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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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9-19 17:28
신속하고 급변하는 세상 9월 소식지
 글쓴이 : 이석진그레고리오신부
조회 : 2,400  
5항 급격한 변화
얼마 전 머리가 어지러워 에마라이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아무 일이 없어 그래도 어지러워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속도가 케이텍스 기차보다 5섯 배 빠르다고 하니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하는 관계로 어지러운 것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주변의 변화는 인간의 움직임, 사회질서의 변화, 무엇이 하나인 것 같으면서 양분되어 있고 가장 가난을 주장 하는 교회가 가장 부자이고 민주와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이 가장 비민주의와 불의의 온상이 되고 작은 행복을  바란 다고해도 큰 행복에 마음과 영을 빼앗기고 이런 변화의 물결을 따라가다가 절망과 죽음의 늪에 빠집니다.

속도가 붙은 소용돌이 속에 빠진 사람이 급하게 나오려고 발 보등 치면  물의 힘에 지처 죽고 맙니다. 살길은 깊이 물속으로 들어가 바닥을 기어 나오는 사람은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심각한 변화 속에 살아날 길은 자세를 낮추고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신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이나 배우려는 사람이나 어림 짐작하어 말하고 행동하면 잘못되기 쉽지만 수학, 자연과학, 인문학을 통해 정확한 개념이 확립되어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1장 까지 있는 그대로 보면 가릴레아 사건처럼 오류를 범하게 되어 요한 2세 교황이 사과하는 사태까지 갔습니다. 역사적 해설보다 설화적 의미로 설명하면 오늘 사는 사람들의 삶과 연관된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제품들이 나오고 이런 일들이 물과 공기를 오염시켜 자연적 삶을 위협하고 사람이 사람으로 살지 못하고 인격적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듣지 못하던 환경운동가, 크린피스 운동가, 핵 저지 운동가, 자연주의 생태계 보존운동 등이 등장합니다. 변화에 적응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습니다.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 신자의 권리이며 의무입니다.

인간의 지성은 시간에 지배를 받지 않고 시간을 지배하며 현재에서 과거 미래를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어 미래가 현재가 되는 추정기술 과 계획 설계로 미래를 지배하게 되었다. 인구 증가예측 인구 증가가 심각하다. 전에는 10명 낳으면 5,6명은 죽었지만 현대는 의술의 발달로 10명 낳으면 다 살일 수 있으며 노인 인구의 증가로 노인문제가 심각성을 넘어 서고 있다.
지금은 환갑을 지내는 사람이 별로 없으며 칠순도 하지 않은 다고 한다. 지금 젊은 세대가 팔순까지도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생산되는 물품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대량생산되어 물품의 넘치는 형상 속에 지구가 쓰레기장이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가속화 된 세상에 정적세계관으로 동적 세계관을 해아릴 수 없습니다. 종교가 원시적이거나 정적 상태에 안주하면 변화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 수 없습니다.
필립버 3장 13. “ .....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 달리고 있습니다.” 이같이 흐름을 따라 능동적으로 매사를 대처해야 합니다.

6항 사회질서의 변화.
농촌인구의 감소와 노령화 문제. 기술의 발달로 공업화의 급속한 변화는 제가 1965년 구미 본당 신부로 부임할 때는 농촌인구가 60%였는데 선산군 안에 본당이 2곳이었는데 지금은 지금은 농촌인구는 10%미만이고 농촌지역이 도시화되어 인구는 50만을 육박하고 본당은 12개나 됩니다. 50년 안에 변화된 곳에 농촌인구 도시 인구 하나의 다른 생활양식을 가지고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도한 도시는 도시대로 인구 증가로 과밀 형상이 생기고 농민은 땅도 잃고 사람도 잃어 노령화 현상으로 농촌 소득은 점점 줄어들어 살기 힘들어 집니다.

농촌의형태가 점점 도시화 되어 가고 읍면 동내 마다 다방 노래방 PC방, 새기였습니다. 왜관 수도원에 60년전 찾아올 때 1954년 구멍가게 하나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대형 수퍼 몇 개나 되고 음식점 옷가게 금은방 도시화되어 시골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전에는 농촌사람 선거 때만 되면 고무신 한 걸레로 표를 얻을 수 있었지만 데레비죤의 일반화로 정치적 견해도 높아졌고 봉건적 사고나 독재적 사고로 인간관계를 이어 갈수 없습니다.


새로운 메스메디아의 발전은 전 세계의 사건을 동시에 어디서나 듣고 볼 수가 있습니다. 세계인들의 생각이 같아지는 사회화 형상이 생기지만 인간화가 잘되어 간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같은 서울이라도 강북사람 강남사람 서로 다른 부류의 사람처럼 바라보고, 같은 단지 내에서도 25평집과 35평, 45평, 서로 따로 사귀고 서로 다른 환경 때문에 차별이 생기고 일치와 화합이 불가능 하다,

1960년도에는 모두가 못사는 이유로 이웃이 통교가 가능하고 국민적 화합이 가능한데 지금은 빈부 격차로 상류 사회 중류사회 빈곤한 사회로 인하여 안정 안에 혼란이 더 심화되고 있으며
복지 사회 건설이라는 단어가 단절의 시대를 더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풍요 속에 빈곤을 느끼는 것은 국가나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 갈수 없는 사람과 풍요로 온갖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과의 차별이 사회적 불안을 만들고 안정적 사회형성이 불가능 해졌습니다. 다음은 7항 8항을 보면서 이런 사회적 급변화가 주는 문제를 더 깊이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2015년 9월 20일
이 석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