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5월17일부터 5월28일까지, 왜관수도원 봉헌회의 제3차 유럽 수도원 성지순례가 있었습니다. 성지순례란 하느님과 관련된 거룩한 지역을 방문하여, 하느님께 존경과 예배, 그리고 기도와 회개, 감사와 보속을 바치며, 하느님을 더욱 가까이 찾는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유럽에는 하느님과 관련된 지역이 많아서, 이 지역을 순례함으로서 하느님을 더 가깝게 찾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실제로 유럽 수도원을 순례하는 동안 우리는 영적으로 하느님의 보화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기억이 점차 흐려져서 영적 보화를 잃어버릴 우려가 있으므로, 순례 중이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였습니다. 이 순례에 참가하지 못한 분, 기억을 되살리고 싶은 분, 그리고 장래 이 순례를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5월17일 (맑음). 출발하기 전날, “아이슬란드의 화산이 분출해서, 영국과 스페인 공항이 폐쇄되었고, 앞으로 제2의 항공대란(航空大亂)이 있을 수도 있다”는 뉴스(news)가 보도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순례여행이 순조롭게 수행될지 걱정이 되었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인천공항에서 지도신부 인 클레멘스 신부, 이 그레고리오 신부, 여행안내자 김인섭 알렉산델, 그리고 우리  봉헌회원 23명은 오후2시 루프트한자(Lufthansa) 비행기로 출발하였습니다.

   약 10시간의 비행을 끝나고 오후 6시40분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밖으로 나가니 보니,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우리가 타고 갈 신형 벤츠 버스(Mercedes-Benz)가 왔는데, 운전기사 프랑코는 배가 불룩 나온 독일인으로, 독일을 여행하는 동안, 우리와 숙식을 함께 했으며, 운전도 능숙하게 하였고, 농담도 잘 하였습니다. 이 버스에는 냉장고와 화장실이 중간에 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고속도로(autobahn)에 진입하니, 초록빛 초지와 노란 유채꽃이 활짝 핀 벌판이 펼쳐있었습니다. 우리는 먼 지평선 부근에 붉은 기와집이 있는 시골마을과  독일가문비 숲을 지났습니다. 프랑크푸르트 북쪽으로 약 3시간을 달려서, 뮌스터슈바르작(Münsterschwarzach) 수도원에는 밤 9시에 도착하였는데, 위도가 높은 탓으로  어둠이 덮이기 전,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습니다. 수도원 정문에는 강 안셀모 수사가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강 안셀모 수사는 왜관수도원에 2006년까지 머물렀고, 100주년 기념성당을 설계한 분입니다. 강 안셀모 수사의 도움으로 피정집 방을 배정받고, 장거리를 여행한 탓으로 다음 날 아침 6시 미사부터 참례하기로 하였습니다. 

   피정집 방에는 성경, 안티포날레 I(아침기도), II(낮기도), III(저녁기도), 수도원 안내책자가 비치되어 있었고, 조그만 개인 전등이 있어서 홀로 묵상하며 독서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어서 소음이 나지 않았고, 피정집 지하실에는 포도주와 맥주가 준비되어 있어서, 술값(1병당 2~5유로, 2,800~7,000원)을 모금함에 넣고 자유롭게 마시며, 대화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하던 날은 이슬비가 내리고 기온이 낮아서(5~15℃), 준비해간 내의나 스웨터를 입어야 했습니다.

   5월18일 (이슬비). 아침 6시 봉헌복을 입고, 수도원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미사를 마친 후, 미카엘 리펜(Michael Reepen) 아빠스는 “왜관 봉헌회원을 환영하며, 왜관 수도원에는 봉헌회원이 많은 것이 부럽고, 여기에서도 ‘분도통사(芬道通史)’를 식사 중에 독서하고 있다”고 하며, 수도원 성당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였습니다.

   이 수도원은 816년경 칼 대제 시대에 세워진 것이며, 초기에는 수녀원이었다가, 1001년에 남자 수도원으로 되었고, 1525~1635년 농민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1648년 다시 복원되었으나 1803년 해체되었고, 1913년 성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매입하여 재건한 것이라고 합니다.

