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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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10-08 19:43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글쓴이 : 인 끌레멘스 신부
조회 : 11,259   추천 : 0  
 
 
우리는 성탄 팔일 축제 가운데 새해의 첫날인 1월1일을 ‘천주의 성모 대축일’로 지내면서 성탄의 신비와 연관하여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특별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오늘 소개하는 이콘은 러시아에서는 ‘즈나메니에’(Znamenie), 곧 ‘표징의 성모님’으로 불리는데 이 러시아 이름은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입니다”(이사 7,14)라는 성경 말씀에서 유래한다. 이 이콘에는 성모님의 가슴에 아기 예수님이 그려져 있다. 마리아 안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요한 1,14). 그래서 성모님은 하느님과 피조물이 서로 만나고 하나가 되는 장소가 되신다.

이 이콘의 또 다른 이름은 라틴말로 ‘오란스’(orans)이다. 다시 말해서 ‘기도하시는 성모님’이다. 마리아의 자세를 보면 양팔을 벌린 모습이다. 양손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것은 고대 중동 세계에서 “위에 있는 신들”에게 기도하는 외적 동작이며 또 무기를 안 들었다는 평화와 신뢰와 간청의 자세였다. 구약성경에서도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께나 (탈출 9,29.33; 시편 28,2; 63,5; 88,10 등등) 성전을 향해서 (1열왕 8,38 등) 두 손을 들고 기도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양팔을 드는 자세는 유다인의 전형적인 기도 자세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기도 동작을 받아들였다. 더 나아가 교부들은 팔을 펴는 자세를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수난을 드러내는 표지로 해석하였다. 이 기도 자세를 우리는 미사 가운데 사제가 두 팔을 벌리고 기도문을 바칠 때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이콘의 성모님은 기도하고 계시는 성모님이다. 우리는 기도란 하느님과 우리의 대화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기도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우주적인 사건이라는 것은 잘 모르는 듯하다. 기도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인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 봉헌되는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요한 16,23).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는 성취된다. 이것은 어떠한 법률적인 청원이나 외적인 청원이 아니다. ‘이름’은 히브리인들에게는 아주 내밀하게도 한 사람의 인격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우리 기도가 그리스도의 기도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고, 이 방식으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나누시는 대화에 참여하게 된다.
성모님의 가슴에 그려져 있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시고, 말씀께서도 성모님과 같은 자세로 기도하는 모습이시다. 그런데 동시에 예수님은 벌린 양손으로 강복을 주시는 모습이다. 이콘은 이러한 방식으로 ‘테오토코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말씀을 영접하셨고 그 말씀을 간직하기 시작하셨을 때부터 모태에 간직한 아드님께 일치되어 계심을 강조한다. 성모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하신다. 곧 그리스도의 기도에 참여하심으로써 당신 아드님 그리스도를 닮으신다. 기도는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사람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모시킨다. 사실 성모님의 자세는 아드님의 자세이다. 곧 성모님의 자세와 동작은 하느님이시며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사실 성모님은 기도하시는 분이 아니라 기도 자체가 되신 분이시다. 그분은 끊임없이 기도하심으로써(1테살 5,17 참조) 기도의 상태로 넘어가신 분이기 때문이다. 성모님의 기도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다. 이러한 까닭으로 우리는 어떠한 괴로움 속에서든지 항상 천주의 모친이 바치는 기도에 달려간다. 특히 우리는 묵주기도와 성모송에서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하고 성모님께 우리를 위한 기도를 자주 청한다.

그렇지만 모든 기도가 하느님께 드리는 간청은 아니다. 기도의 전통적인 또 다른 정의는 ‘하느님께 마음을 들어 올리는 것’, 곧 관상(contemplatio)이다. 관상 기도를 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기다리고 하느님은 그 사람의 마음에 내려오신다. 성모님이 바로 관상의 사람이시다. 성모님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힘(성령)을 통한 하느님의 현존을 본다. 사실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장소는 그분의 힘이 역사하심을 느끼는 곳이다. 그래서 많은 교부들은 마리아를 “제대”, “분향”, “성전”으로 칭송한다. 성모님은 온 정신으로 온 영혼으로 말씀을 관상하심으로써 말씀을 마음속에 먼저 잉태하셨고 (루카 1,29; 2,19.51 참조), 그런 후에 말씀을 육신으로 잉태하셨다. 이처럼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을 기억하는 것이 성령의 힘으로 육신이 되었다.

우리는 이콘에서 성모님 발아래 있는 주홍색 방석을 본다. 이것은 동로마 제국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 황궁에 있는 옥좌의 방석을 가리키는데 그리스도의 왕권에 참여하는 성모님의 고귀한 신분을 상징한다. 또한 교부들은 이 방석에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본다. 자신 안에 그리스도를 지니고 그리스도와 동일하게 되어 새로운 세상의 상징이신 동정녀 앞에 이 세상은 작은 것이 된다. 그래서 비잔틴 전례 기도문은 이렇게 성모님을 칭송한다. “마리아는 하늘이 담을 수 없는 분을 모태에 간직하셨기에 하늘보다 넓으시도다.”

이콘을 통해서 우리는 성탄의 신비 안에서 기도하시는 어머님을 만난다. 우리도 성모님과 함께 늘 기도하는 사람이 될 때 우리의 고귀한 품위를 깨닫게 된다. 기도하는 우리 마음속에 말씀이 잉태되실 때, 우리 안에 하느님이 손님이 되실 때 우리를 파괴하거나 축소시키거나 소외시키지 않으시고, 우리를 참된 위치에, 곧 우주의 지배로서의 자리에 앉게 하신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당신에게서 참되고 진실한 기도를 배우게 하소서. 아멘.”

(성모기사 2007년 1월호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