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HOME > 나눔터 > 봉헌회(Oblati)  

 
작성일 : 15-10-22 08:05
현대의 세계에 나타난불균형과 인류의 보편적 열망
 글쓴이 : 이석진그레고리오신부
조회 : 2,218  
현대의 세계에 나타난 불균형과 인류 보편적 열망.
지난번 급속한 변화와 사회질서의 변화를 보고 성장 위주의 삶이 얼마나 불균형과 사횡의 모순을 낳게 되는 지 알아보고 인류의 보편적 열망을 교의회 정신을 따라 숙고해보려고 합니다.
1, 전통적 시고가 도외시되고 임시적 즉흥적 생각에 몰두하고 인생의 목적을 망가합니다.
2, 전에는 지식계급의 전유물처럼 논의 된 것들이 메스메디아의 발달로 대중화 되어 종교 무    관심론, 불가지론등이 사람 사이에 확대되어 갑니다.
3,윤리 기준이과 도덕심의 결여로 고도화된 기술과 자본으로 자기 사업을 확대하며 갑질 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가, 대형매장이 소형매장을 잡식하어 기술과 자본이 없으면 가난하고 절망에 빠지게 한다.
 나, 노조와 기업주의 불균형, 이는 성장과 분배의 불균형이 일어납니다.
 다, 가정이 더 잘살려고 생명을 경시하고 낙태, 이혼율이 많아진다.
 라, 부와 괘락을 쫓아 살다보니 인간의가치를 잃고 비인간화 되어 간다.
4, 기술 문명의 시대의 비극 인간존엄성을 상실하고 비인간적 존재로 하락한다.
  기계의 노예가 되거나 사람보다 기술의 발달에 의지하어 존재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인간 활동의 전문화에 불균형이 일어납니다. 아는 것만 알고 타 분야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관심함으로 박사가 사람이 아니고 지식의 노예로 전략하게 됩니다.
요한 23세 교황님이 가톨릭대학 학장들에게 “ 학문의 각 분야의 세분화는 큰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체와 종합적 시야를 상실하고 질서를 망각할 위험이 있다.” 경고하였습니다.

남 녀 간의 새로운 사회관계에서 불균형이 일어납니다.
여자가 사회진출을 하여 직업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하기 시작하니 화목한 가정이 파괴되고 가장이란 계념이 희박하고 여성 상위 시대에 경제력이 없으면 가장의 권위도 없어져 영이 서지 않은 시대가 되어간다. 교회는 남녀평등권을 부정하는가? 아니면 남성 상위 시대를 유지하려고 하는가? 성공회 개신교 여자 사제나 목사가 있는데 언제 어떤 변화 속에 가톨릭도 여자 사제직을 허용할지모르지만 공의회가 진해 중 교회 안에 많은 루머가 떠돌아 다녔습니다.
어는 수녀원에 장난 끼 있는 사제가 “ 빅뉴스 공의회에서 여자도 사제가 될 수 있다.” 하니 수녀님들이 와! 하고 좋아 라 함성을 질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녀도 사목보조자 역할 만 하지 말고 동반자로 사목을 협의 하에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제직 까지는 교회는 생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종족들 간에 불균형 현대는 미국같이 여러 종족이 모여 위대한 나라를 형성하고 있지만 아직도 흑백의 싸움이나 각 나라에서 차별대우는 불균형을 만들어 냅니다.
오래전 사이판에 관광 가서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여관에서 한국 사람에게는 일주 100$ 주면 필립핀 사람에게는 10$만 주는 차별대우를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외국 노동자들에게 차별대우하는 일이 많아 특별기관에서 그들을 도읍고 있지만 불균형은 여전합니다.

