라 오는 후배 형제들이 있고 앞으로 있을 것입니다.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