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일 – 다해

┼ 루카 21,25-28.34-36

도입부

교회는 오늘 대림 제1주일 미사를 거행하면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합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에 금을 긋고 묵은 해가 가니 새해가 오니 하는 인간의 발상이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끊임없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려는 삶의 지혜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나간 과거를 발판으로 인간은 미래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시작된 우리의 삶은 현재라는 시공간에 매어 있습니다. 깨어있는 마음과 정갈한 몸으로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때 우리는 아름다운 과거와 희망찬 미래를 갖게 됩니다. 이것이 종말을 준비하는 지혜가 아닐까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의 잘못을 반성합시다.

강론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인데, 솔직히 우리는 예수님을 잘 모릅니다. 보통 어떤 역사적 인물을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생몰년도를 언급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정확히 언제 태어나 언제 돌아가셨는지 알려주는 문헌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따르던 제자들의 증언들을 모아 기록한 복음 성경조차도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극히 제한적인 정보만을 담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나와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33년을 사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복음에 나오는 내용들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3년 동안의 말씀과 행적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몇 년동안 하셨는지는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교 신앙이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토대를 두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짜는 초대교회의 골치아픈 논쟁거리였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격론을 거친 끝에야 예수부활대축일은 춘분 후 첫보름 다음 일요일로 결정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부터 손꼽아 기다릴 예수성탄대축일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전승을 간직했다고 여겨지는 마르코 복음과 가장 풍부한 신학이 담겨있다고 평가되는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사화가 언급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탄 이야기는 루카 복음이 전하는 내용을 위주로 하여 마태오 복음의 내용을 첨가한 것입니다. 루카 복음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호적 등록을 명하였을 때 요셉과 함께 선조 다윗의 본적지인 베들레헴에 갔던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퀴리니우스라는 당시 시리아를 다스리던 총독의 이름까지 거명하며 정확한 역사적 사실인냥 알려주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은 이와 다릅니다. 역사가들의 말에 따르면 퀴리니우스가 팔레스티나에서 호적등록을 실시한 해는 기원후 6년, 다시말해 예수님께서 태어나고 6년이 지난 때라고 합니다. 한편 예수님께서 헤로데 임금 때 태어났다고 전하는데 마태오 복음의 내용은 문제를 상당히 복잡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역사가들은 헤로데 임금이 기원전 4년에 죽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이 주는 정보에 따르면 예수님은 최소한 기원전 4년 이전에 태어났어야 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우리가 믿고 있는 대로 기원 1년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스도교 축제를 넘어서 크리스마스라는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변질되어 버린 예수성탄대축일은 원래 기원전부터 지중해 연안에서 동지에 즈음하여 지내던 절기 축제였습니다. 동지 때 가장 짧아졌던 해가 그 이후부터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에 태양신 숭배의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 축제는 336년경 12월 25일로 날짜가 고정되어 무적의 태양신 축제라는 이름으로 로마제국의 공식축제가 되었습니다. 문란하고 방탕한 축제분위기에 신자들이 휩쓸려 다니자 이를 염려한 로마 교황 율리오 1세가 350년에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선포하여 무적의 태양신 축제는 교회의 축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제정한 전례축제와 시기들은 어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날짜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의도에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기억은 세월 속에서 무뎌지고 퇴색되어 갑니다. 인간은 시간의 한계 속에서 허덕이며 살다가 어느 순간 시간에 매몰되어 무의미하고 허망한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전례력은 정말 보잘 것 없고 때로는 무의미해 보이는 인간의 존재와 삶에 신학적 의미와 동기를 부여하려는 교회의 노력에서 나온 산물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12월 25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신학적인 사건입니다. 물론 2천 년 전에 이미 일어났던 과거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먼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고 기념하고 재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때 저질렀던 과오를 다시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난 메시아 하느님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양틈에 잠자던 목동들과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만이 하느님의 징표를 읽고 눈치를 채었을 뿐입니다. 2천년 전 인류는 소리없이 세상에 오셨다가 홀연히 하늘로 올라가신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왜 오욕과 칠정에 끌려다니는 가련한 인간의 몸을 타고 나셨는지, 권세 있는 제왕의 화려한 궁궐이 아닌 하필이면 누추한 여인숙에서 그것도 마굿간 구유에 현현하셨는지, 더군다나 약하고 여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는지 아무도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저질렀던 과오를 똑같이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건이나 만남이 우연히 벌어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하느님께서 의도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항상 우리는 모든 일이 벌어진 후에야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닫습니다. 우리 곁에 계셨지만 끝내 우리가 알아보지 못했던 하느님. 우리가 특별히 이번 대림시기 동안에 성찰하고 묵상해 보아야할 주제입니다. 인간 사이에 거처를 두시고 하는 하느님의 강생과 육화는 2천년 전 그날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입니다. 아니 ‘나 여기 있소’하고 외치는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에게 젖을 달라고 우는 아기처럼 처량하게 울부짖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살길을 찾아 이리저리 국경을 떠도는 난민들, 자본의 횡포에 신음하는 노동자들, 개사료값보다 못한 쌀값을 받아든 농민들, 억압적인 국가의 폭력에 시달리는 시민들, 파탄난 가정에서 사회의 무관심 속에 자라나는 아이들,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목을 매는 노인들, 경쟁과 속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청년들.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정말로 기다리고 있다면 응당 베들레헴의 마굿간으로 달려가야합니다. 이 시대의 베들레헴 마굿간이 어디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메시아 하느님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집의 대문도 열어놓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성당을 많이 찾아왔습니다. 주로 경영주와 갈등하는 노동자들이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이상하게도 기업을 가진 경영주들만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같은 노동자이면서 덩달아 싫어합니다. 대중매체나 정부에서 나쁜 인식을 심어주었기 때문인데, 서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인권차원으로 노동운동을 법적으로 철저히 보호합니다. 아무튼 노동자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이제는 명동성당을 찾아가지 않고 조계사를 찾아갑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집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는 꼴입니다. 그들을 찾아가지는 못할 진언정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려면 세상이 아파하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무작정 앉아서 기다리지만 말고 무엇이라도 하나 하면서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정 할게 없다면 신문과 텔레비전 혹은 정부 대변인이 전해주는 왜곡된 정보말고 아픈 사람들이 직접 말하는 목소리에라도 귀를 기울이십시오. 만일 두손 두발을 놓고 멍한 모습으로 기다리다가는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을 놓쳤던 과오를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뿌리고 가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오르시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시 오마 약속하셨는데 그때는 당신이 지어놓은 하느님 나라 농사를 추수하러 오실 것입니다. 대림시기는 예수님의 탄생만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동시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아기의 모습이 아닌 추수꾼으로 또는 심판관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경고들이 그날에는 현실로 드러날 것입니다. 악을 지은 자에게는 준엄한 심판이 기다릴 것입니다. 가라지들은 영원히 불타는 불구덩이 속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심판의 날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상급과 보상을 받을 날이기에 기쁨 속에서 그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이 우리 모두에게 축제의 날이 되도록 서로 다독이며 신앙과 용기를 북돋으며 나아가길 바랍니다. 대림시기 동안 끊임없는 기도와 사랑의 실천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며 하느님 앞에 흠없는 사람으로 떳떳하게 설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