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마태 2,13-15; 19-23)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우리는 매년 성탄 다음 주일, 곧 그해 마지막 주일을 성가정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동방박사들이 다녀간 후, 꿈에 헤로데가 예수를 죽이려한다는 것을 알고 요셉이 가족들을 데리고 에집트로 피난을 갔다가 나자렛에 정착한 과정을 들려줍니다. 예수가 마구간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이 가족에게 본격적인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에집트에서의 피난생활도 그러했겠지만, 나자렛에서의 목수생활 역시 힘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목수는 나무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나 이웃에서 부탁하는 일이면 다하는 요즘의 잡부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 살림인들 넉넉할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혼인미사에서‘성가정을 이루십시오!’하는 인사를 자주 듣습니다. 어떤 가정이 성가정일까? 가족이 모두 영세한 신자면 성가정일까? 영세했다고 성인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고 아직 성인이 된 것은 아니니까, 모두 죽어서 성인이 되어야 성가정이 되는 것일까? 이런 것이 성가정이 아니라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닮으라는 것인가? 어떤 점을 닮으라는 것인가?

사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의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은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사람들입니다. 마리아는 어린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해야 했습니다. 요즘 말로 미혼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주위의 시선도 그렇지만 자칫하면 돌을 맞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셉도 그렇습니다. 아기와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하여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자기가 낳지 않은 아이의 양아버지가 되어 보호하고 길렀으며 결혼은 했지만 평생 동정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또 어떠합니까? 부모 입장에서는 외아들을 애써 키웠는데 나이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안가고 제자라면서 떼거리들을 몰고 다니며 어디 정착할 생각은 않고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요셉이 죽은 후에도 예수가 홀어머니를 팽개치고 자주 찾아뵙지도 않기에, 어느 날 마리아는 아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막상 만나는 순간 실망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 왔다고 하자,“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 자매인가!”하여 마리아가 외면당하게 됩니다. 우리식으로 말해서 홀로된 어머니에게 이런 불효막심한 아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가정은 거룩한 가족을 말합니다. 가족 하나하나가 다 거룩합니다. 이 거룩함은 자기희생에서부터 나옵니다.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희생되어야 합니다. 가족은 서로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함으로 거룩해집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를 위하여 자기는 희생되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예수를 위하여 역시 희생되었습니다. 예수는 이 죄스런 세상을 위하여 희생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가정은 성가정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현대인이 가장 멀리하고픈 말이 희생이 아닌가 싶습니다.“어떻게 하면 희생은 적게 치루고 화려한 열매는 따 먹을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거기서 만족을 찾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사는 것이며 지혜로운 사람으로 평가 받는 것 같습니다.

신자들 뿐 아니라 신자 아닌 사람들도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고 부르짖기를 잘합니다. 그러나 희생정신 없는 사랑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희생정신이 바탕이 된 사랑은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입니다. 세상에 가장 고귀한 사랑은 아마도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자신에게는 희생이 되더라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녀에게 베푸는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자녀들은 돌아가신지 오래되었어도 어머니 생각이나 어머니 말을 꺼내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어머니의 희생이 사랑이 되어 자녀들의 가슴에 살아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 어머니의 사랑도 옛날 같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말을 합니다. “자녀들 때문에 내 인생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 나도 내 삶을 찾고 여유를 가지고 즐기려 한다.”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의 강도는 자녀들이 느낌으로 아는 것입니다. 이런 엄마의 자녀들은 먼 훗날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해도 가슴 뭉클한 감동은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녀에 대한 희생이 그러할진대 남을 위한 희생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주변에는 이웃을 위해서 또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도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새 가정을 꾸리는 부부에게 성가정을 이루라는 말은, 서로 사랑한다면 조건 없는 희생을 감수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혼수 문제로 결국 이혼하거나 결혼 후유증이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이런 가정은 처음부터 성가정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성가정 상이나 상본을 보면 예수는 앞자리 가운데 있고 그 뒤편 양 옆으로 마리아와 요셉이 있습니다. 예수를 앞자리 가운데 모셨습니다. 이것이 성가정 모습입니다. 어느 가정이나 예수를 앞자리에 그리고 가운데 모신다면 성가정이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을 결정하거나 행동까지도 항상 주님을 내세우고 주님의 뜻에 따라 결정하는 가정은 성가정입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자기에게 닥치는 어떤 희생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마리아의 응답처럼“나는 주님의 종이오니 주님의 뜻대로 내게 이루어지기를”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수용하는 가정은 성가정입니다. 마리아도 주님의 뜻이기에 미혼모가 되었고, 요셉도 주님의 뜻이기에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예수의 양아버지가 되었고, 예수도 하느님의 뜻이기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가정은 주님의 뜻에 따라 살고 가족은 서로를 위하여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서로에게 봉사하는 가정입니다. 그래서 성가정이 되라는 것은 축하인사라기보다 훈시에 가까운 말입니다.

오늘 성가정 축일에 우리가정 또는 자녀들의 가정 그리고 우리 부모들의 가정에 대하여 재조명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여러분 모든 이의 가정이 성가정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