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HOME > 나눔터 > 아름다운 글  

 
작성일 : 18-11-02 08:12
죽은 이와 산 이의 하느님
 글쓴이 : 이석진그레고리오신부
조회 : 63   추천 : 0  

죽은 이와 산 이의 하느님 <마태 11, 25-30>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죽은 이나 산 이의 관리자이십니다. 오늘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날. 우리도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종말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고 공포의 대상도 아닙니다. 세상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살아있는 생명체는 죽음을 맞이하고 죽게 됩니다. 하느님은 죽음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똑같은 차원에서 만나시고 사랑해주십니다.

 

믿음의 차원에서 죽은 이와 산 이를 생각해봅시다. 삶도 찰나이고 죽음도 찰나입니다. 시간 안에서만이 차이가 있지만, 영원 안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이 바로 모든 이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죽음은 바로 너의 죽음입니다. 부부가 한 몸으로 살다가 이혼을 하면 서로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너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며 나의 죽음도 너의 죽음이 됩니다. 영원에 들어가는 죽음은 모두가 영원 안에서 만나고 함께합니다. 내가 죽는 순간 모두의 죽음입니다. 내가 죽고 나면 10, 100년 후 영원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에 모두를 만나게 됩니다. 죽은 사람의 시간은 왜 그리 빨리 가는가? 어제까지 함께 있었던 것 같은데 10, 20년이 지난 것같이 느껴집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죽음은 찰나며 부활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교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이를 생각할 때 시간적 간격을 생각하지만 죽은 사람은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 영원이란 의미를 깨닫고 살면 사는 것이나 죽은 것이나 한순간이며 동시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으면서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인생에 도를 통한 사람이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현세에서 지금이란 시간이 중요하다고 하면 영원은 지금 밖에 없으며 죽음 후에는 어제도 내일도 없이 지금뿐입니다. 여기서 지금이란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고 살아가면 더 거룩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마음 아파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 왜 울고 있습니까? 죽은 사람은 영원 안에 살고 바로 당신의 머릿속에 기억되듯이 당신의 마음속에 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죽은 이들의 기도가 의미가 있고 제사가 의미가 있습니다. 제사 때 온 가족이 모여 사랑하던 부모형제를 위한 생활 속에 가장 중요한 일용한 양식을 정성껏 차리고 차례를 드리는 순간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간 것이라는 위령 감사 서문경이 생각납니다.

 

오늘 우리는 지금의 삶과 죽음의 현존 안에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이제와 영원히 아멘.” 


최미현 18-11-04 07:45
답변 삭제  
하느님은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똑같은 차원에서 만나시고 사랑해주십니다. 영원이라는 의미를 깨닫고 믿음의 삶을 살도록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