   수도원 성당은 히틀러 통치당시이어서 어렵게 허가를 받아서 건설한 것이며, 전면의 예수 그리스도 상에 박힌 못은 모두 금어서, 빛을 받으면, 금빛으로 빛나며, 성당 측면에는 성 베네딕도, 성녀 스콜라스티까, 그리고 수도원에 관련된 성인을 모신 것이라고 합니다. 성당 건립당시는 히틀러가 ‘지도자 동지’로 불렸던 시대이어서, 이곳 그리스도상은 다른 곳과 달리 십자가위에 예수그리스도가 똑바로 서 계심으로서 ‘우리의 지도자’ 임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리펜 아빠스는 저녁기도부터 신자석 대신 수도자석의 가대에서 봉헌하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미사후 식당으로 가니, 식당입구에 “한국 봉헌회원들을 환영합니다(Wir begrüssen herzlich zu dem Mahleiten die Gruppe: "Oblaten wallhahrer aus Korea”) 라는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독일식 흑빵과 곡물빵, 껍질이 단단한 밀빵, 얇게 썬 치즈와 햄, 과일잼과 커피, 사과와 오렌지가 아침식사로 준비되어 있었고, 빵은 수도원에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피정오신 독일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성당입구)       (성당내 예수그리스도)           (리펜아빠스의 환영사, 통역)

   식사를 마친 후 버스를 타고 밤베르크(Bamberg) 시를 방문하였습니다. 밤베르크는 2차대전중 파괴되지 않아서, 옛 모습을 간직한 도시이었습니다. 독일황제 하인리히 2세와 교황 클레멘스 2세의 무덤이 있는 대성당을 구경하였습니다. 이 성당에서 기억이 나는 것은 ‘교회와 시너고그를 상징하는 두 여인’의 조각상, ‘왕자의 문’ 위의 조각, 그리고 ‘말을 탙 기사상’ 이었습니다. 교회와 시너고그의 두 여인상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아본 여인과,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영적맹인으로서 눈이 가려진 여인을 대비시킨 것이었습니다. 왕자의 문에 있는 조각은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비웃는 인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눈이 가려진 여인이나 비웃는 인간의 모습은 우리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곳 안내원이 와서, “이곳은 반드시 공인된 정규안내원이 설명해야한다”는 약간의 실랑이는 있었지만, 하여간 구경은 잘 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1306년부터 운영하는 아주 오래된 식당(Bräuerei Heller Bamberg)에서 훈제흑맥주(Aecht Schlenferla Rauchbier)와 생선, 쇠고기, 닭고기 요리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오후에는 수도원으로 돌아와서, 강 안셀모 수사의 안내로 수도원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수도원 입구에는 수도원 안내와 성 베네딕도의 모습이 양각부조로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수도원 정문은 약 400년전에 세워진 것으로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나머지는 그 후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이 수도원은 부속 중고등학교(Gymnasium)를 운영하고 있는데, 독일에서 7번째로 좋은 학교라고 합니다. 수도원 묘지를 참배하였는데, 묘지에는 유학중에 선종한 한국인 한분도 있었습니다. 농업과 출판사업을 하고 있으며, 그리고 죽은 나무를 잘게 부수어 친환경보일러(eco-frendly boiler)의 연료로 사용하는 연구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친환경보일러 연구는 독일정부의 지원으로 수행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왜관수도원 100주년 기념성당에 그릴 그림을 시도하고 있는 신부를 만났습니다. 그림초안을 왜관수도원에 보내서 “좋다” 고 승인하면, 왜관에 와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도원 소식지 “Missionsblätter (2009. 4)”에는 왜관 수도원 100주년 기념식이 특집으로 실려 있었습니다. 한국 베네딕도회의 역사와 활동(100 Jahre Missions Benediktiner in Korea), 구미 근로자문화센터의 활동이 소개되어 있으며, 초대 보니파시오 주교(Bonifaz Sauer)와 이형우 아빠스의 사진도 실려 있었습니다.

    저녁기도를 가대에서 수사님들과 함께 바치고 나서 식당으로 가니, 한국 봉헌회원을 위한 특별 저녁정식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점심만 더운 음식을 먹는데, 봉헌회원을 위해 특별히 송별기념으로 독일식 풀코스로 더운 저녁정식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뮌슈터슈바르작 수도원문장)            (화가신부, 안셀모수사, 인 신부)           (수도원 정문, 작별하며)

   5월19일 (이슬비). 아침 5시 아침기도와 미사를 하였습니다. 아침기도에서 우리는 성무일도로 하는 데, 이곳은 안티포날레 I로 하였고, 시편이 더 많았습니다. 미사는 6시에 수도자 석의 가대에서 하였습니다. 오전 7시 아침식사를 하고, 8시 강 안셀모 수사의 전송을 받으며 수도원을 떠났습니다. 강 안셀모 수사는 주간달력(Bidkalender 2010)과 수도원 엽서를 기념선물로 주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