사회 여러 계층과 지역 간의 불균형은 교회 안에도 현존합니다. 서울에서 성당 지으려면 100억이 든다면 시골은 20억도 힘이 들고 생활환경도 차별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이유로 빈부 차가 너무나 심각합니다.
자본주위와 사회주의자가 서로 이 불균형을 타결해 나가야 하는데 보수니 진보니 하면서 서로 미워하고 저주하면서 화합의 길을 찾지 못합니다. 산업화가 가속으로 성장 하지만 기업주는 돈으로 돈을 더 벌고 돈이 없으면 노동의 대가라도 제대로 받아야하지만 쉽게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일자리 없는 청년실업자 더 좋은 일자리만 찾아 해매다 청춘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져 사회 혼란이 일어납니다.
부강한 나라와 빈약한 나리의 불균형
한민족인 남과 북의 불균형은 한국은 지엠피가 4000$을 바라보자만 이북은 한국의 60년대 같이 100$ 이하라고 합니다. 전에는 군사력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시대였지만 현대는 기술, 자본, 노동력, 자원을 가진 나라와 그런 것이 없는 나라 사이 불균형이 있습니다. 공업화 된 나라와 비 공업화된 나라의 불균형은 심각합니다.
구제기구도 서로 협력 뒤에도 각국의 이기주위가 암약하어 힘 있는 나라가 힘 없는 나라를 배척하고 국제 정이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인류 가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불균형이 생기고 교만한 모습을 보일 때 하느님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창세기 11장 1-9장의 바벨탑을 상기시킵니다.
교회는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가르치려고 보다 보편적 인류의 소망을 9항에 말씀하십니다.

9항 해설.
이 항은 여러 가지 불균형으로 일어나는 현실을 해결하고자 하며 기술의 발달은 단순한 지배욕이나 정복욕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이며 인류에게 맞는 환경개선으로 봅니다. 사람은 생명의 가치와 더불어 항구하고 지속적 행복을 추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빈곤에서 해방 즉 양식 건강 직업의 안정이 현대인의 소망입니다.
1, 발전도상국의 경제적 독립.
 2차 전쟁 전에 식민지 국가 많았고 지배국가에 의존하던 시대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가 자립을 방해받았으나 지금은 그들이 독립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2, 남녀평등권
어느 나라든지 여성운동이 효과적으로 좋아지고 있으나 한국 같은 나라는 유림사상으로 전통을 중시하어 반대하고 있습니다. 암탉이 울면 지반이 망한다. 생각하는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3, 문명의 해택을 공편하게 받아야 합니다. 민족이 모두 복음화 되어야 함 같이 교회는 모든 사람이 문명과 문화의 해택을 받고 인간 답게 살아야 합니다.
4, 모든 민족이 하나의 공동체 이루고자 합니다. 구라파연합, 아세아연합, 교회일치운동, 종교일치운동, 이런 운동이 움직임만이 아니라 실현되어야 할 일입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려면 많은 의문을 가진 지식인이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 새로운 의문은 인간이 무어인가? 행복하여야 할 인간이 불행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내가 이런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현대인은 물질의 풍요 속에 참으로 행복한가?
공의회는 고차원적 생명에로 초대 된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게 합니다. 고차원적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추궁하는 행복이 바라는 것과 바람이 일치해 일치하는 것은 주관과 객관의 일치를 말합니다.

인간이 추궁하는 행복은 재산이라면 사람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 하니 만족이 없어 행복하지 못하고 괘락도 쇼벤하우엘은 맹목적 의지라고 하며 오관은 만족을 모르다고 합니다. 지식도 알면 알수록 더 알고자 하어 만족을 모르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식자우환입니다.  고상한 인격자 바리사이나 율법하자들이 예수님을 무법자라고 하였지만 자아중심이거나 위선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참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양심의 평화입니다. 지속적으로 선을 행하면서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겻이다” 하심 같이 하느님의 나라는 자유, 평화, 기쁨이 있는 나라입니다. 서론에 분명이 희망과 불안 속에 사는 현대 세계의 인간 상태는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계획에 있음을 알리면서 여러 가지 현상을 신앙의 빛으로 조명하고 판단하어 모든 것의 원천이신 하느님에게 연결시키려합니다.
이같이 복음 선포는 세상 끝날 까지 전하는 사명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다음에는 인간의 소명과 교회란 의미로 올바른 이간의 삶을 공의회는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