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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주님 세례 축일(다해, 2016.1.10.)-고 이사악 신부 16-01-12 09:07: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826   

주님 세례 축일(다해)

루카 3,15-16.21-22

어렸을 적 어머니가 주일미사 봉헌금으로 백원을 주면 성당에 가다가 점방에 들러 오십원어치 과자를 사먹고 오십원만 봉헌했습니다. 설날 세뱃돈 말고는 주일마다 받는 백원이 유일한 현금 수입원이었기 때문에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나쁜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성당에 다니는 아이들은 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죄의식이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 본당 아이들의 주일헌금은 오십원짜리 동전이었고 어른들은 오백원짜리 지폐를 주일헌금으로 냈습니다. 아마 다른 본당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학이 새겨진 오백원짜리 동전이 1982년에 처음 나온 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그려진 오백원짜리 지폐는 시중에서 점차 사라졌습니다. 따라서 어른들의 주일미사 봉헌금이 자동적으로 천원으로 상향조정되었습니다.

천원짜리 지폐는 천주교 신자들의 굉장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천원짜리마저 동전이 되었더라면 천주교 신자들은 봉헌금 바구니 앞에서 많은 고심을 했을 것입니다. 꿈에 그리던 국민소득 1만불 시대가 도래했던 1990년대 중반까지도 주일미사 봉헌금 바구니는 천원짜리 지폐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는 헌금을 천원만 내는 종교라서 천주교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돌았습니다. 동전 두 닢을 낸 과부가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이야기가 복음에 있다는 사실이 천주교 신자들에게 안도감을 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봉헌금 액수를 신앙심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각종 통계나 조사에서 한국 중산층들이 천주교에 호감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로 다른 종교에 비해 저렴한 종교활동 비용을 꼽는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어떤 분들은 개신교 신자들이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하는 것에 비해 천주교 신자들이 열정적인 신앙생활은 고사하고 봉헌금조차 인색하다며 비판합니다. 반면에 어떤 분들은 종교를 서비스 사업이라 착각하는지 교회에 기여하는 만큼 자신에게 돌아오는 혜택이 없다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백만원을 바치고 하느님께 백만원어치 은총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원을 바치고 하느님께서 천원어치만 자신의 삶을 간섭하길 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건 다 내 마음대로 할 테니, 꼭 천원어치만 당신 뜻대로 하시라는 심보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은총과 축복을 얻기 위한 흥정이나 거래일까 되묻고 싶습니다.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를 받아들이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사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이런 속된 차원의 관계가 아닙니다. 세례성사는 견진성사와 성체성사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입문성사를 이룹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사람들은 옛 삶을 청산하고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며, 세속적 가치관을 버리고 복음적 가치관에 따라 세상을 살아갈 은총을 얻습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육에서 태어난 인간이 하느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말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세례성사를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성사의 형식과 내용을 갖춘 수세(水洗)입니다. 다시 말해 물로 받는 세례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는 정식 절차가 바로 수세인 것입니다. 둘째는 혈세(血洗)입니다. 이는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진리와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비록 성사적인 절차는 받지 않았더라도 피로써 하느님의 존재를 증거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교회는 인정합니다. 마지막은 화세(火洗)입니다. 화세를 받은 사람은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을 불태웁니다. 교회에 속하지 않더라도 양심적으로 살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이웃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며 사는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길은 열려있습니다. 이 세 가지 종류의 세례를 한마디로 정리해 보면, 물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사랑의 열정으로 자신을 불 태워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결국 세례성사는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짓 자아를 불태우고 진정한 자아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일입니다. 세례성사는 내 안에 숨어 있는 하느님의 모상이 보석같이 빛이 나려면 자신을 정화하고 태워야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이는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빛나게 하기 위함이며 또한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이 우리를 통해 온 세상에 퍼지게 하려는 하느님의 뜻인 것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종인 동시에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두 가지 신분을 얻습니다. 하느님의 종이라는 말은 우리가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희생과 비움을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상속자는 아버지의 지위와 특권 그리고 유산을 물려받아 누립니다. 대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야 하고 아버지와 운명을 함께 해야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에서 이루어져 파스카의 부활로 완성되었듯이 우리가 받은 세례성사의 목표도 그와 같습니다.

세례성사는 다양한 종교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입문과정이 아닙니다. 신자들 중에는 세례성사를 그저 옷을 바꾸어 입는 일 정도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자마자 냉담에 빠지는 신자들이 늘어납니다.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었다가 싫증이 나면 다시 옷장에 팽개쳐 버리는 것처럼,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로 기분을 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성당에서 멀어집니다. 세례성사 때 받은 옷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때 반드시 갖추어 입어야 하는 예복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삶이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듯 세례성사도 인생 전체를 걸쳐 완성됩니다. 물로 받는 세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첫 단계입니다. 이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지난날의 잘못을 씻고 상처를 치유하며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그리스도께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태울 수 있는 불의 세례를 받아야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헌신적인 삶 또는 목숨을 바치는 일까지 불사하는 피의 세례를 받아야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세례성사는 옷을 바꾸어 입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바꾸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성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묵상하고 그리스도인라는 영광스러운 지위와 막중한 임무를 상기합시다. 우리의 삶이 하느님과 예수님을 욕되게 하지 않는지 살펴보고 또한 우리가 빛으로서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소금으로서 사람들에게 맛깔나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가슴 속에서 메아리치도록 늘 깨어있는 자세로 그리스도인답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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