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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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27 21:52
수도생활이란? ('97 전례피정 강의)
 글쓴이 : 허 로무알도
조회 : 8,353   추천 : 0  
수도생활이란?

빠스카 성삼일(97. 3. 28) 전례 피정 강의


수도생활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솔직히 난감했습니다. 제 자신도 아직 수도생활이 뭐가 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고심하다가 그냥 용기를 내어 부딪혀 보기로 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첫 눈에 느끼셨겠지만, 저는 수도생활의 연륜이 아주 짧습니다. 올해로 10년째 접어들었는데 이 짧은 기간동안 제가 체험하고 느낀 바를 토대로 수도생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수도생활이 무엇인가? 너무 막연한 질문처럼 들립니다. "천상적인 삶", "봉헌생활", "축성생활", "종말론적 삶", "금욕생활" 등등 여러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수도생활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찾는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을 찾는 생활은 수도생활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을 찾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아담과 에와의 원죄로 인해 또 우리 자신의 본죄로 인해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세례는 우리가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는 출발점입니다. 세례 이후 우리는 하느님을 찾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럼 왜 하느님을 찾아야 하는가? 왜 하느님께 돌아가야 하는가? 이유는 하나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행복은 하느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지기를 원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돈이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믿고 평생을 돈만 벌다 인생을 마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권력이나 명예가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믿고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또는 지식이나 학벌, 쾌락을 찾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러한 것들이 결코 참된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 참된 행복이 있다고 믿기에 하느님을 찾고, 또 그분께 나아가려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 이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성소 즉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소라 하면 흔히 사제 성소, 수도 성소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이해입니다. 좀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리스도교인들은 세례를 통해 이미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보편 성소 또는 보편적인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수도자나 성직자로 부르심을 받는데 이것을 특별 성소라 합니다. 특별 성소는 보편 성소 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보편 성소' 안에 '결혼 성소'와 '특별 성소'가 있고 또다시 '특별 성소' 안에 '사제 성소'와 '수도 성소'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수도 성소'와 '사제 성소'는 말 그대로 별난 성소입니다. '결혼 성소'가 평범한 정상적인 성소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별종들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이건,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이건 간에 모두 하느님을 찾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을 어떻게 찾는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느님 찾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가장 완전한 모범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생애를 본받음으로써, 예수님이 사셨던 것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이 기록된 복음성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가장 완전한 길잡이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하느님을 찾는 것,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은 바로 크리스챤 삶의 공통된 목표인 것입니다.

수도생활은 특별한 무엇이 아닙니다. 물론 별난 생활이라 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별날 것도 없습니다. 가정 공동체보다 좀더 많은 식구들이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 공동체일 뿐입니다. 그리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먹기 위해 일하고, 기도하고 또 때론 서로 수틀리면 싸우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가정이나 똑같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가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처자식이 없다는 점이겠지요. 수도생활은 하느님을 찾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러 길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가정생활과 수도생활 중 어떤 것이 더 낫다, 못하다 우열을 따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우열을 따졌습니다. 예컨대 독신생활이 결혼생활보다 더 가치 있고 고귀한 생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맨 위에 성직자 그 중에서도 수도 신부, 재속 신부(교구 신부)가 있고, 그 다음 수도자, 맨 아래에 평신도로 계층을 구분하였습니다. 교회에 대한 이런 수직적인 이해는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교계제도가 아닌 하느님 백성으로 이해합니다. 성직자건 수도자건 평신도건 모두가 다 하느님 백성에 포함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느님 백성 안에 각각의 직분이 다를 뿐 어떤 삶이 더 가치 있다, 없다 따질 수 없습니다. 수평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몸에는 각 지체가 있고 그 지체들은 각각의 고유한 역할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서로 별개의 것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체 혹은 하느님 백성이라는 하나의 몸을 이룹니다.

