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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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22 18:02
공의회 9항 12항 해설
 글쓴이 : 이석진그레고리오신부
조회 : 2,215  
9항 해설.< 12월 봉헌 회 회지의 글>
이 항은 여러 가지 불균형으로 일어나는 현실을 해결하고자 하며 기술의 발달은 단순한 지배욕이나 정복욕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이며 인류에게 맞는 환경개선으로 봅니다. 사람은 생명의 가치와 더불어 항구하고 지속적 행복을 추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빈곤에서 해방 즉 양식 건강 직업의 안정이 현대인의 소망입니다.
1, 발전도상국의 경제적 독립.
 2차 전쟁 전에 식민지 국가 많았고 지배국가에 의존하던 시대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가 자립을 방해받았으나 지금은 그들이 독립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2, 남녀평등권
어느 나라든지 여성운동이 효과적으로 좋아지고 있으나 한국 같은 나라는 유림사상으로 전통을 중시하어 반대하고 있습니다. 암탉이 울면 지반이 망한다. 생각하는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3, 문명의 해택을 공편하게 받아야 합니다. 민족이 모두 복음화 되어야 함 같이 교회는 모든 사람이 문명과 문화의 해택을 받고 인간 답게 살아야 합니다.
4, 모든 민족이 하나의 공동체 이루고자 합니다. 구라파연합, 아세아연합, 교회일치운동, 종교일치운동, 이런 운동이 움직임만이 아니라 실현되어야 할 일입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려면 많은 의문을 가진 지식인이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 새로운 의문은 인간이 무어인가? 행복하여야 할 인간이 불행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내가 이런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현대인은 물질의 풍요 속에 참으로 행복한가?
공의회는 고차원적 생명에로 초대 된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게 합니다. 고차원적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추궁하는 행복이 바라는 것과 바람이 일치해 일치하는 것은 주관과 객관의 일치를 말합니다.

인간이 추궁하는 행복은 재산이라면 사람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 하니 만족이 없어 행복하지 못하고 괘락도 쇼벤하우엘은 맹목적 의지라고 하며 오관은 만족을 모르다고 합니다. 지식도 알면 알수록 더 알고자 하어 만족을 모르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식자우환입니다.  고상한 인격자 바리사이나 율법하자들이 예수님을 무법자라고 하였지만 자아중심이거나 위선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참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양심의 평화입니다. 지속적으로 선을 행하면서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겻이다” 하심 같이 하느님의 나라는 자유, 평화, 기쁨이 있는 나라입니다. 서론에 분명이 희망과 불안 속에 사는 현대 세계의 인간 상태는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계획에 있음을 알리면서 여러 가지 현상을 신앙의 빛으로 조명하고 판단하어 모든 것의 원천이신 하느님에게 연결시키려합니다.
이같이 복음 선포는 세상 끝날 까지 전하는 사명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1 제1장 인간의 존엄성
 12항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
    인간의 소명과 교회란 의미로 올바른 인간의 삶을 공의회는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의 만물은 인간에게 질서 지어져 있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우주의 주인입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에게 있으며 하느님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이고 이는 한 사람 한 사람에 관계 지어져 있습니다.
전에 되지를 직접 잡아 수도자들의 식탁에 순대를 만들어 오려놓은 시대에 어느 날 되지를 잡는 일에 협력하려 들어가 되지가 죽는 관경을 보면서 이런 기도를 하였습니다.
되지가 들이는 기도.
“ 나를 만드신 하느님 나에게 아무 재간도 주시지 않았고 그저 꿀꿀 하는 소리, 푸푸하는 소리만 허락하시고 먹는 대로 살지어 주셨는데 애 저를 만드셨습니까? 그러나 오늘 나는 얼마나 해복한 되지 인 것을 알았습니다. 수사님 손에 내가 죽어 이 순대 방에서 순대가 되어 수사님들의 식탁에 올려 먹이가 된 것은 이들이 나를 먹고 내 목소리 이상으로 아름답게 당신을 찬미함은 행운입니다. 이제 나를 만드신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 한 몸 깨끗하게 받치겠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며 인간 창조의 드높은 목적은 인간이 하느님 안에 흡수 되므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시편 8장 5-7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문호 섹스피어가 “ 인간은 얼마나 위대한 걸작 품인가? 이성은 얼마나 고귀하고 능력은 얼마나 무한한가? 그 형상과 동작은 얼마나 명확하고 아름다운가? 행동은 천사 같고 이해는 신과 같고 세계의의미요 만물의 영장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인간 지체로 보면 자기 생명을 존중하고 마태복음 16장 26절 “ 사람이 온 세상을 얻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생존에 대한 권리가 있으며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하여 태난 사람입니다. 창세기 1장 26-28, 사람은 하느님이 “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생명보다 구한 것은 자유 평화 기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한 자 되려는 희망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48“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완성은 요한복음 14/6 “ 나는 길이요 생명이며 진리이다.” 하심 같이 주님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이런 하느님의 준비된 창조는 인간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하고 일하는 삶이란 둘이 분리된 삶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고 만나고 하느님 안에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한이신 것 같이 하느님 안에 흡수되어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을 통하여 인간의 존엄성이 들어납니다. 시편 145장 인간은 하느님을 찬양함으로써 이직 얻지 못한 비밀을 얻어 온전하게 되리라. 하십니다.
그러나 이 좋은 질서를 죄를 지음으로 파괴 되었으니 다음은 죄가 무엇인지 알아보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석진그레고리오신부 15-11-22 18:10
 
시편 145를 반듯이 보시라고 부탁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