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다해)

＋ 루카 2,16-21

오늘은 2016년 새해를 시작하는 날이면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제49차 ‘세계 평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성탄 밤미사 강론에서 예수님 탄생의 기구한 이야기를 하며, 1950년 흥남철수 작전 때 만사천명을 구조한 메르디스 빅토리호의 일화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습니다. 밤미사를 마치고, 간단한 축하 인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한 가지 것을 이야기 하지 못했구나 하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2015년 작년 한해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던 난민들 문제였습니다. 작은 배에 수백 명씩 타고 가다 배가 뒤집혀 몰살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고, 많은 난민들이 고국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하여 배를 탔는데,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고생을 하고 희생을 당했습니다. 유럽의 입장에서는 밀려오는 난민 때문에 국경 폐쇄를 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각 나라들이 어떻게 난민들을 받아들일지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2000년 전의 예수님 탄생의 이야기와, 65년 전의 한국 전쟁의 이야기를 하면서, 왜 지금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인 난민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연결을 시키지 못했을까 자책이 되었습니다. 평소에 내가 여기에 관심을 덜 기울였고, 덜 기도했었구나 하는 반성이 성탄 밤에 깊이 들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경우는 우리 공동체를 포함해서 적어도 남녀 수도 공동체에서는 매일 매일 한 사람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면서 미사 지향으로 2년째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도하는데, 우리 관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렇게 신경을 쓰거나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연합회 수도원이 있는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에서 정부군과 반군의 충돌이 있어서 많은 희생자들이 났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교황님께서 2016년 세계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언급하신 대로 지금 세계 곳곳은 너무나 많은 분쟁과 테러가 일어나고 있어서 이른바 ‘산발적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릴만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올해 세계평화의 날 교황님 담화문의 주제는 ‘무관심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룩하십시오’입니다. 교황님 말씀들을 좀 인용해 보면, 분명히, 다른 이를 배려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닫아버리는 이, 주변을 둘러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이, 또는 타인의 문제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이가 지닌 무관심의 태도는 상당히 널리 퍼져 있고 모든 역사적 단계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무관심은 개인의 차원을 확실히 넘어선 세계적인 차원의 것이 되어 ‘무관심의 세계화’를 야기하였습니다.

첫째 형태는 하느님에 대한 무관심이고, 그리고 자기 이웃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묻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면서 고통 받는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의 모르는 사이에 다른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그들의 불행을 아파하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돌보려는 뜻이 전혀 없습니다. 마치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와 상관없는 그들만의 책임인 것처럼 여깁니다. 또한 물과 공기의 오염, 무차별적인 삼림 착취, 환경 파괴는 흔히 인간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의 결과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무관심은 늘 핑계거리를 찾습니다. 여기에는 예식 규정 준수, 해결해야 할 쌓여 있는 문제들, 우리를 서로 멀어지게 하는 대립, 타인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종류의 편견이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연대는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 항속적인 결의입니다. 우리가 서로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만인의 선익과 각 개인의 선익에 투신함”을 뜻합니다. 연민은 형제애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무관심의 뿌리를 돌아보게 하고, 우리가 새로운 삶의 형태를 받아들이도록 촉구하고 계십니다. 이 자비의 희년에 우리의 마음을 돌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극복하고, 참다운 연대로, 참다운 형제애로 나아가도록 촉구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강요가 아니라 우리가 참다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 이후 줄곧 내려온 우리의 신앙 전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 평화의 어머니라고도 부릅니다. 갈라지고 찢겨진 인류와 각 개인의 삶 안에서, 이 모든 것들을 푸근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성모님께 전구하도록 합시다.

올 한해도 어려움이 없진 않겠지만, 우리가 하느님과 세상과 우리 이웃, 우리 형제들에 대한 무관심의 뿌리를 바라보며, 새로운 연대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도록 합시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목자들을 말을 듣고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고 합니다. 다른 이들의 삶이 그냥 지나쳐 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머물고, 내 마음으로 기도해 주고, 참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봐줄 수 있는 마음이 이 한 해 동안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미사에 참석한 모든 신자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하느님의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