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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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25 17:03
하느님의 삶
 글쓴이 : 이석진그레고리오신부
조회 : 1,496  
성부 성자 성령인 하니이신 하느님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어 하느님을 살아야합니다.
교의 헌장 33항 하느님의 백성 안에 모인 평신도들, 하나의 머리 아래 하나인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평신도들은 누구든지 살아있는 지체로써 교회 발전과 그 끊임없는 성화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힘을 기울이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그 힘은 창조주의 은혜로 또 구세주의 은총으로 받은 것이다.
교회나 백성이란? 공동체를 떠나서는 의미가 없다. 우리는 하느님이 하나이신 것같이 하나이여야 합니다. 이는 창조주의 은혜란< 선물> 이며 그리스도의 은총 < 생명의 힘 >을 말합니다.

평신도는 교회의 각 직무에 협력자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과 존재이유에 속합니다. 사제나 수도자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각자 특수한 사명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의 사랑을 본질로 합니다.
각 성사를 통해 복음을 선포할 의무는 각자에게 주어진 특권에 의하여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삶이 복음입니다. 성수그릇 안에 개구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 성수가 되는 것입니다.

세례성사 때 이미 우리는
34항 “영원한 대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평신도를 통하여 당신의 증거와 당신의 봉사를 계속하기를 바라시며 당신의 성령으로 그들에게 생며을 주시고 온갖 좋은 일과 완전한 일을 하도록 끊임없이 재촉하신다.”

사제직은 성사 적 사제직과 영적사제직으로 구별 되지만 영적 사제직을 통하여 하느님을 영으로 섬기고 우리 안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미사를 들이는 사제와 참례하는 사람과 미사의 은총이 무엇이 다른가 아니면 같은가? 미사의 은혜는 자비와 일치와 생명입니다.
공동미사 때 공동미사에 참례하는 사제가 시종일관 뒤에서 졸고 의식 없이 참례한다면 또한 미사를 단순이 의무를 채우려는 것이거나 형식적으로 드린다면 미사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 미사를 들리고 미사 때 받은 은혜를 살지 않으면 사제직을 충실이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평신도는 자기가 사는 현장 안에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고 사제직 직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35항 “ 위대한 예언자이신 그리스도는 생활의 증거와 말씀의 힘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를 선포하셨으며 영광이 완전히 들어날 때까지 당신의 예언직을 수행하시였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미사 때 우리는 독서와 복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할 결심을 합니다. 그러려면 말씀의 의미를 분명히 알아듣고 깨닫고 말씀과 행동이 일치하여야합니다.
 <생활의 증거와 말씀으로서> 평신도가 자기 생활로 증거 하는 삶은 예언자의 본질에 속합니다. 더 나아가 생활의 의미를 말씀으로 전해 져야 합니다.
이것은 공동체 안에 하나 되는 삶을 통하여 증명되고 알려져야 합니다.

36항 “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시고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 아버지께 높이 올려 지시어 당신 나라의 영광으로 들어가셨다.”
아비지의 뜻을 따라 죽기까지 순종하심 같이 우리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 이루어 저야 합니다. 땅은 하늘 없이는 아무의미가 없습니다.
땅에 누가 싸앗을 심어도 태양의 힘이 없이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바람이 불어 암술과 수술이 만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땅은 하늘에 순종해야합니다.
주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왕 서문경에 있듯이 “ 진리와 생명의 나라.”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 “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 이라고 하신이유는 그 나라는 하느님의 나라이고 그리스도적 영적 현실 자체입니다.
 몇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1,평시도 사도직이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왕 직과 사제직과 예언 직을 내가 사는 현실 안에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2,미사성제 때 받은 은혜는 무엇입니까? 자비와 일치와 생명입니다.
3, 복음 전파는 무엇으로 합니까? 생활의 증거와 말씀으로 합니다.
4, 수도생활의 본질은 무엇일까? 고독한 생활, 친목의 삶, < 하느님을 찾고 함께하려고> 공동생활 <공동 소유, 정주, 품행교정,> 하느님의 은총으로 순명 청빈 정결 서원으로 가능해집니다.
5,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느님은 어떻게 하나가 되셨을까? 완전한 공동체로 삼위는 서로 복종하고 나누고 사귐으로 하나이십니다.

완전이 하나이신 하느님을 살자
에페소 4/5 “ 우리는 사랑 가운데 진리대로 살면서 여러 면에서 자라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한 공동체로 살고 성장 하려면 서로 돌보고, 서로 나누며, 서로 짐을 지고, 서로 복종하며 한 공동체에 헌신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7장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하나 되게 하소서.“
이모든 것은 사랑으로 인하여 가능하게 됩니다.
1,성삼은 서로 돌보신다. <사귐, 정결, 사랑>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요한 17/24 “ 아버지께서 천지 창조 이전부터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요한 14/31 “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하겠습니다.”
이 사랑은 선행적, 전면적, 존재적, 무상 적이다.
2,성삼은 서로 나누신다.<나눔, 청빈, 희망,>
영원하신 하느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현재 안에 존재하십니다.
요한 17/1.“아들의 영광을 들어내 주셔서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들어내게 해주십시오.”
요한  17/10 “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다 내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나눔으로 둘이 아니라 하나가 디는 것입니다.
3,성삼은 서로 복종하신다. <섬김, 순종, 순명, 믿음.>
요한 15/10 “나는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고 언제나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요한 11/ 42,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청을 들어주시는 줄 알고 있습니다.”
요한 14/ 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 내 안에 계십니다.”
부부가 하나 되려면 세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1, 대화 기도의 삶. 2, 자기 발견 너 안에서. 3, 너 안에서 나를 발견하려면 너 안에 내가 죽어야한다.

