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분 <마르코 1, 12-15>

인간은 낳음이 있으면 죽음이 있지만, 주님은 낳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신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으로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당신의 혼으로 꾸며주신 사람을 당신의 나라로 초대하여 비록 시작은 있지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고 그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회개하여 복음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사계절 안에 살며 겨울에는 봄의 소식을 기다리고 밤에는 새벽을 기다리며 나간 사람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주의 기도문에서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며” 기도하듯이 우리의 소망은 아버지 집에 영원히 사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그 나라는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 가려면 긴 터널을 지나야 합니다.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악에서 구해진 사람만이 그 나라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그 나라는 세상이 주는 나라가 아니고 하느님 아버지가 마련한 나라입니다. 사순절은 그 나라로 가는 길을 주님이 먼저 가시고 우리를 따라 살게 하시려고 준비된 은총의 시기이며 가장 귀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는 시기가 아니고 비우는 시간입니다. 세상의 권력, 재력, 명예심을 가지고 이것들을 얻으려고 목표를 세우고 준비하는 삶이 아니라 모두 내려놓는 삶입니다.

재를 받고 선언하듯이 시작한 시기가 아니고 마음 깊은 데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나라가 있는 곳으로 가벼운 몸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영원히 살기 위해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세상의 어떤 것에도 애착을 느끼지 않고 빈 몸으로 가볍게 통과하는 좁은 문입니다.

저는 이번 병으로 참 가난이 무엇인지 내가 비우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고 이런 체험을 하도록 기회를 주신 아버지께 감사와 깊은 사랑을 느끼고 감동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더 큰 사랑을 느낄 기회를 주십니다. 지금 나는 수도복을 입고 무엇이나 하는 사람처럼 목덜미를 세우고 찾아오는 손님에게 무슨 큰 것이나 주는 사람처럼 살고, 기도하며, 일하면서 아버지의 일을 다 하는 것같이 살고 있지 못하지만 이렇게 주님과 나의 일치와 가까이 현존하심을 알게 된 사람으로서 행복합니다. 죽음의 고통 중에 감사합니다. “각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말씀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를 알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