수도생활을 특별한 생활이 아니다, 하느님을 찾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러 길들 중 하나라고 했는데, 그러면 다른 삶들과의 차이점은 없는가? 물론 있습니다. 여러분이 느끼듯이 외적인 면에서 볼때도 차이점이 많습니다. 결혼을 안하고 궁상맞게 혼자 사는 것, 남자들이 치마를 두룬 것,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하고 설거지하는 것, 모든 일을 허락 맡고 하는 것, 개인이 돈을 모으지 않고 공동으로 내놓고 사용하는 것,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는 것, 그리고 기도를 좀 더 많이 하는 것 등등 많습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다음 두 마디로 요약됩니다. "더 완전하고 철저하게". 다시 말해 하느님을 찾되 더 완전하고 더 철저하게 찾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더욱 철저히 따르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자기를 버리는 삶, 내어 주는 삶이었습니다. 자기를 제대로 내어 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모든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물질에 대한 집착, 심지어는 자기 뜻으로부터도 자유로와져야 이런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수도자들은 예수님의 자유로운 삶을 본받아 결혼을 포기하고 독신으로 살고,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청빈하게 살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과 같이 자기 뜻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도자들이 하는 세 가지 서원 즉 독신, 가난, 순명 서원입니다. 수도자들이 자기를 버리는 삶, 자아포기의 삶은 이 세 서원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을 찾기 위해 왜 구태여 이런 삶을 사는가? 이 물음은 수도생활의 동기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느님의 부르심 때문입니다. 이 생활은 어찌 보면 별난 삶입니다. 버림으로써 얻고, 포기함으로써 채워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정상적 생활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특별히 부르시지 않으면 이 생활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그 다음 사랑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에 빠져야 이런 생활이 가능합니다. 사랑에 빠지면 보이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하느님과 사랑에 빠지다 보니 약간 미쳐 이런 별난 생활도 마다 않고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 때문이기도 합니다. 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보다 크고 넓은 사랑을 위해서 입니다. 특정한 사랑이 아닌 보편적인 사랑을 위해서지요. 한마디로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욕심이 많습니다. 회개, 회심을 뜻하는 그리스어 '메타노이아'(metanoia)를 거꾸로 발음하면 '아이노타메'인데 이것은 일본말로 '사랑을 위하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회개는 하느님께 돌아서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사랑을 위해서라고 풀이해 볼 수 있습니다.

수도생활은 사랑 때문에 시작되고, 사랑을 위해서 사는 삶입니다. 사랑은 자기를 내어 주는 것이고, 자기를 내어 주기 위해선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과 재물, 그리고 자기 뜻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수도자를 바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수도자는 세상에 대한, 세속적 가치에 대한 바보입니다. 따라서 수도원은 바보들의 집이라 하겠지요. 수도자는 바보가 되는 길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가치와 전혀 다른 가치로 살아가려 합니다. 즉 '모으는 삶'이 아니라 '내어 주는 삶', '내'가 아닌 '너'와 '우리',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 특정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닌 모든 이에 대한 사랑을 추구합니다. 수도생활은 또한 하느님을 찾되 '혼자'가 아닌 '함께' 찾는 생활입니다. 이는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강하다면 함께 살 필요가 없겠지요. 서로 부족하지만 힘을 합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수도원은 병자들의 집이라 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모든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에 공통되는 내용입니다. 수도생활 안에도 또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먼저 철저한 고독과 침묵 속에서 기도생활에 전념하는 삶의 형태가 있는데 이것을 '관상 수도생활'이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도직 활동을 주로 하는 수도생활이 있습니다. 이것은 '활동 수도생활'이라 합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수도회들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끝으로 관상과 활동을 병행하는 '혼합 수도생활'이 있습니다. 저희 베네딕도회는 원래 관상생활을 하는 수도회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시대의 요청에 따라 베네딕도회 안에도 다양한 삶의 양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엄격한 봉쇄와 침묵 속에서 전적으로 관상생활을 하는 수도원들도 있고, 어느 정도 활동을 하는 수도원들도 있습니다. 저희 왜관 수도원의 경우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런 활동이 목표는 아닙니다. 베네딕도회는 다른 수도회들과는 달리 어떤 특정한 사도직 활동을 목적으로 창설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베네딕도회는 특징이 없다고들 합니다. 저희 생활의 목적은 출판도, 목공도, 의료봉사도, 청소년 사목도, 본당사목도, 다른 특수사목도 아닙니다. 그냥 오로지 하느님만을 찾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사는 이 삶 자체를 목적으로 할 뿐입니다.

저희들의 생활을 보면 크게 기도와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베네딕도회의 모토를 "기도하며 일하라"로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러나 저희 생활의 중심은 언제나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기도에 있습니다. 사실 일은 부차적입니다. 그것은 결국 기도생활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희 하루 일과는 기도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어찌 보면 숨막힐 것도 같은데 살아보니까 별로 숨막히지는 않더군요. 저의 경우 별나지만 해볼 만한 생활이란 생각이 듭니다.

수도생활에 대해 조금 이해가 되셨습니까? 제가 더 헷갈리게 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것이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제가 이해하고 알고 있는 수도생활의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