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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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1-17 14:50
그림감상, 이중섭의 <왜관성당 부근> (2)
 글쓴이 : 김영진
조회 : 3,891   추천 : 0  

이 길은 성당으로 가는 길이다. 성당에 가려면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서 좁은 길로 들어서야 한다. 길을 살펴보면 걷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래쪽에는 검은 옷을 입고 어깨에 가방을 메고 올라가는 남자가 있다. 그 위에 밝은 흰색 상의를 입었는데 여인으로 보인다. 길 위쪽에는 키가 작은 두 사람이 보인다. 한 사람은 크고 다른 사람은 작은데,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이들은 형제이다.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 단순히 지나가는 행인일까? 화가는 의미 없는 그림은 그리지 않는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이중섭 자신이고 흰 상의를 입은 여인은 부인이고, 위쪽은 두 아들인 것 같다. 이중섭 가족이 길을 가는 것이다.

그림 왼쪽에 전봇대, 가운데 종탑 십자가, 오른쪽에 나무가 있다. 이 세 가지는 삼각구도를 이루어 안정감을 준다. 실제로 지면에서 보면 전봇대는 가깝고 십자가는 멀기 때문에, 전봇대가 십자가 보다 높게 보인다. 그래서 전봇대가 십자가보다 낮게 보이는 높이로 올라와서 보고 그렸다. 자연히 길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이게 되었다.

그림 오른편에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잎은 있는 듯 없는 듯 아주 약하게 그려져 있다. 왼편으로 나뭇가지 하나가 나와 있다. 마치 마른 사람이 손을 흔들고 서 있는 것 같다. 누구에게 손을 흔드는 것일까? 손 흔드는 방향을 보면 두 아들과 만난다. 이 나무는 이중섭 자신이며, 두 아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원화(原畫)에서는 오른쪽 큰 아들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 작별인사라도 하는 것일까?

이 길은 성당을 지나 계속 나아간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순심중고등학교에서 왜관 수도원을 지나 북쪽으로 가는 길이다. 북쪽에 왜관 수도원과 같은 수도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덕원 수도원이다. 덕원 수도원은 원산에 있고 원산은 이중섭이 살았던 곳이다. 그곳에 지금 어머니가 계신다.

길이 끝나는 먼 곳에 산이 보인다. 어떤 산 일까? 수도원 뒤로 보이는 작오산 같다. 어쩌면  마음에 기억되고 있는 산 인지도 모른다. 두고 온 산, 보고 싶은 산이다. 그 위로 북쪽 하늘이 넓게 펼쳐있다. 하늘은 연한 단색, 마치 동양화의 여백처럼 보인다. 상대적으로 성당과 집이 육중하게 보이고 정적(靜寂)이 흐른다. 하늘을 단색 처리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흐린 날일까? 눈물이 많이 흐른 탓일까? 눈물이 많이 흐르면 눈이 부셔서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다. 또 하늘을 단색처리하면,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하늘에 그려볼 수 있다. 예수님을 그려볼 수 있고, 천사도 그려볼 수 있다. 이중섭은 무엇을 그려보고 싶었을까? 아마 왜관 수도원-> 덕원 수도원-> 원산-> 어머니를 그리고 싶었을 것 같다. 그 이듬해 그린 <돌아오지 않는 강>에는 예전에는 그리지 않았던 어머니가 그려져 있다(3).

덕원 수도원은 원산에서 4km 떨어진 곳에 있다(4). 지금은 원산 시에 편입되어 있고, 원산농업대학 건물로 쓰이고 있다(5). 원산에서 살았던 이중섭은 덕원 수도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오딜리아 연합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6)을 화가의 눈으로 놓칠 리 없다. 더구나 신혼집은 성 베네딕도회에서 세운 원산 해성국민학교가 바로 보이는 언덕에 있었다(7).

이중섭은 신자는 아니지만 신자들과 인연이 깊다. 부인은 일본에서 드물게 보는 천주교 가정에서 자랐다(8). 장인은 조선인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결혼을 허락했고, 폭탄이 떨어지는 태평양전쟁 중인데도 도쿄에서 후꾸오까/하까다를 거쳐 서울로 가는 차편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유산을 남겨주어 부인과 두 아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다(9). 시인 구상은 동경유학시절부터 친형제처럼 돌보아주고 있다. 지금도 성 베네딕도 수도회를 따라 원산에서 왜관으로 이사 온 집에 머물게 하고 있다(10).

어머니는 원산에 남겨두었고, 부인과 아들은 일본으로 갔다. 6.25전쟁 당시 세 달 지나면 귀향할 줄 알았던 피난, 다시 재회할 줄 알았던 가족의 일본행이 이제는 영영 이별이 되었다. 지금은 혼자 고단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원산에서 내려온 수도자들이 이곳에 있다. 지난날 원산에서 스치듯 보았던 하느님의 집을 다시 만났다.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아마 가족을 만난 듯 했을 것이다. 비로소 마음속에서 그를 부르시는 하느님을 찾아냈을 것 같다.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에게 돌아온 탕자(루가 15:11-24)와 다름없었다. 뜨거운 감정이 몰려왔고 수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림을 마칠 무렵 흐르는 눈물처럼 화폭에 세로선을 수없이 그리고, 그림을 마쳤다. 그의 마지막 풍경화이었다.

그 당시 구상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1955. 4. 14). “()는 하느님을 믿으려고 결심했습니다. 구 형()의 지도를 구해 가톨릭교회에 나아가 저의 모든 잘못을 씻고 예수 그리스도님의 성경을 배워 깨끗한 새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성경을 구해 매일 읽고 싶습니다. 내일 15일 오후 4시경 신문사로 찾아뵙겠으니 지도하여 주십시오  (11)” 이중섭은 구상보다 나이가 3살 많은 데도 편지에서 구상을 형()으로 부른 것은 그의 겸손이다.

이 그림은 19554월 왜관 구상의 집 관수재에서 머무는 동안 그렸다. 왜관을 떠나며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순심중고등학교에 기증했다. 아마 아들 같은 학생들을 보고 기증한 것 같다. 그리고 3개월 후부터 영양실조와 간염, 정신분열증에 시달렸고, 투병하는 중에도 성경을 읽었다. 수녀 간호사가 준 성패와 성상을 임종할 때까지 간직하고 애중하였다(12). 그러나 성사도 받지 못한 채 1956911일 선종하였다. 그의 나이 40세이었다.

순심중고등학교에 기증된 이 그림은 교장실에 걸려 있다가 약 30년 전 판매되어, 현재 장학기금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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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열, 이중섭평전, 돌베개, 2014, p.896

4. 왜관 수도원, 분도통사, 분도출판사, 2009, p.448

5. 덕원 수도원, 위키 백과 2016 https://ko.wikipedia.org/wiki

6. 눈먼 이들에게 빛을, 성 베네딕도회 오딜리아 연합회 한국진출 100주년 기념화보집,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2009, pp.142-143

7. 최열, 이중섭평전, 돌베개, 2014, p.186

8. 최열, 이중섭평전, 돌베개, 2014, p.185

9. 최열, 이중섭평전, 돌베개, 2014, p.321

10. 최열, 이중섭평전, 돌베개, 2014, p.621

11. 최열, 이중섭평전, 돌베개, 2014, p.630

12. 최열, 이중섭평전, 돌베개, 2014, p.629

13. 가톨릭 신문, 2016.6.26. 3000, 14

이중섭 그림, 왜관성당 부근 http://copyfree.tistory.com/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