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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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27 21:51
수도생활과 자유
 글쓴이 : 허 로무알도
조회 : 8,363   추천 : 0  
"수도생활과 자유"


요사이 우연한 기회에 '수도생활과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수도생활은 무엇이고 자유란 무엇인가? 여러분은 지원기,청원기,수련기를 거쳐 지금까지 생활해 오면서 많이 듣고 보고하여 수도생활에 대해 나름대로 개념이 서 있을 줄 압니다. 그 표현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아마도 공통분모는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하느님 찾음, 그리스도 추종, 형제적 사랑, 기도와 노동의 단순한 삶, 자기희생, 자기포기, 금욕생활, 수행생활 등등. 이렇듯 수도생활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수도생활을 또한 '참된 자유를 얻기 위한 삶'이라고 표현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된 자유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자유란 무엇입니까? 아마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알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삶은 언제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자유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을 내 뜻대로, 내 마음 내키는 대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유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일 뿐입니다. 이런 행동은 남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세에서 나옵니다. 오히려 참된 자유는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성숙된 자세에서 나옵니다. 남 생각은 안하고 자기 좋을 대로만 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이 이기적이고 미숙한 태도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 자유 못지 않게 남의 자유도 존중합니다. 우리 생활 안에서 자유란 미명하에 남 생각은 안하고 자기 좋을 대로하여 다른 형제에게 불편을 끼치는 미숙하고 부주의한 모습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컨대 문을 여닫을 때 아무 생각없이 쾅 소리가 나게 하여 남에게 분심을 주는 일, 침묵을 지켜야 할 시간과 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일, 한 마음과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해야 하는 공동기도때 공동체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유독 빠르거나 느리게 하여 한 목소리가 아닌 그야말로 장터의 소음으로 화하게 하는 일, 식탁에서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남보다 먼저 제 밥그릇에 얼른 많이 챙겨 놓는 일, 음식을 많이 덜어 놓고 다 먹지 못해 남기는 일, 과일이나 후식이 나오면 좋은 것부터 먼저 골라 먹는 일, 의자를 끌어 소리내는 일 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가 왜 이런 행동들을 해서는 안되는가 하는 이유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머리로는 다 아는 너무나도 기본적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기 위해 너무도 당연한 최소한의 예의들입니다. 또한 서로의 인격과 자유를 존중해 주기 위한 것이고, 그럼으로써 참된 자유에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입니다. 만일 누가 이런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마치 자기 자유에 대한 구속이나 침해로 생각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수도자이기 이전에 먼저 건전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고, 신앙인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요즘들어 깊이 공감하는 말입니다. 수도생활이고 영성이고 뭐고 간에 먼저 상식 있는 인간, 교양 있고 예의바른 인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코 버릇없는, 교양 없는 수도자가 되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가치와 존엄성을 깍아내리는 것입니다. 우리 신분에 맞는 언행으로 스스로의 품위를 잃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살다보면 우리 안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인간적 소양마저 결여된 모습들을 많이 봅니다. 밖의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도 더 나은 점은 별로 발견할 수 없고 오히려 인간적으로 더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우리의 현실 앞에 저는 종종 수도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깊은 회의마저 듭니다. 참된 자유를 모르고 또 그것을 안다해도 올바로 누리지 못하면서 교회와 사회 안에 우리가 과연 무슨 증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부터 영성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가장 기본적인 인간교육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 왜 있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도생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특별한 무엇이 아닙니다. 자칫 수도생활을 일신의 영달, 경제적 안정, 사회적 신분 상승, 인간적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수도생활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수도생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생활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결코 편위와 안락을 추구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자기 편한 대로, 자기 멋대로 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그런 사람은 수도생활의 본질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수도생활은 함께 사는 생활입니다. 함께 보다 큰 자유를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함께 사는 훈련이 부족합니다. 그것은 타인을 위해 자기 필요와 욕구를 자제하는 것이며, 남을 의식하고 먼저 생각해 주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생각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을때, 교양 없는, 상식이 한데 몰린 몰상식한 행동들이 서슴없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지금 왜 이곳에서 이런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를 이곳에 붙들어 두는, 내가 현재 이 생활을 하고 있는 동기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기가 수도생활과 다른데 있다면 여기 남아 있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수도생활은 최상의 삶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여러 삶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따라서 과감히 자신의 길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는 변화되어 갑니다. 청.지원기와 수련기를 거쳐 서서히 변화되어 왔고 또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변화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긍정적인 측면으로서 우리에게 있던 순수한 열정과 아름다운 것들을 잃지 않고 오히려 발전시켜 가는 것입니다. 둘째는 부정적 측면으로서 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좋고 아름다운 것들을 말끔히 반납해 버리고 타성과 안주에 젖어 이상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변화는 어떤 변화입니까? 우리가 수련때 까지 배웠던 것들은 서원과 동시에 말끔히 반납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런 어리석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수련때 배우는 것은 서원 후의 생활을 해 나가기 위한 토대들인 것입니다. 결코 통과의례가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이제까지 배운 좋은 것들은 끝까지 간직하고 키워 나갈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