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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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21 14:07
장휘 엘마르 신부님을 생각하며 -부르심-
 글쓴이 : 김영진
조회 : 4,627   추천 : 0  

천년에 한 번 오는 대희년 2000년에 왜관수도원을 찾았다. 그리고 미사 중에 그레고리오 성가를 처음 들었다. 청아한 음성으로 이어지는 그레고리오 성가는 어떤 신비함과 마음을 차분하게 이끄는 매력이 있었다. 기도와 음악이 결합된 그레고리오 성가는 기도 중에서 가장 좋은 기도라고 한다. 가대에서 성가수사 6명이 선창을 하는데, 그 가운데 계신 신부님은 손으로 음정과 리듬을 맞추시며, 때로는 독창도 하셨다. 어느 날 미사 중에 음정이 틀리자 미사를 잠시 멈추시고 음정을 바로잡으셨다. 지금도 그 대목에 오면 신부님이 생각나곤 한다. 그 후 알았지만 신부님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좋아하시어 독일에서 배우시고, 왜관수도원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담당하시고, 우리말로 편집도 하셨다. 그러나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하여 더 깊이 배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셨다고 한다.

어느날 봉헌회 모임에 강의하러 오셨다(2003. 3. 16). 봉헌회 담당신부님은 신약성서를 전공하신 장휘(張輝) 엘마르(Elmar) 원장신부님이라고 소개하시며, 칠판에 빛날 휘(輝)를 한자로 크게 쓰시고, 번쩍거리는 신부님의 대머리를 손으로 슬쩍 가리키셨다. 우리는 웃음을 터드렸지만, 정작 신부님은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셨다. 이 일로 빛날 휘라는 성함은 잊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빛나는 것은 그분의 대머리 보다는 그분의 '거룩한 성덕(聖德)' 이었다. 그날 강의주제는 부르심(Berufung)” 이었는데, 아주 감동적이고 새로운 눈을 열어주셨다. 그때를 기억하며 요약해보았다.

하느님은 우리를 먼저 찾고 부르신다. 부르심은 귀로 들을 수 없고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녹음되지 않는다. 한번 부르시면 중단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계속 부르신다. 듣기위해서는 고요한 시간과 공간을 내어드려야 한다. (1)왜 우리를 부르시는가? 우리가 훌륭하고 착해서가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2)그러면 왜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이 질문은 오래전부터 나에게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신부님의 답은 간단하고 명쾌했다. “여러분은 이미 사랑을 경험하였다. 사랑하는 애인에게 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어보라.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아마 좋으니까 좋다, 좋으니까 사랑한다하고 대답할 것이다. 더 깊이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본들 의미가 없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저 좋아서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시니까 부르시는 것이다. (3)부르심에 대하여 제자들은 어떻게 응답했나? 자신을 예수께 맡기고, 기쁨과 희망을 갖고 고난을 겪더라도 그분을 따라갔다. 그리고 생명으로, 하느님께 가는 길로 따라가게 되었다. (4)무슨 목적으로 우리를 부르시는가? 우리와 함께 머물고 하느님의 일을 함께 하고 싶으신 것이다. 성경을 보자.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루까 1:31)’, ‘예수께서 너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시자, 선생님 묵고 계신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 와서 보시오 하시자 예수와 함께 지냈다(요한2:38)’, ‘예수께서 열둘을 뽑아 사도로 삼으시고 당신 곁에 있게 하셨다. 이것은 그들을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마귀를 쫒아내는 권한을 주시려는 것이었다(마르코 3:14)’, ‘자케오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까 19:1).’ 함께 머문다는 것은 곧 사랑한다는 것이다. (5)어떻게 그분을 따르는 것인가? 장해물은 모두 버리고 따르는 것이다. ‘제자들은 그물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다(마르코 1:18)’, ‘세관을 그만두고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마태오 9:9)’, ‘세속적인 유익한 것들은 쓰레기로 여깁니다(필립비 3:4).’ 즉 자신을 봉헌하며 당신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신부님은 강의를 마치셨다.

