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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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30 20:50
성 마크리나의 생애(본문7)
 글쓴이 : 허 로무알도
조회 : 9,303   추천 : 0  
성 마크리나의 생애(본문7)
 
 
마크리나의 죽음
25. 이 말을 마치자 마크리나는 자기 눈과 입술과 가슴에 성호를 그었습니다. 그는 열 때문에 입이 점점 타들어가 발음을 분명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목소리도 점차 사그라져서 우리는 그의 입술과 손놀림을 보고 그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윽고 밤이 되자 누군가 등불을 가져왔습니다. 마크리나는 눈을 떠 빛을 응시했는데, 그 빛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내적 열망에 따라 입술을 움직여가며, 마음으로 그리고 손짓으로 자신의 원을 채울 뿐이었습니다. 성호를 긋기 위해 손을 얼굴로 가져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감사기도가 끝났음을 알았습니다. 기도를 마치면서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삶과 기도를 동시에 마감하였습니다. 그는 숨도 쉬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마크리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제게 했던 청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제가 손수 자신의 눈을 감겨주고 시신을 관례대로 수습해 장례를 치러주기를 원했었습니다. 그의 청을 소홀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저는 고통으로 마비된 제 손을 그의 거룩한 얼굴로 가져갔습니다. 저는 그의 눈을 감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잠이 든 것처럼 그의 눈꺼풀이 단아하게 눈을 덮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의 입은 꾹 다물어져 있었고, 손은 단정하게 포개져 가슴 위에 놓여있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이미 바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수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동정녀들의 슬픔
26. 제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들과 제 주위에서 들려오는 동정녀들의 슬픈 탄식으로 제 마음은 곱절로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침묵 속에서 슬픔을 삭이고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없는 마크리나로부터 혹시라도 꾸지람을 듣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모양으로, 그들은 그에 대한 경외심으로 괴로움을 가슴에 담아두고서 터져 나오려고 하는 오열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 울음소리라도 내어 분부 받은 것을 어기고 자신들의 스승을 슬프게 할까봐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불이 마음을 태우고 있어 침묵으로도 고통은 잠재워지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더 이상은 억누를 수 없는 애끓은 울음이 터져 나왔고 제 정신도 걷잡을 수 없이 되었습니다. 넘쳐흐르는 비탄의 격류에 휩쓸린 것처럼 제 정신은 고통에 사로잡혀,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슬픔으로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동정녀들이 탄식하는 까닭은 합당하고 사리에 맞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적 애착이나 인간적 교분 상실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엄습한 불행이 주는 괴로움 때문에 우는 것과도 전연 달랐습니다. 그들은 마크리나의 죽음으로 자신들이 하느님 안에 있는 희망과 영혼의 구원으로부터 멀어졌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그들은 울부짖고 신음하며 탄식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꺼져버렸습니다. 우리 눈의 빛은.
치워져버렸습니다. 우리를 이끌던 등불은.
이제 없어져버렸습니다. 우리 삶의 안전은.
치워져버렸습니다. 불멸의 보증은.
풀려버렸습니다. 우리 일치의 끈은.
이제 무너져버렸습니다. 심약한 이들의 보루는.
사라져버렸습니다. 약자들의 위로는.
당신과 함께 했을 때, 밤은 우리에게 순결한 당신 삶의 빛으로 낮과 같이 빛났습니다.
하지만 지금 낮조차 우리에게는 암흑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마크리나를 어머니 혹은 양어머니라고 부르면서 다른 이들보다 더한 슬픔을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기근이 들었을 때 길에서 해매고 있던 이들로서 마크리나가 거두어 먹이고 지도해 순결하고 흠 없는 삶으로 이끌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레고리우스가 그들을 진정시킴
27. 저는 그들이 내던져져 있던 슬픔의 심연으로부터 제 자신을 다시 추슬렀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저에게는 마치 그가 곡소리로 주변이 어수선해진 것을 나무라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동정녀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를 보십시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점잖게 처신하라고 가르친 그의 유훈을 기억하십시오. 이 신적인 영혼은 몸소 여러분에게 눈물로 기도할 것을 명했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는 그 때 뿐 이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비탄의 신음소리를 내는 대신 모두 한목소리로 시편을 노래해야합니다.” 저는 곡소리가 사그라지도록 더 큰 소리로 그렇게 외쳤던 것입니다. 그런 후에 저는 그들에게 근처에 잠시 물러나 있도록 명했습니다. 하지만 마크리나를 생전에 돌보았던 몇몇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있게 하였습니다.

베티아나(Vetiana)와의 대화
28. 그들 중에 한 부인이 있었는데, 그는 지체 높은 가문 출신으로 젊어서부터 부와 가문, 미모와 기품으로 널리 알려졌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고위층에 있던 한 남자와 결혼해서 잠시 동안 그와 함께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합은 그가 아직 젊었을 때 끊어져버렸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위대한 마크리나를 독신생활의 보호자와 지도자로 삼고 대부분의 시간을 동정녀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에게서 거룩한 삶을 배웠습니다. 그의 이름은 베티아나였고, 그의 부친 아락시우스(Araxius)는 원로원 의원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지금은 시신을 잘 단장해야할 때이므로 이 순결하고 흠 없는 육신에 깨끗한 수의를 갖추어 입히는데 어떠한 군소리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성인의 뜻에 어긋나는 일은 어떠한 것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일을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성인께서 합당하다고 여겼을 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바로 하느님을 기쁘게 하고 하느님의 마음에 흡족히 드는 것을 마크리나도 바랐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람파디아(Lampadia)와의 대화
29. 동정녀 성가대를 이끌던 여부제 중 하나인 람파티아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는 마크리나가 자신의 장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그것에 대해 묻자 - 그리하여 그는 우리의 논의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성인께서는 순결한 삶, 그 자체로 자기를 단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분께서 살아계셨을 때의 예복이었고, 그분이 돌아가신 지금은 수의입니다. 몸을 치장하는 것에 관해 말하자면, 그분께서는 생전에 아무것도 가지고 계시지 않았고, 현재의 상황에 대비해서 남겨두신 것도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신을 단장하고 싶어도 지금 여기에는 그것을 위해 쓸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창고 안을 살펴보면 장례를 위해 쓸 만한 것들을 찾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창고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분께서 가지셨던 전부를 보고 계십니다. 외투와 머리 수건과 발에 신겨진 닳은 신발, 이것들이 그가 누렸던 부와 재산 전부입니다. 당신께서 보고 계신 것 이외에 감추어둔 상자 안에 있거나 비밀의 방 안에 보관 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부를 쌓아둘 오직 한 곳, 즉 천상의 보물 창고만을 알고 계셨습니다.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쌓아두시고 지상에는 어떠한 것도 남겨두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물었습니다.
“장례를 위해 제가 준비한 것을 내놓는 것이 그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는 제게 자신은 마크리나가 그것을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분이 아직 살아 계시다면, 두 가지 이유에서 당신의 그런 예우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사제직의 거룩함에 대해 늘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또 당신과의 혈연을 각별히 생각하셔서 동생이 보내온 것을 거절할 생각을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당신께 손수 자신의 시신을 수습하도록 청하셨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