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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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8-29 08:40
살아 있다는 것
 글쓴이 : 이석진그레고리오신부
조회 : 9,858   추천 : 0  

류시화 Shiva Ryu

아침의 시_85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눈 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곡조를 떠올린다는 것

재채기를 한다는 것

당신의 손을 잡는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짧은 치마

그것은 둥근 천장에 별들의 운행을 비춰 보는 것

그것은 요한 슈트라우스 그것은 피카소 그것은 알프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감춰진 악을 주의 깊게 거부하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울 수 있다는 것 웃을 수 있다는 것 화낼 수 있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지금 멀리서 개가 짖고 있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커진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군인이 부상을 입는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새는 날갯짓한다는 것

바다는 아우성친다는 것

달팽이는 기어간다는 것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

당신의 손의 온기 생명이라는 것

- 다니카와 슌타로 <살다> (류시화 옮김)


살아 있음의 의미를 평이한 용어로 담담하게 서술해 일상의 일들 속에 진정한 의미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얼마 전 건강에 문제가 생겨 검사를 받고 병원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목이 말라 몇 층을 내려가 물을 사 가지고 왔다. 살아 있기 때문에 아프고 목이 마른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 심연에서 나와 다시 심연으로 들어가는 것. 예이츠는 썼다. "나는 나의 문제가 죽음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알았다. 문제는 삶과 마주하는 것이라는 걸."

일본의 국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1931- )는 부친이 대학 총장까지 지낸 유명한 철학자였으나 학교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대학교도 가지 않았다. 열일곱 살부터 시를 써서 스무 살에 낸 첫 시집 <20억 광년의 고독>으로 크게 주목을 받은 후 현재까지 80여 권의 시집과 시선집을 내면서 전업 작가와 번역가로 살아왔다.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통해 일본 시의 세계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시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시는 느끼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도 실린 이 시는 40년 전에 쓴 작품이지만 2011311일 동일본 대지진 후에 영화배우 사토 고이치, 미나미 가호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낭송함으로써 다시 주목받았다. 사람들이 이 시에 각자 한 행씩 덧붙여 진지한 것부터 유머러스한 것까지 수만 건의 댓글이 파도처럼 이어졌다. 독자들이 한 줄씩 덧붙인 내용은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생각을 전할 수 있다는 것 고사리 같은 손바닥의 온기를 지킨다는 것 통증을 느낀다는 것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 상처받았어도 인간을 좋아한다는 것 누군가를 변함없이 마음에 간직한다는 것 영원이 아니라는 것 끝이 있다는 것 죽는다는 것 하지만 아침을 맞는다는 것

당신의 삶은 아직 쓰고 있는 시다. 그 시의 의미는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을 얼마나 강렬하게 느끼는가에 달려 있다. 당신에게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내리는 '살아 있다는 것'의 정의로 한 편의 시를 써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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