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껍질 : 침묵

   나무둥치는 껍질로 쌓여 있어야 한다. 껍질을 벗기면 나무는 죽는다. 수도자의 영성생활에 있어서 껍질에 해당하는 것은 분심을 없애주는 침묵이다. 아름다운 음악에 심취하려는데 시끄러운 잡음이 심하면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음악에 침잠하려면 우선 고요함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말씀을 청종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고요함이 필요하다. 이것은 성규에서 일컫는 겸손의 조건으로서, 수도자는 침묵으로써, 특히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과 나비처럼 날아드는 환상과 상상의 나래들을 물리쳐야한다. 이렇게 하기엔,  때로는 성공하기도 하지만, 아직 완성의 단계에 도달하기에는 요원하므로 불만스러운 자신을 바보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성 분도께서는 겸손의 둘째 단계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련되는 상상의 침묵을 요구하신다.

   겸손의 셋째 단계는 의지의 겸손이다. 의지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의지가 자유로이 하느님께 승복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성부께 간청하신 기도가 그런 것이었다: “성부여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 주님도 자신의 의지를  포기해야 함을 받아들이셨다. 가끔 하느님께서는 비록 우리의 뜻하는 바가 정의롭고 건전하고 거룩한 것일지라도 그보다 더한 것을 원하실 때가 있다.

   겸손의 넷째 단계는 그 정점을 이루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본성에 생활에 도움이 되고 발전이 되는 법을 넣어 주셨다. 그러나 성부의 뜻을 따르는데 있어서 이 자연적인  원칙들을 반대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인내와 침묵으로써 그 전부를 지배해야 할 때가 있다. “누가 겉옷을 달라고 하거든, 속옷까지 주라”, “五里를 함께 가자는 사람과 十里를 가주어라”…“오른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도 내 주어라“등등 이런 것들이 복수하고 싶은 본성에 어긋나는 것들이다.  이는 참으로 깊은 침묵을 요하는 것들이다. 성 분도께서는, 청원자를 관찰할 때 그가 모욕과 비하와 꾸중을 잘 참아 견디는지 그 씨앗부터 신중히 관찰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그 나머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실천하게 되며 겸손의 다른 차원은 수액의 외적 표현으로서 나무의 끝 부분에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이는 침묵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우리를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고 순명하게 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요인으로부터 방지해 준다. 성 분도께서는 이런 겸허한 사람은 자신을 일컬어 “죄인이요, 어리석은 자로 자처한다”고 하시며, 온전히 무능력하지만, 하느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는 사람에게는 위대한 일을 성취시키신다.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게 하시는 그 사람 안에, 하느님은 온전히 기쁨을 누리신다.

   이러한 사실을 잊는다면 이는 마치, 땅위로 둥치가 자라기도 전에 나무에 잎사귀가 돋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잎사귀는 최종적 영광의 현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