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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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제32주일(가해, 2017.11.12) - 허 로무알도 원장 신부 17-11-17 16:21: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67   

연중 제32주일(가해) 강론(17.11.12)

1독서: 지혜 6,12-16 2독서: 1테살 4,13-18 복음: 마태 25,1-13


전례력으로 3주 후면 벌써 새 해를 시작하는 대림시기입니다. 대림시기를 앞둔 오늘 복음의 핵심 키워드를 기다림’, ‘준비’, ‘깨어있음으로 뽑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깨어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스도인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복음의 비유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열 처녀가 있었는데, 그들 모두 등잔을 들고 언제 올지 모를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다섯만이 기름도 준비했습니다. 모두 졸다가 갑자기 신랑이 온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기름을 준비한 이들만이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기름의 준비 여부가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를 구분하는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열 처녀 모두 등잔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고, 기다리다 잠어 떨어졌다는 점에서는 공통됩니다. 하지만 다섯 처녀만이 기름을 준비했을 뿐입니다. 결국 기름의 준비 여부에 따라 운명이 갈립니다.

이 비유가 말해주는 바는 이렇습니다. , 그리스도인 삶이란 언제 올지 모를 그 날을 깨어 준비하며 기다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삶은 기다리는 삶입니다. 우리에게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입니다. 열 처녀 모두 신랑을 맞으러 나가 기다렸듯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장차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문제는 언제 오실지 그 때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다림의 대상이 무엇이든 막연한 기다림이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때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때를 알면 삶의 긴장을 늦추지 않게 되지만, 때를 모르면 긴장이 풀어지기 마련입니다. 슬기로운 처녀건 어리석은 처녀건 모두 졸다가 잠에 떨어졌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그들이 신랑이 올 때를 알았다면 결코 잠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 삶은 깨어 있는 삶입니다. 깨어 있어야 불시에 다가오는 신랑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깨어 있어야 불시에 닥치는 죽음도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깨어 있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제 오실지 모를 주님을 기다리지만 자주 잠에 떨어집니다. 깨어 있는 것은 단순히 잠을 자지 않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적 자세의 문제입니다. 우리 마음과 정신을 늘 맑게 하고 매사를 의식하며 사는 자세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시류에 편승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매순간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늘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음과 생각들을 돌아보면서 주님의 자녀다운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 삶은 준비하는 삶이기도 합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기름을 준비했기에 졸았더라도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등잔을 부르심에 따른 각각의 신분에 비유한다면, 기름은 각각의 신분에 걸맞은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성직자다운, 수도자다운, 봉헌자다운 생활이 곧 기름과도 같습니다. 각자의 신분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할 때, 우리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처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막연한 기다림도, 늘 깨어 있기도, 준비되어 있기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삶, 깨어 있는 삶, 준비하는 삶은 신랑이 오리라는 희망 때문에 가능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을 만나 언제나 그분과 함께 있게 되리라는 것을 희망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1테살 4,17-18 참조). 희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삶에 희망이 없으면 무기력해 집니다. 공동체 생활에서도 희망을 잃거나 이상을 놓아버리면, 우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있더라도 우리는 종종 쉽게 좌절하고 궤도이탈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가야할 삶의 참된 목표와 이상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완전하지 않고 나약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슬기로운 처녀들마저 잠에 떨어진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단적으로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온갖 인간적 나약함과 한계를 안고 우리 삶의 이상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 할 뿐입니다. 가는 도중에 넘어질 수도 있고 또 졸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기름을 준비하려 노력할 때, 더 나아가 양질의 기름을 준비하려 애쓸 때,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실 신랑을 기쁘게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각자의 신분에 맞는 생활에 정진할 때 마침내 하느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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