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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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10-08 19:47
만남의 신비 (주님 봉헌 축일 이콘)
 글쓴이 : 인 끌레멘스 신부
조회 : 11,122   추천 : 0  
 
 
해마다 2월 2일이 되면 여러 수도 공동체에서 많은 수도자들이 첫 서원과 종신 서원을 발하면서 몸과 마음을 주님께 온전히 봉헌한다. 이 날을 1997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봉헌 생활의 날’로 정했는데, 이 날은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한 날이기 때문이다. 아기 예수님은 율법 규정에 따라 이스라엘의 모든 맏아들처럼 태어난 지 40일이 지난 다음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되셨다.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이콘은 러시아 로브고로드 (Novogorod)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5세기경 이콘으로서, 2월 2일에 지내는 주님 봉헌 축일 이콘이다.

아기 예수님의 봉헌에 관한 이야기는 루카 복음에서만 나온다 (루카 2,22-39). 이 복음 이야기는 매우 이른 시기에 교회 전례 안에 자리 잡았다. 에제리아(Egeria)라고 하는 한 유럽 여성 신자가 4세기 후반쯤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를 중심으로 몇 년에 걸쳐 중동 성지를 순례했는데, 그는 고국에 남아있는, 아마도 수도 생활을 하는 동료 “자매들”(sorores)에게 이 순례 여정을 편지에 담아 보냈다. 이 서간을 ‘에제리아 여행기’(Itinerarium Egeriae)라고 부른다. 에제리아는 395년경 예루살렘 교회가 “공현 후 40일”(Quadragesima de Epiphania)라는 이름으로 2월 14일에 주님 봉헌 축일을 성대하게 지냈다고 보고한다. 그 후 봉헌 축일은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후 40일째인 2월 2일로 날짜가 변경되어 동방과 서방 교회에서 이 축일을 받아들였다. 로마 교회에서는 정확히 언제 도입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교황 연대기’ (Liber Pontificalis)라는 문헌에 따르면, 세르지오 1세 교황(687-701) 때 로마 신자들이 성가(litania)를 부르고 행렬을 하면서 이 축일을 매우 장엄하게 지냈다고 한다. 이전에는 오랫동안 이 축일을 성모님 축일인 ‘성모 취결레’라고 부르면서 성탄 시기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 교회는 전례 개혁을 통하여 성탄 시기를 주님 세례 축일로 마무리하고 이 날의 이름을 주님의 축일인 ‘주님 봉헌 축일’로 변경했다. 그런데 비잔틴 전례에서는 우리 로마 전례와는 달리 이 축일을 그리스말로 ‘히파판테’ (Hypapante), 곧 ‘만남’이라는 이름으로 더 성대하게 지낸다.

우리는 성탄과 예수님의 유년기를 서술한 루카 복음을 읽을 때 여러 만남이 있다는 사실을 본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주님의 천사를 만나고(1,8-25), 성모님은 천사 가브리엘과(1,26-38) 친척 엘리사벳을 만나며(1,39-56), 목자들은 천사들을 만나고 (2,8-14), 그리고 아기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은 목자들을 만난다(2,15-20). 그런데 루카는 예수님이 성전을 두 번 만나는 사건을 특별히 강조한다. 곧 예수님의 성전 봉헌(2,22-39)과 열두 살 때 예수님의 첫 번째 성전 순례(2,41-52)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특히 예수님의 봉헌에 관한 회상은 전례에서 거행된다. 왜냐하면 이 축일은 중요한 질문에 고유한 방식으로 답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초기 교회 역사에서 논란이 된 것 가운데 하나는 옛 계약과 새 계약의 관계 문제였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사건 안에서 옛 율법이 새로운 율법으로 대체되었기에 구약 율법을 준수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런데 왜 구약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그리스도인들은 전례 모임에서 읽어야 하는가? 교부들은 구약 성경 전체를 보호하는데 단호하다. 구약은 유효하지만 문자에 따라 육에 따라 그런 것이 아니라 영적 의미에서 영에 따라 유효하다.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것을 영적으로 배령하는 사람의 영혼을 양육하려고 봉헌되시는 참된 빵이시다. 오리게네스는 “복되도다, 글자의 표면 아래 감추어져있는 하느님의 로고스(Logos)의 영광을 보는 눈은” 하고 말했다.

히파판테 이콘은 이러한 생각을 독특하게 해석한다. 우선 이콘은 건물의 배치를 통하여 장면을 명백히 두 부분으로 나누고 색깔도 거기에 따라 서로 다르게 표현한다. 구약을 대표하는 사람인 시메온과 안나는 예수님을 만나는 행운을 얻게 되고 그분 안에서 메시아의 기대를 알아본다. 이들은 지상의 색인 녹색 계통으로 그려있다. 특히 매우 겸손한 태도로 그려진 시메온 안에서 우리는 구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고유한 의미를 받으려고 서두르는 인상을 받는다. 다른 유형의 히파판테 이콘에는 시메온이 사랑이 충만한 동작으로 아기를 포옹하는데, 충만히 이해하는 넓은 자세를 취하는 성모님의 손에서 아기를 거의 빼앗는 듯 보이고, 또 제단과 책도 그려있는데 이것은 구약의 예식들과 성경이 새로운 정신을 받을 필요가 있음을 드러낸다.

영적인 의미를 지닌 흰색과 신적인 의미를 표상하는 노란색과 붉은색은 요셉과 함께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안고 들어가는 장면에서 발견된다. 우선 이콘의 정중앙에 위치한 아기 예수님은 타볼 산에서 변모하실 때처럼(루카 9,29) 이콘에서 유일하게 흰색이다. 하느님이신 이분으로 말미암아 옛 계약은 참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는 성모님은 붉은 색으로 그려있고 또 아기 예수님과 더불어 이콘의 중앙에 자리한다. 성모님의 색깔과 위치를 통하여 이콘 화가는 성모님의 가치와 지위를 강조하고 있다. 사실 구약의 시기는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이 서로를 찾는 때이고 인내와 기다림의 때이며 약속의 때였다. 시온의 딸이며 겸손한 여종인 마리아는 자신의 존재 전체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다(루카 1,38). 이제 때의 완성이신 예수님은 성모님을 통해서 구약의 백성들을 만나신다.

히파판테 이콘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를 만나는 신비를 보게 된다. 이 만남 한 가운데 성모님이 현존하고 계신다. 구약이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그 의미가 고양된 것처럼, 우리도 성모님의 전구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삶의 가치가 변하게 되고 일상적인 삶 안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표현되는 하느님의 사랑에 언제나 눈이 열려 있게 된다. 하느님의 사랑은 슬픔이나 실패, 고통이나 불행과 같은 것을 통해서도 표현될 수 있는데, 만남의 신비를 이미 사는 사람은 성모님처럼 그 안에 담긴 진실을 볼 수 있고 또 그런 경험을 통해서 성숙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성모기사 2007년 2월호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