다음부터 성부 성자 성령의 일치 안에 살기위하여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우리는 하느님을 살아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일치의 삶을 앞에 놓고 그를 본받으려고 다음 설명을 귀를 기우려 주십시오.

1,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복종하듯이 우리도 공동체 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순명으로 서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공의회는 자기의지를 완전히 봉헌하며 하느님에게 희생으로 받치며 이로써 이류구원이 이루어진다.
순종은 강제적으로 수동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계획에 자발적 귀이다. 하느님의 계획은 신비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분명이 들어난 것은 양심입니다. 양심을 거슬러 순종하지 못합니다. 마리아의 순종 “fiat“. 아브라함의 순종은 믿음으로 이사야를 봉헌하려 하였다. 순종은 신앙의 표징이며 신앙의 열매이다. 자연은 하느님에게 순종합니다.
불순종의 비극 아담과 하와, 규칙서 원장의 선출 란에 아빠스와 의견 충동이 있을 때 고집을 부리면 쫓아내라고 합니다.
자기기만에서 자유스럽게 되려면 공동체 안에 순종이 중요하다.
마태 18/20 “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여있는 거기 그들 가운에 나도 있겠다.”공동체의 순종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이 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확실한 방법이다. 순종으로 진실과 사랑의 말을 듣고 일치의 길을 가는 것이다.
 적어도 사실에 적응해야합니다. 추운 것, 더운 것, 사계절에 순응해야 살아 남는다.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 숫자 놀음이 아니라 진실에 접근해야합니다. 3분의 2가 과반수가 된다. 표현의 자유가 본당신부 민주적 절차로 선택한다면 좀 더 낳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맹종과 합의와 다르다. 내 마음대로 아침 일찍 나온 일꾼과 저녁늦게 나온 일꾼의 햄을 보고 불만 들어내는 사람.
순종의 결과는 창조적 이여야 한다. 나의 순종의 삶 장상이 권력욕이나 재물 욕이나 명예심으로 명한다면 양심을 따라 저항할 수 있다. 공권이 정권 연장을 위한 것이라면 저항 해야 합니다.

2,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나누듯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 희망을 가지고 청빈으로 모든 것을 공유하자.
공의회 수도서약 13항 “ 필요하다면 청빈을 새로운 형태로 표현되어야 한다...부요하였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고 가난해 지심으로써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가난에 참석해야한다.
가난은 빙곤 함이 아니다. 건강을 해치고 영양시조에 걸리고, 병자나 신체 부위가 장애를 얻게 되어도 불편하게 살고 값빛싼 의료해택을 받지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이 청빈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가난의 정신. 롯에게 좋은 땅을 주고 전리품의 10분의 1를 멜기세댁에 받침.
도독 셋이 행한 행동,.........
나의 보좌 생활  본당신부와 차별 필요한 것을 필요에 따라 주어지고 “ 저으에게 일요할 양식을 주시고” 수도원의 청빈은 주방에 있다.
있는 것에 대한 교만함, 없어진 것에 대한 애착, 기지지 못한 것을 원망 절망 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오늘 전쟁은 재산과 자원의 경쟁이며 전쟁이다.
토고 수도원 악방 수도원 가난함 그 나라는 전쟁이 없다. 자원이 없어서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배급제도와 사회복지 제도의 차이.

인간은 남의 도움을 필료로 하지 않을 만금 부자도 없고 인간이 남을 도울수 없을 만금 가난한 사람도 없다.

3,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사귀듯이 정결한 사람을 가지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지. 기쁨이 넘치는 삶 참사랑을 아는 것.
수도생활 교령 12항 “ 하늘나라를 위한 정결은 은총을 탁월한 서물로 여겨야한다. 정결은 사람의 마음을 더 없이 자유스럽게 하여 하느님과 모든 사람의 사랑으로 더욱더 불다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식욕과 성욕과 어느 것이 더 강할까? 쥐를 시험한 결과 식욕이 더 강하다.
남과여 만남. 성은 아름다운 것인데 성을 더럽히는 사람이 있다.

여자의 손 강한 것은 부드러운 것을 요구한다. 예수님과 마리아 막달레나 이야기. 교황님의 정착촌에 방문, 용서를 빌고 우리교회가 잘못 되었다고 기도하겠다고말씀하심.

용서하는 마음 어는 부부의 이야기.
신학생 때 건강 검증 성적 불구자 신부가 못된다.

노래, 춤, 미인대회, 미스다 대회. 놀이하는 인간
하느님은 사랑은 몸을 다 바쳐 사랑하듯이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사랑은 일치의 근본이며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