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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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9-03 18:36
왜관수도원 봉헌회 제3차 유럽수도원 성지순례기 (5) - 뮨헨 대성당/ 성 안셀모 수도원
 글쓴이 : 한선희 브리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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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3일 (맑음).

   휘트 수도원을 떠난 우리는 버스로 알프스 산맥을 굽이굽이 돌아서, 산골마을 오베르암멜가우(oberammergau)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마을은 신앙심이 깊은 곳으로 마을 중심에 아름다운 성당이 있었고, 거리에도 예수님과 관련된 성화나 성상이 많이 보였습니다. 특히 정교한 목공예로 유명한 곳으로, 예수상과 성모상, 알프스 목자상 등이 목각 공예품이 상점에 많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예수 수난극(passionsspiele)”이 유명한데, 이 수난극은 주민들이 수난을 묵상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길거리에서 공연하였던 것으로, 요즘에는 무대에서 하고,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만 연극에 참가할 자격이 있다고 합니다. 이 수난극을 보려면 수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수난극’을 해 보면, 예수님의 수난을 더 깊이 묵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마을 성당의 종탑)                             (마을호텔 벽에 세워진 십자고상)


    

(목각인형, 성모자, 십자고상을 진 노인)                     (2010 예수수난극 홍보 막)


   버스에 올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에탈(Ettal) 수도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에탈 수도원은 거대한 성당을 가진 수도원으로, 성 오틸리엔 연합회가 아닌 다른 베네딕도회 소속이었는데, 맥주와 화장품 등, 여러 가지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저녁기도를 기다리는 동안, 에탈 수도원의 맥주를 맛보고 싶었습니다. 수도원 앞에 있는 카페에 가니, 검은 원피스에 흰 앞치마를 입은 어여쁜 아가씨가 맞아주었습니다. 에탈 수도원맥주는 생맥주는 없고, 작은 병맥주로만 나오는데, 황색 맥주로서, 기억에 남는 아주 좋은 맛이 있었습니다. 
   에탈 수도원 성당은 아주 크고, 중앙에 돔(dome)이 있었는데, 여기서 이곳 수사들과 함께 저녁기도를 바쳤습니다. 이 성당은 겨울이 되면 난방하기 어려워, 작은 성당으로 옮겨 기도를 바친다고 합니다.  
에탈 수도원에서 저녁기도를 바치고, 성당에서 나오는 길에 이곳에 사는 노인 한 분이 우리를 보고 “일본에서 왔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노인은 “한국의 통일을 기원한다” 고 하였습니다. 한국사정이 알프스 산골에도 알려져 있음에 놀랐습니다.


            

(에탈 수도원 성당)                            (수도원내 건물)


         

       (에탈수도원 문장과 맥주)          (수도원 제품들)            (에탈 맥주를 마시며)                       


   에탈 수도원에서 약 2시간 달려서, 뮨헨 외곽의 식당(Schinken-Peter im Forstner)으로 오니, 왜관수도원의 선 라파엘 신부가 맞아주었습니다. 감자튀김과 소고기 요리, 그리고 프란치스꼬 회에서 만든 맥주(Franziskaner Weissbier)로 저녁식사를 하고, 뮨헨 시내에 있는 호텔(Holliday Inn)로 와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5월24일 (맑음).

   아침 8시, 호텔 부페로 아침식사를 하고, 뮨헨 시내에 있는 예수회 소속의 미카엘 대성당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이 날은 주일이어서 우리는 많은 독일 사람들과 함께 미사를 하였습니다. 미사 서두에 이 미사 중에는 짧은 바하 곡을 연주한다고 안내하였습니다. 기리에(Kyrie)와 대영광송은 성악과 오케스트라가 짧게 연주하였고, 다른 곡은 오르간으로 반주하였는데, 그렇게 하여도 미사시간은 1시간이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오전 11시, 뮨헨 마리엔 광장(Marienplatz)에 있는 시청 시계탑의 인형극을 구경하였습니다. 정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말을 탄 기사 두 명이 나와서 창 시합을 하고, 한 쪽 기사가 말에서 떨어지면, 이긴 쪽 인형들이 춤을 추는 극으로, 매시간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하는 인형극이었습니다.

