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33주일

┼ 마르 13,24-32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라 규정했습니다. 이런 규정은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이데거는 인간만이 죽음이라는 확실한 가능성을 인식할 줄 알고 그것에 대해 모종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죽음을 잊고 그로부터 도망쳐서 결국 일상적인 것들에 매몰되고 마는 비본래적인 태도를 버리고, 죽음을 늘 의식하면서 그것에 근거해 삶의 의미와 그 방향을 고민하는 본래적인 태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의 종말이 올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마르 13,24-25). 또한 세상의 종말에 이루어질 완성, 즉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 잠시 지나가고 마는 시간에 대한 영원한 시간의 승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죽음과 세상의 종말은 분명히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심판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깨어 준비하며 산 사람에게 심판은 구원이며 심판 날은 기쁜 날입니다. 반면에 하느님 뜻보다는 내 뜻만을 찾으며 준비하지 않고 산 사람에게 마지막 날은 멸망의 날입니다. 그들에게 그날은 도둑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이문재 시인은 “죽음이 삶 곁에…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삶이 팽팽해진다. 죽음이 수시로 말을 걸어와야 살아 있음이 온전해진다.”(‘백서 2’)고 말했습니다.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역설적으로 살아 있을 때 잘 사는 것입니다. 잘 살기 위해서는 사부 성 베네딕도의 권고대로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아야 합니다(RB 4,47). 즉 종말로부터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천국을 향한 순례자들입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 있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말과 행동이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마지막 말과 행동이 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너무 늦을 때까지 미루지 말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을 지금 하십시오. 살아있음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기고, 매일 매일을 충만한 기쁨으로 엮어 가십시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 때, 부질없는 애착을 버리고 본질적인 것을 붙잡는 근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분명하고도 변하지 않는 사실 앞에서 그릇된 애착을 버릴 때 올바른 투신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제외한 모든 것은 끝이 있고 변합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마르 13,31) 하느님은 영원히 변치 않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살게 하시는 하느님께 우리의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분만이 우리 삶에 의미를 주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목표를 아는 사람은 결단할 수 있고, 결단하는 사람은 확신할 수 있으며, 확신하는 사람은 개선할 수 있습니다.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죽음과 심판이 있음을 생각하면, 매일 진보를 이루려고 노력하며 올바로 살게 됩니다. 지금 여기서의 선택과 결단이 영원을 결정한다는 것을 자각하면 죄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게 함으로써 더욱 적극적으로 살게 합니다.

오시는 주님을 깨어 기다리는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거나 사회에 대해 무책임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깊숙이 투신하게 만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협력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종말 신앙은 우리를 내세에 대한 희망 때문에 지금 해야 할 일을 회피하게 하지 않습니다. 종말 신앙은 내적인 평화 추구에 안주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의한 사회에 정의를, 폭력과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는 이 세상에 평화를 건설하게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도록 합시다. 내 뜻을 버리고 하느님 뜻을 찾도록 합시다. 지금부터 복음에 따라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내일부터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죽고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오늘’, 구상)

오늘 하루를 하느님 보시기에 좋게 삽시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산다면, 우리 일생 전체가 복될 것입니다. 그러면 생명이 다하는 날, 우리는 하느님을 기쁘게 맞이하게 될 것이고 우리 생명은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흘러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