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스

   수도자의 생활면에 있어서나 혹은 수도원 안에서의 아빠스의 역할은 중추적이며 감독적인 것이다. 수도자들의 생활이 아빠스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빠스는 어느 면에서 수도원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그 수도원의 기질과 특성을 마련한다. 그 반면에 자동적으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사람들에게는 유약하고 연약한 면이 있다. 그것이 효력을 나타낼 때 또는 아빠스나 수도자들 모두가 부족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여전히 영적인 어떤 면이 있다. 즉 인간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빛과 은총의 매개체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서투른 솜씨에 신적인 면이 있는 것처럼 무능력과 부적당함을 신성시할 정도는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힘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현실은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근본적인 문제, 즉 신앙의 문제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게 할 파괴적인 특성에 대한 위로가 되는 완전주의에로의 피난처가 있다.

   수도자는 그의 아빠스를 신뢰하거나 혹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그의 영적인 아버지를 위하여 맡은 일에 종사하며,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 그 제도에 자신을 복종시킨다. 아버지에 대한 그의 신뢰는 그가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비록 영적인 지도가 훌륭한 것이라 하더라도 결국 뛰어 올라야 할 사람은 제자이다. 즉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가지고 있는 불충분함이 결코 아들이 가지고 있는 용기의 부족을 보충하지 못한다. 수도자들 중에는 쓸모없고, 아빠스를 비난하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 꼭 그렇게 맞는 것은 아니다.

   아빠스는 지도자이며 동시에 추종자이다. 그는 규칙을 보존하기 위한 서약을 한다. 그러나 그도 역시 인간의 인격을 다루는 한 사람이다. 그가 진실히 하느님께 귀를 기울여 성스럽게 되면 될수록 그는 더욱더 인간들에게 귀를 기울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어디든지 계시기 때문이다. 참다운 아빠스는 그의 회원들이 어디를 가거나 그들을 따르지 않으며 그 자신의 결정에 따라 몰아붙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둘 중의 어느 하나를 택하여 행동한다.

   아빠스와 그의 회원들 간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 주교와 교구, 본당신부와 본당 그리고 남편과 아내와 같은 것이다. 자기 아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그의 비밀을 알아챌 수 없는 것이다. 그 반면에 이끌리려 하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춤출 수가 없는 일이다.

   수도자는 그의 아빠스에게서 그리스도를 만나는데, 이는 상상으로써가 아니라 피부보다 더 진한 믿음의 표시로써 만난다. 수도자는 이 관계를 통해 사랑 안에서 성장하고 자신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행위에 응답하게 된다.

   아빠스들이나 수도자들 혹은 수도원들이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결혼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지만 만일 인간이 실패하지 않는다는 어떤 보증만을 원한다면 사랑을 할 수가 있겠는가? 실패도 역시 성공의 일부분인 것이다. 어쨌든 인간은 항상 어느 것인지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아빠스와 관련된 수도자의 역할을 통해서 수도 생활의 가장 깊은 일면에 접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믿음으로써 거기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그것만이 오직 실제적인 접근이다. 이러한 접근에서 무엇인가 부족하면 전체적인  상(像)과 전혀 접촉하지 못하게 된다.

수도 생활에 관하여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잠시 이러한 생각을 곰곰이 해보는 것이 좋다. 부두에서 배를 기다리는 것과 먼 곳에 대하여 꿈을 꾸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배 위에 있는 것과 어떠한 날씨에라도 배를 타는 것은 다른 것이다.

(코니노이아 제4집 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