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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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26주일-상황의 역전: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3 23:27: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57   
연중 제26주일(2001. 9. 30)
제1독서: 아모 6,1a.4-7
제2독서: 1디모 6,11-16
복 음: 루가 16,19-31

"상황의 역전"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들은 재물의 위험성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난주의 '약은 청지기의 비유'가 재물을 선용한 예라면 오늘 복음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재물을 잘못 사용하여 파멸을 초래한 예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현세에서의 상황' 묘사에 이어, '내세에서의 상황'이 묘사되고 있고, 끝으로 '부자와 아브라함과의 대화 장면'이 나타납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먼저 두 사람의 현세에서의 삶을 보면 하나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던' 반면, 다른 하나는 개들만도 못한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다시 말해 부자는 재물을 통한 온갖 행복을 누리고, 라자로는 가난과 질병으로 인한 극도의 불행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은 후 모든 상황은 역전됩니다.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품'이란 유다적 표현으로 '영원한 행복'을 뜻합니다. 반면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살아있을 때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라자로의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이처럼 그들이 입장은 현세와 내세에서 모두 극단을 달립니다. 완전한 자리 바뀜이 일어납니다. 현세의 행복이 내세의 불행으로, 그리고 현세의 불행은 내세의 행복으로 뒤바뀝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이런 '상황의 역전'을 흔치 않게 접하게 됩니다. 예수의 '산상 설교'나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된다'는 그분의 말씀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는 이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경우를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라자로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소외된 모든 이들을 상징하고, 부자는 현세적 재물에 눈이 멀어 사치스럽게 살아가는 모든 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의 정의가 어떻게 인생의 불의와 불공평을 다시금 공정하게 짜 맞추어 주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하는 다음 대답은 바로 이 정의에 입각한 '재균형'에 관한 것입니다. "애야, 돌이켜 생각해 보아라. 너는 생전에 복을 누렸지만 라자로는 그만큼 불행을 겪었지. 그래서 지금 그는 위로를 받고 있고 너는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단다"(루가 16,25). 아브라함의 이 말 안에는 이러한 '재균형'의 근본 이유에 대한 설명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언 듯 보면 현세에서 복을 누리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가 죽어서 고통을 받게 된 근본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이런 상황의 역전을 초래한 부자의 잘못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첫째, '재물에 대한 숭배'에 있다 하겠습니다. 그는 재물이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믿고 현세적 쾌락에 젖어 살았습니다. 하느님과 재물 중 후자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부자는 재물을 목적으로 삼고 거기에 집착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입니다. 재물은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것으로부터의 집착이 아닌 이탈된 자유로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둘째, '이웃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그는 라자로의 비참과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였습니다. 이웃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라자로를 자기 집 문 앞에서 그대로 비참하게 죽게 내버려두었던 것입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적, 이기적이었습니다. 이는 죽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외치는 다음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아브라함 조상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라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을 물에 적셔다가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 불길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루가 16,24). 자기가 고통을 받고 있으니 라자로를 보내 자기를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남의 고통에는 그토록 무관심했던 그가 자신의 고통에는 이처럼 민감합니다.

셋째, '마음의 폐쇄성'입니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부자는 하느님의 말씀에도 또 이웃에도 마음을 문을 굳게 닫아버렸습니다. 따라서 자기 안에 깊이 폐쇄되었던 것입니다. 마음의 개방성이 중요합니다. '나'에서 '너'로, '우리'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기적 마음에서 이타적 마음에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끝으로 '재물의 그릇된 사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자는 재물을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가난한 라자로를 위해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그에게는 나눔이 없었습니다. 재물은 나누어져야 하고 부는 공유되어야 합니다. 나눌 때 더 채워지고 모두가 풍요롭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소유한 부와 재물이 공동선을 위해 선용될 때 그것은 형제애의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악용될 때 부자의 경우와 같이 오히려 파멸의 도구로 전락할 것입니다.

재물 그 자체는 결코 악일 수 없습니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거기에 집착하여 하느님과 이웃에 마음을 닫고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목적으로 사용할 때 재앙의 씨앗이 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아모스 예언자는 졸부가 된 사람들의 몰염치하고 사치스런 생활을 고발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주받아라! 시온을 믿고 안심하는 자들아"(아모 6,4). 재물이 올바로 사용되지 않고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을 때 그것은 우리를 파멸로 이끌 것입니다.

이처럼 재물은 우리 마음의 눈을 멀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러한 위험을 경고하고 계신 듯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재물에 대한 올바른 자세, 마음의 개방성, 재물의 올바른 사용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누구나 어리석은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재물로부터 이탈된 자유로운 마음,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고통받는 이웃에게 관심을 갖는 열린 마음, 공동선을 위한 부의 나눔 등은 부자의 어리석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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