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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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30 20:51
성 마크리나의 생애(본문8)
 글쓴이 : 허 로무알도
조회 : 9,658   추천 : 0  
성 마크리나의 생애(본문8)
 
 
마크리나의 십자가와 반지
30. 이런 결정을 하고 나자 일단은 거룩한 시신을 고운 아마포로 감싸야 했습니다. 우리는 일을 분담하였고 각자가 자신이 맡은 일을 완수하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저의 시종 한 사람에게 명하여 의복을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렸던 베티아나가 손수 성인의 머리를 단장하고 나서 자기 손을 마크리나의 목으로 가져가면서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성인께서 목걸이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뒤에 있는 잠금 고리를 푼 다음, 손을 뻗어 제게 철로 된 십자가와 같은 금속으로 된 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두 개가 모두 가는 줄에 끼워져 항상 그의 가슴 위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베티아나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이 유품을 나누어 가집시다. 당신은 십자가를 간수하시오. 나는 반지를 물려받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십자가가 반지의 인장위에도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저는 반지를 물려받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제게 다시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그 유품을 택하시는데 있어서도 현명하시군요. 반지의 테두리는 비어 있고 거기에 생명나무의 한 조각이 들어 있습니다. 반지의 겉에 새겨진 십자가는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크리나의 기적
31. 바야흐로 이 순결한 육신에 수의를 입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위대한 마크리나의 분부에 따라 제가 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저와 함께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부인이 제 곁에서 그 일을 함께 했습니다.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성인께서 하신 위대한 기적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 묻히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가요?”
제가 물었습니다. 그는 마크리나의 가슴 한 부분을 드러내 보이며 제게 말했습니다.
“거의 알아 볼 수 없는 희미한 흉터가 피부에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그것이 보이십니까? 그 상처는 작은 송곳에 긁힌 자국 같아 보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등불을 제게 보여준 그 부위로 가까이 가져다 대었습니다.
“그 곳에 그런 희미한 상처가 있다는 것이 무엇이 그리 놀랄만한 것입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다시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의 기념으로 그의 몸에 남겨진 것입니다. 어느 날 몹쓸 병이 그 부분에 도졌습니다. 종양을 째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 두어 병이 심장 가까이 까지 퍼진다면 더 이상 손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의술도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주 그에게 의사의 진찰을 받아보자고 간청도 해보고 애원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마크리나는 자기 몸의 일부를 누군가에게 드러내 보여야 한다는 것을 병보다도 더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밤 여느 때처럼 손수 어머니의 시중을 든 후에 그는 성당으로 가서 치유의 하느님 발치에 엎드려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때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땅을 적셨는데, 그는 눈물로 젖은 흙을 자기 병의 치료제로 사용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낙담한 나머지 다시 한 번 의사에게 가자고 애원했을 때, 그는 어머니께 병이 도진 부위에 어머니의 손으로 성호를 긋는 것으로 충분히 병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어머니가 병든 부위에 성호를 긋기 위해서 손을 그의 가슴 위로 가져갔고 그 때 그 성호는 효력을 나타내어 종양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그가 덧붙였습니다. “끔찍한 종기가 있던 곳에 작은 흉터가 생겨 끝가지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 흉터가 제 생각에 하느님의 신적인 개입에 대한 기념이 되었고 하느님께 대한 끊임없는 감사의 동기와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크리나의 염습
32. 우리가 모든 일을 마쳤을 때, 시신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들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여부제는 동정녀들이 마치 신부처럼 단장된 마크리나를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다시 한 번 제게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어머니에게 받은 어두운 색의 외투 한 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성인의 거룩한 아름다움이 부수적인 것에 불과한 수의의 화려함에 가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 옷을 입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의 견해를 수긍하여 외투를 마크리나에게 입혔습니다.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혔어도 그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름다움은 번쩍이는 빛처럼 솟아나오는 것 같았는데 의심할 여지없이 신적 권능이라는 은총이 그의 육신에 더해진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모습 이었습니다.

시신 둘레에서 시편을 노래함
33. 우리가 그러한 준비로 분주한 동안 주위에서 동정녀들이 애통해 하며 시편을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그렇게도 빨리 온 근방에 퍼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근처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곳으로 몰려들었고 그들의 수가 하도 많아서 현관은 더 이상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밤새 마크리나의 주위에서 순교자들의 축일에 부르는 찬미가를 노래하였습니다. 새벽이 되었을 때는 근처 온 지역에서 온 남녀의 무리는 흐느껴 우느라 시편을 노래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불행에 마음이 미어졌지만 그 와중에도 저는 할 수 있는 한 그의 장례를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잘 치러낼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밀려드는 사람들을 남녀로 구분하여 여자는 동정녀들의 대열에, 남자는 수도승들의 대열에 합류시켰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시편을 노래하는 소리가 성가대의 노래에서처럼 통일되고 리듬감 있고 조화로우며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선율로 어울러져 균일하게 나올 수 있도록 조율하였습니다. 날이 조금 더 밝자 이 외딴 곳 주위는 밀려드는 사람들의 무리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사제와 함께 온 그곳의 주교 아락시우스는 장례 행렬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도록 지시했습니다. 먼 길을 가야하는 우리가 갑작스럽게 이동할 경우 군중에 의해 길이 막힐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동시에 모든 사제에게 시신을 운구하도록 명했습니다.

장례 행렬
34. 이런 결정이 있고 나서 사람들은 그의 지시를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시신이 놓인 들것 앞에 섰고 아락시우스를 제 맞은편으로 불러 거기 서게 했습니다. 그리고 들것 뒤에는 고위 성직자 두 사람을 위치시켰습니다. 저는 알맞은 속도로 천천히 길을 열어 가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장례행렬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사람들은 들것 주위로 몰려들었고 그 성스러운 광경을 보고 또 보려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더디게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들것의 양편에서는 길게 열 지은 처녀들과 수많은 부제들과 하위 성직자들이 손에 초를 들고 대열을 이루어 걸어갔습니다. 이 모든 것은 마치 전례에 있어서의 행렬과도 같아 보였고, 우리는 세 소년이 찬미가를 부르는 것처럼 행렬의 선두에서 후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목소리로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은수처에서 부모님의 유해가 안치된 거룩한 순교자 성당까지는 7~8 스타디움(stadium) 되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거리를 가는 데는 꼬박 한나절이 걸렸습니다. 우리를 따라왔던 사람들의 무리가 계속 늘어나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 행렬은 앞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는 들것을 내려놓고 기도를 바쳤습니다. 우리의 기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다시 탄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시편을 노래하는 소리가 그쳤고 동정녀들은 마크리나의 거룩한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마크리나를 안치하기로 하였던 부모님의 무덤은 이미 열려 있었습니다. 그때 동정녀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더 이상 우리가 그의 거룩한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울부짖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동정녀들도 그와 함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러한 소란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해져서 거룩하고 정연하게 시편을 노래할 수 없었고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오열로 인해 들리는 것은 오직 동정녀들의 울부짖는 소리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렵사리 손짓으로 조용히 할 것을 명했고, 선창자가 주도하여 교회에서 부르는 귀에 익은 기도를 노래하자 사람들은 마음을 가라앉혀 다시 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