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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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2-08 19:20
박석희 주교님의 피정노트 - 기도 <하느님과의 대화>
 글쓴이 : Anselm
조회 : 10,931   추천 : 0  

<하느님과의 대화>

: 영이신 하느님과의 대화 -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소리 없으신 영이신 하느님과의 대화

 

사람과 하느님과의 대화하는 행동양식이 서로 다르다. 사람과의 대화는 상대방의 주의를 끌 행동을 해야 하고, 상대방의 태도도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대화에는 이러한 행동이 필요 없다. 하느님과 대화할 때에 거기에는 행동 특성이 있다. 이것은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 행동특성과는 다르다.

 

하느님과 대화하는 행동특성은 내가 먼저 하느님의 주의를 끌고자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먼저 주의를 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무엇이 나의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가 되게 하는가? 내가 하느님께는 바른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는지 어떻게 아는가? 하느님과의 대화를 인간의 대화와 같이 생각한다면 다른 데 주의를 기울이는 실수를 할 수 있다. 내가 하느님과 대화 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생각할 때는 내가 다른 데에 주의를 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또한 내가 하느님께 바르게 주의를 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하느님께로 향할 때는 어떤 표지(감실, 십자가 등)를 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 앞에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 주의를 주고 있다는 것을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에 주의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 주의를 주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주의를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도를 시작할 때에 하느님의 주의를 끌려고 하지도 말아야 하고, 그분이 주는 주의를 잡으려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

 

마태오 복음 6장의, 기도에 관한 가르침에서 예수께서는 위선자들에 대하여 비평하신다. 위선자들이 기도할 때에 주의를 끌고자 하고, 기도하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 이것이 잘못이다. 제자들이 기도하는 것은 보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게 기도하고 보이고자 하는 생각도 없다. 어떤 사람은 보이기 위해서 기도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주의를 끌고자 하는 방식으로 기도를 하기에 하느님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의 상황은 어떤 누구에게 말을 하러 가는 것과 전혀 다르다. 만일 당신이 하느님과 대화를 할 때에 하느님의 주의를 끌면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미 주의를 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마태오 복음 6장의 기도는 전례적인 기도이다. 실천과 관련된 기도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것을 기도하면 갚아 주시는 분이다. 그러나 갚음을 받기 위해서 보이면서 기도하면 안 된다. 덕행은 덕행 자체가 보상이듯이 기도는 기도 자체가 응답이지, 청원에 대한 응답은 아니다. 기도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삶을 형성하는 단순한 하나의 실천일 뿐이다.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라면 하느님께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하느님께 말할 때는 정해진 형식으로 규칙적으로 말할 수 있다. 주님의 기도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하느님과의 대화 방식이다. 정해진 기도문은 싫증이 날 수 있지만 하느님은 싫증을 내지 않는다. 시편이나 기도 책을 통해 정해진 형식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문을 암기할 때와 기도문으로 기도할 때는 다르다. 암기할 때는 내 삶과 상관이 없지만 기도할 때는 내 삶과 직접 관련이 있다. 어떤 기도문을 읽는 것이 기도가 되게 할 때는 내 삶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나의 기도는 나의 삶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지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어떤 분의 주의를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공허한 기도는 삶과 아무 관련이 없는 기도이다. 나의 기도는 진정한 간청이 되지 못한다. 진정한 기도가 되고 안 되고는 내가 하느님께 주의를 주고, 그분이 주의를 받아들이는 그것에서 찾지 말라.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어떤 분에게 주의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가 내 삶에 영향을 미쳐야 참된 기도이다.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