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 루카복음은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어머니들로 손꼽히는 두 여인의 만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한 여인은 주님의 어머니였고, 다른 한 여인은 위대한 예언자의 어머니였습니다.

강론을 준비하면서 저는 어머니에 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열달 가까이 저를 태중에서 키워주시고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해주신 너무나도 고마우신 어머니….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어머니에게 “저를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든가 “저를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한번도 표현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말 한마디에 왜 그리 인색했었는지…. 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고 또한 이후로 어머니를 뵐 때 꼭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나서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나이도 많고 석녀라 불리던 그녀가 아이를 가지다니 참으로 경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천사의 말이 사실인지 궁금했을 수도 있고, 또한 아이를 가진 기쁨을 엘리사벳과 함께 나누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두 여인의 만남은 마리아 자신도 성령으로 인해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막 잉태한 시점 이후에 이루어집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에 관한 천사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게 되고, 또한 엘리사벳도 마리아에게 무엇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음을 알아채게 됩니다. 그것도 스스로 알아낸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태중의 아이가 발길질로 알려주었습니다.

마리아는 처음으로 주님의 어머니로서 그녀의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그 사명은 인간의 몸을 취하신 하느님이신 한 아이를 이 세상에 낳으시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신앙인으로서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그녀였을지라도,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은 결코 받아들이기 쉬운 상황이 절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 내에서 여성이 문화적이고 제도적인 차별과 희생을 요구 받았고 또한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인 역할만을 수행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녀는 가까운 누군가의 손길과 위로를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그런 마리아를 반갑게 맞아들였던 상대였고 또한 주님의 어머니라는 칭송을 하게 됩니다. 마리아가 원하던 큰 위로를 받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후로 마리아는 일정 기간을 엘리사벳과 함께하면서 그녀를 돌보고 그녀의 필요를 채워주게 됩니다.

마리아의 즉각적인 신앙의 결단은 성령의 활동에 의해서 보상을 받게 됩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대답했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성령의 배우자가 되었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한 위격이 특별한 방식으로 마리아 안에서 거하신다는 것은 오직 천주의 모친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성령께서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계셨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마리아에게서 교회의 전형을 보게 됩니다. 태중의 주님과 함께 성령으로 가득 차서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오늘날 교회가 걷고 있는 여정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마리아의 인사말은 엘리사벳과 그녀의 아들 세례자 요한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령의 도구로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듣는 순간 태중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큰 소리로 외쳤다. ‘여자들 가운데 복되시며 태중의 아기 또한 복되시도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오시다니 이게 웬일입니까? 보십시오, 인사하시는 소리가 귀에 들리자 태중에서 아기가 신명이 나서 뛰놀았습니다.’”

두 여인이 만나는 일화 속에서 우리는 “마리아 예찬”을 발견하게 됩니다. 순순히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종의 모습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른 마리아의 겸손을 볼 수 있습니다. 겸손함을 통해 마리아가 얻은 영광은 하느님의 보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영광은 직접적으로 그녀를 향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어머니”로서 찬사를 받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전부터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선택한 마리아는 이제 하느님의 말씀을 위한 도구로 쓰이면서 찬미와 영광을 받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나자렛의 처녀에게서 탄생하실 것입니다.!” 라는 대천사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주님이 해 주신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녀 덕에 우리 또한 하느님의 큰 은총을 누릴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우리 곁에 오시게 된 것입니다.

성탄이 주는 메시지는 바로 임마누엘, 즉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와 함께 계시기만 하는 작은 만남조차도 그 결과는 놀랍도록 대단합니다. 주님의 방문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태중에 있는 아이조차 신명이 나서 뛰어 놀 정도였습니다. 주님께서 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단지 곁에 오신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미사 중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과 친밀한 만남을 맺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몸소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이 만남에서 우리가 누리는 기쁨은 바로 오늘 복음에서 두 여인이 함께 나눈 그 기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파견 명령은 우리 안에 모신 주님을, 우리 각자가 주님께로부터 얻은 이 기쁨을 전하는 것이 신자로서의 의무임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받은 사명, 즉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때때로 우리는 너무나도 어렵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버거울 정도의 일을 주님께서 얹어주시지는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은 것처럼, 그저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이웃을 찾아가는 작은 노력만으로도 주님의 복음은 주변으로 퍼져 나갑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과 함께 머물면서 그녀의 필요를 채워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주변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찾고 함께하는 노력을 계속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물적이던 영적이던,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려는 노력이면 충분합니다. 시작은, 성모님이 이미 보여준 것처럼, 한마디의 인사말이나 작은 관심에서 출발합니다.

그럼에도 이게 말은 쉬운데 직접 해보려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한 수사님과 같이 병원에 잠시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노인 분을 만났는데, 환자복을 입고 있어서 무심코 “괜찮으십니까?”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그러면 왜 병원에 1년이 넘게 있으면서 치료를 받고 있겠느냐?” 라는 식의 반응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암을 치료중인 환자였습니다. 요점은 같은 말도 상황과 때를 잘 살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잘 이해해야 하고 또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상대를 이해하고 무엇인가 해주겠다는 생각은 교만에서 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는 연습, 즉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순수하게 베푼 호의나 관심이 때로는 상대방을 아프게 하고 해를 주는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의 구원자이신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제와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얼마 남지 않은 대림시기의 나머지 시간을 잘 준비한다면, 우리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함께 누렸던 그 기쁨,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이해하시려고 몸소 하늘로부터 우리가 디디고 서 있는 이 땅으로 내려오신, 하느님 사랑의 결실인 아기 예수님을 우리 안에 맞아들이는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번 성탄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과 성모님의 도움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