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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9-01 16:04
공동생활, 수도원적 전통 3 - 빠꼬미오와 아우구스티노의 전통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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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꼬미오와 아우구스티노의 전통

 

성 아우구스티노의 규칙은 사도행전 4장32절에 나오는 초대 사도적 공동체에대한 서술로 시작한다.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누구하나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쓸 수 있게 하였다.” 베네딕도는 수도원의 물품과 그 분배에 대해서 다룰 때, 같은 구절과 2장 44절을 널리 사용한다. 규칙 71장과 72장은 수도원 공동체가 마음과 뜻을 하나로 하는데 어떻게 초대 사도적 공동체를 닮아야 하는지의 구체적 권고들이다. 빠꼬미오와 그의 추종자들은 한 영적 사부 주위에 모인 은수자들과 공동생활과의 본질적인 차이를 보았다. 빠꼬미오의 바로 후계자들 중의 하나인 테오도로는 공동생활을 사도들을 본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도적 생활을 하는 수단들을 묘사한다. 상호애와 봉사를 - 빠꼬미오는 그리스도와 그의 신성방기의 모방으로 보았다.

Armand Veilleux 아빠스는 이 빠꼬미오적 수도 생활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자매들이 서로 봉사하는 행동은 그들이 모든 이의 종이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구체적인 표현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이 봉사는 또한 그들의 자매적 사랑의 외적 표명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 사랑은 수도원 담장으로 제한되지 않았다. 빠꼬미오는 늘 하느님 백성의 사정에 마음을 썼다. 그는 자기 수도원 하나를 짓기 전에 타벤네의 농민들을 위해서 성당을 지었고, 흉년이 들었을 때에는 인근 교회에 밀을 공급했다.“

 

이렇게 빠꼬미오와 아우구스티노의 전통은 공동 생활을 초대사도적 공동체를 활기있게 한 그 정신을 회복하는 하나의시도로 보고 있다. 베네딕도는 제3장을 따로, 또한 충분히 발전된 단위로 그의 규칙에 배치하므로, 아빠스 선출에 대한 그의 논법과 특히 제71장과 72장으로 이 전통을 그의 규칙에 채택했다.

베네딕도가 규칙 첫 장에서 수도승의 종류를 다룰 때, 그는 은수자들을 열렬한 찬사로 묘사하면서 공도 생활 혹은 수도원적 생활은 후속될 은수 생활에로 방향 지워진 것으로 본다는 결론에 이끌지는 않는다. 그런 이론은 베네딕도가 죽을 때까지 수도원 안에서 항구하는 수도승을 예견하고 있는 서문 끝부분, 그리고 그의 규칙은 오직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 그럼에도 충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제73장과 모순되는 것이다. 사람을 더욱 완덕의 길에 정진시킬 수 있었던 저술가들 중에서 베네딕도가 지명하는 바실리오도 은수자에 대한 열렬한 숭배자는 아니다. 이로써 확실한 것은 베네딕도가 자체로 은수생활을 찬미했고, 수도원 생활의 경험은 은수 생활을 위한 단순한 준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베네딕도의 규칙 안에 있는 공동체는 사도행전에 묘사되어 있는 예루살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그 모델로 하고 있다. 그것은 상호애, 상호존경과 자비를 목표로 한다. 마음과 정신의 일치의 외적 표현은 물건의 공동 소유안에 나타난다. 수도승은 아빠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언급하므로 즉 그리스도론적 표상들로(목자, 의사, 아버지)아빠서의 역할을 묘사함으로써, 베네딕도는 모범을 더 먼 데까지 끌고 간다. 수도원은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그 모델로 삼는다. 베네딕도는 한 번도 명언적으로 이 모델에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아빠스에 관한 그의 논법과 로마서 8장 15절의 인용으로 추측 할 수 있을 뿐이다.

베네딕도가 은수자를 묘사하는 태도에서 그리고 수도승이 가져야 할 열정에 관한 71과 72장에서 볼때, 수도승들은 그들이 하느님을 찾는데 있어서나 악을 대항하는 투쟁에 있어서나 서로 도와야 함은 명백한 일이다. 수도원 안에 사는 수도승의 다른 은수자는 벌써 많은 형제들의 도움이 필요 없으니까, 수도원의 수도승이 그런 도움의 필요를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4장에서 착한 일의 도구들을 열거한 후, 베네딕도는 이 선행들을 실천하는 작업장은 수도원의 봉쇄구역과 공동체 안에서의 상주라고 한다. 그러나 수도원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하는 형제적 사랑과 자비는 단순한 심리적 성질을 능가해서 그리스도께 대한 수도승의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렇게 자매들의 수도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하는 사랑을 서술한 다음, 72장에서 아빠스에 대한 수도승의 사랑과, 수도승의 모든 행위를 자극하는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지배적 역할에서 보는바와 같이, 베네딕도는 이 사랑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관계 안에다 놓는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베네딕도의 규칙 안에 있는 공동체에 대한 완전한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는 부엌과 식당에 있어서의 상호 봉사에도 언급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너무 케케묵은 말 같지만, 규칙이 쓰여진 시대, 또한 수도승으로 오는 사람들의 사회적 출신 신분에 관계없이 회원들 사이의 평등에 대한 규칙의 명백한 진술을 생각할 때, 이 몸으로의 봉사는 계급과 사회적 배경을 초월하는 공동체의 개념에 의해 고취된 것 뿐이다. 귀족이 자기 차례에 야만인에게 시중을 들었다.

다시 규칙 안의 공동체의 온전한 묘사는 성무일도라는 공동체의 긷를 직시하여야 한다. 이 공동 기도는 하루 일과의 중심이었고, 베네딕도 자신이 공동기도보다 아무것도 더 우위에 두지 말 것을 말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누구나 그것이 중심에 위치함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베네딕도는 그 배치에 관심을 기울였다. 같은 기도문을 함께 낭송하고 성서와 교부들의 저서들에서 발췌한 것과 같은 것들을 함께 듣는 데에 하루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동체는 영신적으로 함께 성장해야 한다. 수도원적 생활양식에 있어서의 성무일도의 역할을 완전히 분석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 아니지만, 그 기도는 확실히 공동체의 구성요소인 동시에 그의 깊은 신앙표현이다.

요컨대 베네딕도는 확실히 그의 규칙을, 공동 생활은 한 영적 사부 밑에 모인 은수자들의 무리보다는 더한 것 이하는 영성을 따르는, 수도원적 양식의 전통에 삽입했음을 볼 수 있지만, 그 공동체는 수도승이 하느님을 찾는 데에 있어 확실하고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