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회 > 오늘의 강론 > 대림 제4주일(2011): 인 끌레멘스 신부

일주일 전 개기 월식이 있었습니다. 변화무쌍한 우주의 장관 앞에 많은 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우주의 신비 앞에 넋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주를 보면서 이렇게 감탄을 하지만, 우리 내면을 보면서도 그렇게 감탄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주를 만드신, 우주보다 더 크신 하느님이 한 개인의 삶에 들어오시는 순간을 조용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나자렛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한 처녀에게 들어닥치십니다. 그의 이름은 당시 너무나도 흔한 이름인 마리아(미리암)였습니다. 하느님의 현존 앞에 마리아는 두려움에 떱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을까 하고 물음도 던집니다. 천사는 “은총이 가득한 분”이라고, “주님께서 함께 계신 분”으로 인사드립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어떤 자격이 있어서 예수님을 잉태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느님의 ‘선택’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자비하심’ 덕분에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택되어 말씀을 잉태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천사의 이 인사는 마리아에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도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마리아처럼 말씀을 잉태할 ‘선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역시 “은총을 가득 받은” 사람이고, ‘주님께서 함께 계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거저 겸손되이 그리고 조용히 이 놀라운 초대에 응답을 하면 됩니다. 내 생활이 아무리 거칠어도, 내 성격이 아무리 삐뚤어져도, 내 자신이 아무리 부족해도 하느님은 당신의 그 무한한 자비하심 때문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말씀을 잉태하라고 초대하십니다.

저는 한달에 한번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환자들을 위해 봉성체를 다녀옵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는 성탄 선물도 준비해서 방문했습니다. 특히 홀로 사시는 노인들을 방문할 때 마음이 많이 갑니다. 세월의 풍파에 주름진 그 얼굴과 쇠약한 몸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합니다. 그러나 그 얼굴의 주름은 단순히 노화의 표시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쟁기가 갈고 지나간 자비하심의 흔적입니다. 이분들이 성체를 받아모실 때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온전히 의탁한 종의 모습을 봅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기를 바랍니다” 하신 성모님의 겸손한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얼굴과 몸은 늙었지만 존재 자체는 하느님 안에서 참으로 위대하신 분들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탁하는 삶으로 초대받았고 선택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온전히 신뢰하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주보다 더 큽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 안에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는 온 우주를 덮는 힘입니다. 우리는 이 자비하심에 마음으로 내어맡기면 됩니다. ‘내어맡김’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기도라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푹 빠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우리 안에 하느님이 현존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주를 만드신 분께서 작디 작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존재는 우주보다 더 신비한 것이고 하느님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존재들인 것입니다. 우리 존재는 우리 위에 있는, 우리 밖에 있는 우주보다 더 크고 위대합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느님의 계획은 사랑은 계획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안에 사랑을 잉태하고, 우리 몸으로 사랑을 출산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위대한 존재들입니다.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 자신을 봉헌하면서 기도 안에서 말씀드립시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