   시청 바로 옆에 있는 뮨헨 대성당으로 걸어 갔습니다. 이 성당은 입구부터 중심통로를 따라 기둥이 양쪽으로 직선으로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옆 창문은 전혀 보이지 않아서, 시선을 중심으로 모아지는 효과가 있었고, 중심에는 십자고상이 매달려 있어서, 자연스럽게 십자고상으로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바로 밑에서, 고통 중에 내려다보시는 그리스도의 눈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당 기둥 한 곳에 목각 예수성심 상이 있었는데, 뻥~ 뚫려버린 가슴과 흐르는 피가 예수님의 간절하신 마음을 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성당은 지금의 교황 베네딕도 16세가 교황으로 추대되기 전 라찡거 추기경으로서 재임했던 대주교좌 성당이었습니다. 제대 뒤에는 이 성당을 맡았던 역대 대주교의 문장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라찡거 추기경의 경우, “대주교 요셉 추기경 라찡거(ERZBISCHOF JOSEPH KARDINAL RATZINGER 1977-1982)” 와 문장이 그려진 현판과  “교황 베네딕도 16세(PAPST BENEDIKT XVI, 2005- )” 라는 표시와 문장이 그려진 현판, 두 개가  한 칸에 걸려 있었습니다.


      

                 (뮨헨 대성당 내부)                           (중심부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 성심 상)                 (뮨헨 대성당을 맡았던 역대 대주교 문장)


   뮨헨 시내에서 선 라파엘 신부와 작별하고, 버스를 타고 뮨헨 공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뮨헨공항에서 우리 모두는 운전기사 프랑코가 프랑스 루르드(Lourdes)에서 가져 온 샘물을 나누어 마시며, 건배하였습니다. 루르드는 프랑스 남쪽 피레네 산맥 기슭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16일까지, 성모 마리아께서 성녀 베르나데트 수비루(Bernadette Soubirous, 1844~1879)에게 발현하시고, “나는 원죄 없이 태어났다” 라는 말을 하시며, 그 앞자리의  땅을 파게 했는데, 그곳에서 샘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이 샘물을 마시거나 이 샘물로 몸을 씻은 병자들이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았다는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샘물입니다. 운전기사 프랑코는 우리가 독일에 도착하기 전, 마침 프랑스 남부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루르드에 들려서 이 샘물을 실어온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프랑코에게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며 작별하였습니다.


         

(선 라파엘 신부와 작별)                       (루르드 샘물을 마시며)


   뮨헨공항에는 성령강림 대축일의 연휴동안, 로마로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20대로 보이는 젊은 독일신부가 본당 신자들을 인솔하여, 로마로 순례여행을 가는 일행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탄 루프트한자 비행기는 남쪽으로 가면서, “오늘은 날이 맑아서 창문으로 알프스의 장관이 잘 보인다”고 독일어, 영어, 이태리어로 방송하여 주었습니다. 과연 창밖으로 눈이 하얗게 덮인 알프스 산맥이 펼쳐진 장관이 보였습니다. 약 1시간이 지나고 로마에 가까이 오자, “천둥번개가 몰아쳐서 잠시 지체되고 있지만, 안심해 달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비행기는 요동을 치며,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추락하다가, 다시 오르고, 또 다시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추락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잠시 후 그 지역을 벗어나서 로마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하자, 기내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습니다. 공항에 내려서 인 클레멘스 신부에게 “우리 비행기에는 신부가 세 분이나 타고 있어서 무사했습니다” 하였더니, 인 신부는 “봉헌회원이 20여명이나 타서 하느님이 보호하셨다” 고 대답했습니다.

   로마 공항 밖으로 나오자, 낯익은 박 블라시오와 최 빠꼬미오 신부, 그리고 이태리 안내자인 백 모니카 자매가 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독일에서 탄 버스와 같은 크기이었지만, 버스 안에 냉장고나 화장실은 없었습니다. 로마공항에서 성 안셀모 수도원으로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백 모니카 자매는 이태리 역사와 주의사항을 간략히 알려주었습니다.


