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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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10-08 19:32
가톨릭 교회의 사순절 2 (개신교 '들소리신문' 기고글)
 글쓴이 : 인 끌레멘스 신부
조회 : 10,960   추천 : 0  
단식과 절제와 참회와 나눔을 통하여 주님의 죽음과 부활 축제인 파스카를 준비하는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한다고 그랬다. ‘재의 수요일’이란 말은 이 날 신자들은 머리에 재를 받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가톨릭 교회에서 재의 수요일 예식은 성대하게 거행된다. 이 예식은 통상적으로 미사 안에서 이루어진다. 미사는 크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듣는 말씀 전례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성찬 전례로 구성된다.

이날 말씀 전례에서 성경 독서 3개를 듣는데 구약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느님 말씀을 통하여 신자들은 사순절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우선 모든 이가 참회를 하라는 요엘 예언자의 호소 (요엘 2,12-18)를 듣는다. 그리고 하느님과 화해하라는 바오로 사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권고 (2코린 5,20-6,2)에 귀를 기울인다. 끝으로, 제자들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 (마태 6,1-6.16-18)을 경청한다. 그러고는 사제는 강론(설교)으로 성경 말씀을 풀이해 주고 이어지는 재의 축복과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에 관하여 설명한다. 이렇게 신구약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선하심 앞에 우리가 범한 죄를 더 예민하게 인식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신뢰보다는 하느님의 옛 백성이 지녔던 완고한 마음을 더 닮았으며 또 닮고 있다는 사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말씀 전례가 끝나고 사제는 다음의 기도문으로 재를 축복한다. “하느님, 겸손한 사람을 어여삐 보시고 속죄하는 사람을 용서하시니, 저희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고, 이 재를 머리에 받으려는 주님의 종들에게 (십자가를 그으면서) 강복하소서. 저희가 주님의 은총으로 사순시기의 재계를 충실히 지키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성자의 파스카 축제를 잘 준비하게 하소서.” 그러고는 사제는 말없이 재에 성수(聖水)를 뿌린다. 다음에 사제는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 재를 얹어 주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 또는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창세 3,19 참조)고 말한다.

이 예식에서 사용하는 재는 그 전 해 성지주일(聖枝主日) 예루살렘 입성 기념식 때 나귀를 타고 도성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환영하면서 사용한 나뭇가지를 태운 것이다. 신자들은 이 나뭇가지를 집으로 가져가 가정에 걸려있는 십자가에 걸어 재의 수요일 전까지 보관한다. 그런데 재는 어떤 뜻으로 재의 수요일 전례에서 사용되는가. 사람의 마음은 눈에 안 보인다. 우리가 감사의 마음을 선물에 담아 다른 이에게 표현하듯이, 전례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물질적인 표지를 통해 하느님께 드러낸다. 이것을 전례의 육체성(肉體性)이라고 부른다. 이 표지가 담고 있는 속뜻은 성경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성경에서 재, 티끌, 흙은 다 같은 말이다. 재는 우선 우리 인간의 나약성과 우리의 죽을 운명을 상징한다 (창세 2,7; 18,27; 집회 17,32; 전도 3,20; 시편 103,29). 성서 여러 곳에서 확인되듯 우리의 창조주 하느님께 우리 존재는 재와 같이 미미함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나약성을 표현하는 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재계와 회개를 드러내는 표지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악 때문에 우리는 슬픔을 느끼고, 파스카를 향해 가는 여정에서 우리가 이 악에서 해방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희망이 구체화되는 것이 바로 회개이다. 참회하는 사람이 자신의 내적인 자세를 밖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동작이다 (욥 42,6; 요나 3,5-6). 또한 재는 구원을 간청 드리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께 애원하는 기도의 표현이다 (유딧 4,11; 9,1).

그러나 재를 얹는 것이 순전히 죽음과 우리의 타락과 죄를 기억하고 신음하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으로 일으켜지는 부활의 표지이다. 우리는 생명으로 불림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았다. 티끌에서 온 우리는 다시 티끌로 돌아갈 것이지만 우리의 운명이 아니다. 흙으로 지은 아담이 하느님의 입김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된 것처럼 (창세 2,7), 부활 밤 세례성사의 물을 통하여 우리의 진흙도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성령의 힘을 통해 파스카로 이루어진 생명에 참여할 것이다 (로마 8,11). 그래서 재를 머리에 얹는 행위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죄에서 구원으로 건너가는 새로운 해방에 대한 교육적이고 효과적인 표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