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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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10-14 23:42
성 베네딕도회의 영성: 기도하고 일하라
 글쓴이 : 인 끌레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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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도원에는 종교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방문한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문장으로 요약되는 베네딕도회 삶을 본 방문객들은 우리의 영성을 알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이 물음에 명쾌한 답을 하기가 무척 곤란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베네딕도회는 다른 수도회들과는 달리 어떤 뚜렷한 목적을 위해 창설된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베네딕도회 영성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다른 모든 수도 공동체의 영성에 근간으로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네딕도회의 영성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하느님을 찾는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베네딕도회 영성을 서방 수도 제도의 입법자 또는 수도생활의 사부(師父)라 불리는 성 베네딕도(480-547)가 저술한 규칙서에서 찾을 수 있다. 성인은 시대가 요청했던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모범적 삶을 살았으며 영적으로 절도와 조화를 이루는 훌륭한 수도 규칙서를 썼다. 이 규칙서는 당시와 중세기의 수도생활 뿐 아니라 교회 및 사회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크게 기여하였고 오늘날도 그러하다.

- 하느님을 찾는 삶 (Quaerere Deum), 곧 회심의 삶
베네딕도회는 전통적인 수도 영성을 사는 공동체이다. 여기서 전통적인 수도 영성이란 초기 사막 수도승들이 추구했던 삶, 곧 ‘하느님을 찾는 삶’을 사는 영성이다. 수도승은 철저한 회심을 통해 침묵, 고독, 절제 등 전통적인 은수자적 요소를 보존하면서, 공동체에 정주하여 겸손되이 규칙과 아빠스에게 순명하고, 기도, 성독, 노동을 실천하는 중에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데 전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찾는 삶은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삶, 곧 회개의 여정인 것이다. 베네딕도는 규칙서 첫 머리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들어라, 아들아, 스승의 계명을 경청하고 네 마음의 귀를 기울이며 어진 아버지의 훈시를 기꺼이 받아들여 보람 있게 채움으로써 불순종의 나태로 물러갔던 그분께 순종의 노고로 되돌아가거라” (규칙 머리말 1-2). 베네딕도회 수도승은 갈라지지 않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일과 노동과 공동체 생활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 여정을 걸어간다.

- 하느님의 일 (Opus Dei)과 노동(Labor)의 조화

하느님을 찾는 길 가운데 가장 뛰어난 도구는 성당에 모여 함께 거행하는 공동 기도이다. 베네딕도회 수도승은 베네딕도가 “하느님의 일”이라고 표현한 시간전례(성무일도) 거행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위에 둔다. 그래서 베네딕도회의 영성은 전례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의 일은 순수한 마음으로 창조주 하느님을 시편을 통해 찬양하는 것이다. 아름다움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은 아름답다. 그래서 베네딕도회의 전례는 창조주 하느님과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표현된다. 하느님의 일 안에서 수도승은 자신을 초월하여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궁극적으로 천상 전례와 하나가 된다. 이처럼 수도승의 삶 전체가 기도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 베네딕도는 하루 생활과 한해 생활을 공동 기도를 중심으로 배정하고 있다.

하느님을 찾는 길 가운데 중요한 또 다른 도구는 ‘노동’이다. 베네딕도가 말하고 있는 노동은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 역시 수행생활에서 탁월한 영적 가치를 지닌다. 우선 노동은 수도승들의 생계에 도움이 된다. 노동은 물질을 대할 때 내적 자유를 주고 올바른 규준을 정립하게 한다. 둘째로 노동은 이웃에 대한 봉사이며 애덕의 실천이다. 끝으로 노동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찬양이다. 베네딕도에겐 노동이 공동 기도와 함께 또 다른 주요 과제로 고려되어 매일의 시간표에 배정되었다.
기도와 노동의 조화에 대한 가르침은 하느님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일치, 관상과 활동의 일치를 실현하도록 깨우쳐 주었으며, 노동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던 시민들의 개화를 촉진했고 중세기 새로운 문화의 토대를 준비하며 박차를 가한 저변 쇄신운동이기도 했다.

- 함께 사는 기술 (공동체 삶): 순명, 섬김, 겸손, 들음, 손님접대

다른 많은 수도회에서도 공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공동생활은 봉사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베네딕도회는 공동생활 자체가 목적인 것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의 삶을 공동생활을 통하여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생활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함께 사는 기술 가운데 최우선은 순명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순명을 실천하는 것이다. 수도승은 성경 말씀과 전통이 요구하는 것들과 공동체의 규칙,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아빠스에게 순명해야 한다. 이 순명은 불순명으로 인해 범한 죄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하느님께 되돌아감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부께 순명하셨듯이 그분을 본받아 수도승은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장상에게 순명해야 한다. 이것은 어느 것도 그리스도보다 더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알맞는 일이며, 장상으로부터 명령받을 때 그것을 하느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여 지체없이 실행하는 자세이다. 그러나 순명은 장상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 사이에서도 서로 요구되는 것이다. “모든 이들은 순명의 미덕을 아빠스에게 드러낼 뿐 아니라 형제들끼리도 서로 순명할 것이며, 이 순명의 길을 통해서 하느님께 나아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규칙 71,1-2).

순명이 구체적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서로 섬기는 삶’이다. 섬기는 삶이 공동체를 활력있게 하고 복음의 공동체로 건설하게 하는 내적 원동력이다. 베네딕도는 주간 주방 봉사, 식당 독서 봉사, 성당에서 전례 봉사 등 여러 구체적 섬김을 통해서 모든 형제들이 큰 공로와 애덕을 닦게 된다고 한다. 베네딕도는 특별히 병든 형제, 노인과 어린이들, 그리고 잘못 때문에 파문당한 형제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모든 것에 앞서 모든 것 위에 병든 형제들을 돌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 하듯이 그들을 섬길 것이다” (규칙 36,1). 베네딕도는 서로 섬기는 것은 단순히 나약한 이를 고려한다는 인간적 차원을 넘어 수행의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장상과 형제들에게 순명을 하기 위해서는 겸손의 덕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베네딕도는 규칙 7장에서 겸손의 열두 단계를 가장 길게 설명하고 있다. “겸손의 이 모든 단계들을 다 오른 다음에 수도승은 하느님의 사랑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규칙 7,67). 그런데 겸손은 성경에 드러난 하느님 말씀에 대한 참다운 ‘들음’(audire)에서 나온다. 경청의 구체적 수행이 요즘 교회에서 많이 실천하고 있는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이다. 성독(聖讀)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하느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이다. 하느님의 일이 공동체적 성격의 기도였다면 성독은 개인적 성격을 지닌 기도이다.
공동체 삶은 수도자만 위하는 폐쇄적인 삶이 아니라 수도원을 넘어서 세상과 모든 사람을 향해 열려 있다. 그래서 베네딕도회 영성에서 ‘손님접대’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일 것이다”(규칙 53,1)

베네딕도회 수도승인 안셀름 그륀 신부는 ‘베네딕도 이야기’에서 베네딕도회 영성이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며 현세적이고, 그리고 넓고 자비와 사랑이 넘치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

경향잡지 2007년 10월호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