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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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5-26 16:04
정주(Stabilistas) - 인 끌레멘스 신부
 글쓴이 : 양치기
조회 : 7,181   추천 : 0  
정주는 파스카의 여정이며 사랑의 뿌리내림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을 바탕으로 서로 친교를 맺고 사는 공동체입니다. 수도 공동체에 결합된 봉헌회도 공동체입니다. 비록 함께 살지는 않지만 월례 모임을 통해 회원들 서로 친교를 나누면서 공동체 삶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는 '봉헌'이라는 공적 약속을 통하여 수도 공동체에 영적으로 결합되어 베네딕도의 가족이 됩니다. 베네딕도회 수도자와 봉헌회원들의 공적 약속 가운데 정주(Stabilitas)에 대한 약속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주 약속이 우리를 참된 베네딕도 회원으로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정주는 우선 그리스도께 굳건히 뿌리내리겠다는 약속이고 동시에 구체적인 한 공동체에 온전히 결합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정주의 실천은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미가 사라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 살면서 우리는 고독과 거부와 분리를 몸으로 깨닫습니다. 그래서 참된 공동체를 목말라 합니다. 수도원의 봉헌회라는 공동체를 지인이나 소문을 통해서 알게 되어, 봉헌회에서 생동감이 넘치는 온기와 사랑을 발견합니다. 이때 느끼는 기쁨과 사랑과 열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우리는 그토록 아름답게 보았던 공동체가 무서운 장소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사실 공동체는 관계의 장소요 우리의 상처 입은 감정을 밝히고, 다른 이들, 특히 구체적인 어떤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밝히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동체는 그 안에서 한 개인의 한계와 두려움과 이기주의가 계시되는 장소입니다. 그 안에서 자신과 타인의 약한 모습, 다른 이를 생각하기에는 무능력한 자신의 모습, 서로에게 가로 막혀 있는 장벽, 불평과 질투, 증오와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계시됩니다. 그래서 공동체 삶에서 내 자신이 사랑하기에 얼마나 무력한지, 다른 이들을 얼마나 거부하는지, 내 자신을 얼마나 폐쇄하는지... 이처럼 보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공동체 삶은 인간의 한계와 약함과 어두움에 대한 고통스러운 계시입니다. 상처를 받고 실망을 하고 좌절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공동체를 떠나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공동체에 멀리 떠나있기도 합니다. 함께 공동체에 들어왔던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볼 때 공동체에 대해 의심을 품습니다. 마음이 돌처럼 굳어집니다. 자신이 처음에 생각했던 공동체의 이상과 현실이 서로 어긋날 때 위기는 찾아옵니다.

이 위기의 시기에 우리는 정주 약속의 참된 의미를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정주 약속을 머리로 살았다면 이제는 실제 마음과 몸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위기의 시기에 우리 각자를 공동체 안에 더욱 깊이 뿌리 내리도록, 우리 자신이 죽어서 새로운 생명의 원천이 되도록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요한 12,24). 이 복음 말씀을 실제로 살게 됩니다. 이제는 어떤 인간적인 노력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친히 주도권을 갖고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개방합니다. 우리 자신을 하느님에 온전히 맡겨드리는 것이 참된 기도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마음에 당신의 자리를 마련해서 우리 마음을 정화하고 비추어주시도록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상처로 무뎌진 우리 마음이 다시 살아 움직일 때 우리는 사랑받고 용서받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때 사랑과 성령의 힘 덕분에 우리 마음은 깨끗함으로 회복됩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영혼은 하느님 안에서 형제자매들을 다시 만납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받은 여러 가지 상처와 실망과 좌절은 하느님과 만나고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만나는 장소가 되고, 다시금 희망과 사랑이 넘치는 해방과 구원의 장소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정주 약속은 죽음을 통해 부활로 넘어가는 파스카의 여정을 실제로 사는 약속입니다. 사실 파스카의 여정은 사랑의 뿌리내림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의 사랑과 타자의 사랑은 같은 원천과 같은 목표가 있다"고 갈파했습니다. 타자의 사랑 안에서 성장하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도 성장합니다. 그러나 타자를 향해 마음을 닫는다면 하느님을 향해서도 마음을 닫습니다. 그래서 베네딕도 성인도 하느님께로 이끄는 좋은 열정을 다음과 같이 열거합니다.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고,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서로 다투어 순종하고, 아무도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를 것이며, 형제적 사랑을 깨끗이 드러내어라"(규칙서 7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