   로마시내 성 안셀모 수도원 부근에 도착하자 버스에서 내려서, 봉헌복을 입고 이슬비가 내리는 길을 걸어 수도원으로 갔습니다. 성 안셀모 수도원은 신학대학과 같은 베네딕도회 대학 수도원이었습니다. 수도원 입구에는 여러 베네딕도 연합회의 문장이 그려져 있었고, 이중에 성 오틸리엔 연합회 문장도 있었습니다. 건설할 때 독일에서 기부를 많이 하여서, 독일식 모자이크가 많이 있고, 성 오틸리엔 연합회의 수석이셨던 노트겔 아빠스가 이곳의 초대 아빠스이었다고 합니다.

   박 블라시오와 최 빠꼬미오 신부가 수도원 성당으로 안내하여 주었고, 이어서 이 곳 수사들이 입장하고, 수사들과 함께, 그레고리오 성가의 멜로디에 맞추어 라틴어로 저녁기도를 바쳤습니다. 오르간이 부드러운 음색으로 반주하여 주었습니다. 이 곳 오르간 반주는 부드럽고 은은해서 마음을 차분하게 안정시켜 주었고, 기도 안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들었던 것 반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오르간 반주이었습니다. 저녁기도를 마치고 퇴장할 때, 우리 귀에 익은 “로사리오 기도를 드릴 때 (가톨릭 성가 제271번)” 가 오르간으로 연주되었습니다.

   저녁기도를 마친 후, 저녁 7시15분 식당으로 가니, 중앙의 식탁은 우리를 위하여 모두 비워져 있었고, 이곳 수사들은 벽쪽 식탁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앉을 식탁 위에는 “이 자리는 한국 그룹을 위하여 예약되어 있습니다(i posti riservati al gruppo coreano)” 라고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각자의 자리 앞에는 4선 악보에 오늘 바칠 기도가 라틴어로 적힌 종이쪽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모두 서서, 식사전 기도를 바쳤습니다. “(CENA : Edent pauperes * Et saturabuntur et laudabunt Dominum qui requirunt eum, vivent wrda eorum in sæ-cu-lum sæculi. ※라틴어 아시는 분, 번역부탁드립니다)."

   자리에 앉으니, 식복사를 맡은 수사들이 빵과 물, 포도주를 날라다 주었으며, 요리는 앞에서 전달되어 왔고, 자기 먹을 분량대로 나눈 후, 독서를 들으며 침묵 속에서 식사하였습니다. 그 곳에는 왜관수도원뿐만 아니라 대전교구와 대구교구에서 온 한국인 신부 두 분이 더 있었으며, 한 분은 식복사로 시중을 들어 주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두 일어나서 식사후 기도를 하였습니다. “(PRANZO :  Oculi omnium * In te sperant, Domine, et tu das illis escam in tempore oppor-tu-no, aperis tu manum tuam et imples omne animal benedictione. ※라틴어 아시는 분, 번역부탁드립니다)."

   식사를 마치고 수도원 모임방에서 수도원 원장신부 대신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항가 수도원에서 온 알퀸(Alcuin) 전(前) 아빠스가 환영사를 하셨고, 최 빠꼬미오 신부가 통역하였습니다. 환영사를 마치고, 알퀸 전 아빠스는 “작년 2009년 왜관 수도원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였는데, 왜관수도원의 인상이 아주 좋았다”고 하시며, “이날 저녁기도에서 오르간 반주를 맡았고, 왜관 봉헌회원을 위하여 한국 성가를 골라서 연주하였다” 고 하셨습니다.

 

  

    

(성 안셀모 수도원 입구)                               (수도원 성당에서 기도)

      

       (성 안셀모 수도원에서 저녁식사)               (최 빠꼬미오 통역, 알퀸 전 아빠스 환영사)


   성 안셀모 수도원을 나오니 어둠이 깔린 밤 9시이었는 데, 알퀸(Alcuin) 전(前) 아빠스는 버스가 서 있는 곳까지 걸어오셔서 배웅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박 블라시오, 최 빠꼬미오 신부와 함께 버스로 약 30분을 달려서 로마 외곽 포메찌아(Pomezia)에 있는 호텔 셀레네(Hotel Selene)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쉬고, 다음 날, 베네딕도 성인이 수도생활을 하셨던 몬테 까시노와 수비아꼬 수도원을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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