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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사순2주일(다해)-일상에로 돌아가 십자가를 집시다: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3 23:31: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07   
사순 제 2주일(다해) 강론(1995. 3. 12)

"일상에로 돌아가 십자가를 집시다"

제 1독서: 창세기 15,5-12.17-18
제 2독서: 필립비 3,17-4,1

복 음: 루가 9,28b-36

얼마전 어떤 수사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울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 가보니 사방 50m의 공간 안에 무려 20여 개의 교회가 운집해 있었는데, 그 중 한 교회에 이런 내용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일단 오셔서 우리 목사님 설교 한번 들어보시라니까요!" 이 말이 제게는 마치 학원이나 유흥가에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상술처럼 느껴졌습니다. 혹시 머리수를 늘려 교세확장을 꾀하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를 남의 이야기로 돌려버려 그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습니다. 이와 유사한 현상들이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조차 흔히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대도시 본당의 중산층화, 신자수 불리기 운동, 교회 재정의 비대화, 날로 대형화되어 가는 성전건립. 이러한 것들이 결코 교회 성장의 참된 표지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장애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교세확장이 아니라 그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는냐 못사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성장과 쇠퇴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인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어느새 사순 제 2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회개와 보속으로 부활축제를 준비하는 사순시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수도자로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올바른 삶의 자리를 재확인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오늘 복음과 독서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순시기의 복음들을 보면 모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부활의 희망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이점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와 '제자들의 목격과 반응'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언듯보면 사순시기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밝혀주고 있고,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변모'는 장차 있을 부활의 영광에 대한 하나의 예표이며, 수난과 죽음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즉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기 위한 수난과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선 그분의 십자가의 길에 필히 동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의 핵심적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 이 둘은 그리스도인 삶에 있어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환상이며, 부활 없는 십자가는 무의미할 뿐입니다. 그 둘 중 어느 하나가 빠진 신앙은 절름발이 신앙에 불과합니다. 혹시라도 우리의 신앙이 십자가를 배제한 절름발이 신앙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제 2독서에서 사도 바울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멀리하고 세상일에만 마음을 쓰는 사람들에게 멸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예수님의 변모를 목격한 제자들의 반응'은 우리 인간의 나약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루가 9,33a). 이는 예수님의 권능과 영광을 체험한 베드로의 반응이었습니다. 행복한 순간, 달콤한 순간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마 우리 모두의 바램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현실을 무시하고 십자가를 거부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신비체험을 했다거나 소위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가정을 소홀히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합니다. 이것은 환상이요 거짓 체험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땅에 뿌리를 둔 신앙이며, 현실의 구체적인 삶과 일치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제대로 체험한 사람들이나 그분과의 깊은 일치를 이룬 사람들은 십자가를 멀리하지 않았을 뿐더러 현실의 구체적인 삶에 충실했습니다. 이처럼 참된 신비체험은 우리를 다시 현실로 되돌아가게 하며, 일상생활에 충실하게 합니다. 이는 교회의 신비가들이나 성인들의 삶이 잘 보여주고 있고 오늘 복음이 가르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다시 산에서 내려와 예루살렘을 향한 십자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셨고 제자들도 그 길을 따랐습니다. 우리 역시 산에서 내려와 현실의 구체적인 삶에 발을 딛고 우리의 십자가를 져야 할 것입니다.

타볼산 체험은 분명 하나의 신비체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밝혀 주었고, 스승의 길을 따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러한 체험은 어두운 인생여정을 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줄기 희망의 빛입니다. 우리는 이 빛에 의해 힘을 얻고 현실의 모든 시련과 역경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을 체험하는 우리의 타볼산은 어디입니까? 아마도 우리의 가정, 직장, 학교, 수도원, 그리고 지금 미사가 거행되는 바로 이 곳이 아닌가 합니다. 타볼산은 어느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소홀히 하기 쉬운 평범한 일상에로 돌아가 거기에 충실하도록 합시다. 여러분이 만일 가정에 소홀하였다면 가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여러분이 만일 수도생활에 나태하고 권태를 느낀다면 수도생활에 투신하여 거기에 맛들이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세례를 받고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본당활동에 열심한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또한 단순히 수도복을 걸치고 수도원 안에 머문다고 수도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때 비로소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이란 결코 요란하고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닙니다. 하늘만 쳐다보는 공중에 뜬 삶도 아닙니다. 그것은 단조롭고 하찮아 보이는 각자의 평범한 일상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오는 십자가를 묵묵히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빠스카의 삶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만물이 소생하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주님 안에서 참된 그리스도인, 참된 수도자로 새롭게 부활하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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