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연중 3주일(루카 1,1-4; 4,14-21)

20130127, 본원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의 회당에 들어가 자신에게 건네진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찾아 봉독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 18-19).

여기서 “가난한 이들”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정치, 사회적으로도 소외된 사람, 즉 잡힌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 병자까지도 통틀어 ‘가난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자신들에게 합당한 인간적 존엄성과 반드시 받아야 할 존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가난해진 것입니다.

이런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눈먼 자는 보게 되고, 병자는 치유되고, 억눌린 자는 해방되는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불의의 희생자인 가난한 이들에게 첫 번째로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심으로써 구세주로서 해방의 사명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말로만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다인들은 갈릴래아에 이방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갈릴래아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갈릴래아를 의식적으로 당신의 사명을 펼칠 곳으로 선택하셨고(루카 4,14), 갈릴래아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선택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거나 일회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연민을 품으셨습니다.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온 생애동안 사회가 버렸던 사람들인 죄인들, 세리들, 병자들을 더 귀중하게 여기고 우선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당신 지체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심으로써 예수님은 하느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즉 ‘인간’=人間)은 더불어 사는 존재입니다. 그 누구도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으로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 다른 지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 모자라고 고통 받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답지 못한 사람입니다.

당신 자신을 가난한 이들과 동일시하신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난한 이들의 것이니 행복하다”(루카 6,20)고 선언하셨고, 최후의 심판 때에 가난한 이들을 대한 우리의 태도에 따라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와 상관없다고 무시하거나 무관심하게 행동함으로써 내 지체를 무시하고, 나아가 그리스도를 외면하지 않도록 유념합시다.

지금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희년을 기념해 제정된 신앙의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공의회의 사목헌장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공동체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사목 1).

가난한 이들을 내 형제자매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 그들과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함께 나눈다는 것은 먼저 신앙인인 우리에게 도전이요, 교회에도 해당되는 도전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만 하는 많은 일들 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에 반드시 스며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진학 불안, 취업 불안, 고용 불안, 노후 불안 등으로 가난한 이들을 파편화시키고, 구조적인 가난 문제를 사적인 것으로 환치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고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聖人)이라 부르고, 내가 가난한 이들은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고 브라질의 동 엘데르 카마라(Dom Hélder Pessoa Câmara, 1909-1999) 대주교는 말씀하셨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고 불의한 구조를 문제 삼으면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성령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신 일, 즉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는 일은 우리를 통해 지금 여기서도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복음 실천 없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