2007년 성금요일 새벽 수도원에 화재가 났다. 본관 건물은 거의 다 소실되었다. 그 후 일 년이 지날 무렵 폐허로 변해버린 화재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화재의 참상을 직접 보고 싶었다. 화마가 쓸어간 건물 안은 불에 그슬린 벽과 기둥이 앙상하게 서있고, 부수어진 벽돌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그 외 다른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마루바닥이 모두 타서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타고남은 나무를 모아서 한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도록 좁은 마루가 연결되어 있었다. 아마 수사님들이 다니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한 것 같았다. 마루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무너진 천장으로 하늘이 파랗게 보였고, 연결계단이 불타서 이층이 공중에 떠 있는 것도 보였다. 깨진 돌조각, 얼룩진 벽, 휑하게 뚫려버린 창문, 화재의 잔해는 참혹했다. 그때 안쪽에서 걸어오시는 분이 있었다. 엘마르 신부님이셨다. 한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마루이었기 때문에, 마루에서 내려와 길을 내어드리며 넙죽 절을 올렸다. 신부님은 웃으시며 아미고하고 부르셨다. 아미고(amigo)사랑하는 친구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금도 스페인과 포르투칼에서 쓰이고 있다. “화재의 참상을 구경하고 있습니다하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환하게 웃으시며 볼 것이 뭐가 있다고...” 하시며 걸어가셨다. 환하게 웃으시며 힘차게 걷는 모습은 폐허 속에서 미래의 희망으로 보였다. 불타고 남은 벽과 기둥은 사탄이 아무리 불태우고 물어뜯어도 끝까지 견디고 남아있는 커다란 수도자의 뼈 같이 보였다. 불현듯 뼈들에게 주 야훼가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리라(에제키엘 37:5)” 하는 글귀가 떠올랐다. 머지않아 재건될 것이었다. 한국진출 100주년이 되는 2009년 새 성전과 건물이 세워졌다.

2012년에 들어서 아내의 병이 심하여졌다. 그동안 쉬지 않고 일만해서 무리했던 것 같았다. 병원을 찾았으나 이 병은 치료하기 어렵고 임시로 처방하는 방법뿐이라고 하였다. 혹시나 하여 한의원도 찾았으나 아무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누구를 찾아가야 하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계신다. 이제는 부르심을 기다리기보다 하느님을 찾고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에 대하여 절대로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규칙서 4:74).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마태오 6:9),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86:16),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앓고 있습니다(요한 11:4).”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병은 깊어졌고, 병이 깊어질수록 기도도 간절해졌다. “내 구원의 하느님, 낮이면 이 몸 당신께 부르짖고, 밤이면 당신 앞에 눈물을 흘립니다. 내 기도소리 당신 앞에 이르게 하시고 내 흐느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영혼이 괴로움에 휩싸였고 이 목숨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나이다(시편 88:1).” 지금까지 아내는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겪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간신히 회생하여 살아있는 것은 하느님의 도우심이라고 믿는다.

201510월 왜관수도원 홈페이지에서 뒤늦게 신부님의 서거소식을 읽었다. 장휘 엘마르 신부님(Fr. Elmar(Gottfried) Lang)1933929일 독일 뷔르츠부르크 클라이노스타임(Würzburg Kleinostheim)에서 출생하시고, 1953년 뮨스터쉬바르작(Münsterschwarzach) 수도원에 입회하시고, 1961년 한국으로 파견되시고, 2001년 우수알리스(Usualis 미사와 성무일도에 사용하는 노래를 통합한 성가집)편찬하시고, 2002년 깐또레스(Cantores 성가대) 책임을 맡으시고, 2015929일 선종하셨다. 신기하게도 생일과 선종일이 같다. 신부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로 가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를 잊지 않으실 것이며,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 것으로 믿는다. 우리를 만나면 환하게 웃으시며 아미고(Amigo)” 하고 다시 부르실 것 같다. (김영진 아우구스띠노)


김 프란치스코 16-07-0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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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서나마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임마누엘,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시길 빕니다.
이프란치스카 16-07-2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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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의 영혼의 안식을 위해 잠시 기도 드렸습니다.
2015년 8월 불쑥 쉬고 싶어 들른 피정의 집에서 신부님 면담을 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머와 평온함,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기쁨이 넘치는 분이셔서 꼭 한번 더 뵙고 싶었는데... 늦은 것 같군요. 신부님께서 면담을 마치시며 제게 하늘나라에 있을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셨기에 기도할 것입니다. 신부님을 기도 중에 다시 뵙고 그때처럼 다정하게 말씀 나눌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주님 당신의 평화를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