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HOME > 입회안내 > 성소 나눔터  

 
작성일 : 17-10-16 13:15
[우리들의 흔적] 10월 왜관 본원 성소모임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82   추천 : 0  

토요기도방 미사, 
이번 모임에 참석한 성소자들을 위한 강론이었지만, 
벗들 여러분과도 함께 나누고 싶어 사목자의 마음으로 
올립니다.

이제는 스스로 선택하는 봉헌생활로 
한걸음 더 내딛을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응원해주세요.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가을이라는 계절은 사람을 여유롭게 합니다. 날씨가 서늘해지고 외출하기 좋은 날이 되면, 괜히 밖으로 나가 바람이라도 쐬고 싶어지는 요즘입니다. 가끔 수도원을 산책하다보면, 키 작은 꼬마 아이들이 부모님과 손을 잡고 수도원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들을 자주 목격합니다. 그럴 때면, 어린 꼬마 아이의 얼굴에 세상 걱정 모를 그런 행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좋은 추억거리 하나쯤은 가지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늘어나는 책임과 반복적인 일상의 분주함이 부모님과의 관계를 조금씩 분리시켜도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 깊은 곳에 항상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공기처럼 너무 소중하지만, 자주 그 고마움을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여인이 외칩니다. “우리 민족 가운데 당신처럼 훌륭하고 지혜로운 분을 길러낸 당신의 부모들이야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는 성경의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여인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진심으로 외쳤습니다. 그것도 예수께 따로 다가가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두루 있는 가운데 외쳤습니다. 모두가 예수의 말씀에 감탄하며 그분이 전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예수께 대한 찬양을 넘어 육신의 부모들까지 높여주는 용기 있는 발언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난한 사람들이 성경에 예언된 ‘구원자, 메시아’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지, 동시에 예수의 말씀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해서 듣고 있는 성경 말씀은 그 옛날 예언자들이 ‘듣고자 했지만 듣지 못하고 보고자 했지만 보지 못했던’ 말씀이었습니다. 이제는 너무 많이 퍼져 사이비처럼 왜곡하는 현상이 만연하지만, 성경의 한 대목, 한 구절을 대할 때마다 우리의 마음자세가 어떠한지 반성해 보면 좋겠습니다.

한편, 오늘 독서는 악을 저지른 모든 인류에 대한 주님의 징벌적 심판과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착한 백성에 대한 구원의 소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두 가지 짧은 구절을 기억해볼만 합니다. 수확 철이 무르익었다고 말씀하시면서도 그것은 선을 행한 이들에 대한 보상으로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악이 크다.’라는 구절로 마무리되는 12절이고, 예루살렘의 피를 되갚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주님은 시온에 머무른다.’라는 구절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20절입니다. 이 두 구절은, 예루살렘을 괴롭힌 이방인들에게 수확의 때가 되어 징벌로써 복수하시는 하느님의 모습, 반면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보호자로 자처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구분점이 바로 그분의 ‘율법’을 듣고 지키는 것, 다시 말해 ‘말씀’을 듣고 행동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하느님이 어떻게 다가가시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말씀’은 믿음 없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실행하는 이들이 바로 하느님의 백성이자, 그분께서 보호해주시는 대상이며, 주님께서 머무르시는 시온산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이 바로 하느님의 백성이 되도록 우리를 초대하셨으며, 우리는 그 초대에 응답한 사람으로 거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 시대에 청년들은 가문의 영광이 되고자, 혹은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만한 사람으로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부모님의 원의를 곧 나의 원의로, 그분들의 행복을 곧 자기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육신의 관계 그 이상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지상에서의 효도가 중요합니다만, 나의 부모임을 영생으로 초대하는 효도만큼 값진게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그 당시 여인의 거창한 칭송을 받고도 결국 가장 비참한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의 모친 성모님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졌고, 그 십자가의 곁에는 사랑하는 제자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성모님, 두 분 모두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거기에 순응하셨습니다.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침묵도, 바로 ‘믿음’으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가장 큰 실패가 영원한 세계의 가장 큰 성공을 가져왔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살고 존재하는 이 세계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때문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을 위해 봉헌과 헌신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진정한 행복을 찾아 얻었으며, 지금도 얻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소중합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혼인보다 더 소중하고 깊은 인연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영원한 차원에서 바라봅시다. 만약 여러분의 부모님들 중 누군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데 방해하려듭니까? 그러면 그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의 부모님들 중 누군가 하느님을 향한 봉헌생활을 반대하며 사회적 명성과 성공을 더 바라고 있습니까? ‘말씀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들과 나누는 진정한 행복’을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거기에 함께하도록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의 부모님들 중 누군가 내 믿음에 대해 의심하거나 폄훼하려듭니까? 그 믿음의 순수성을 보여주십시오. 설명과 대화를 시도하고, 그것이 안 되면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일상 안에 ‘선교’이자, 부모님께 대한 진정한 효도입니다.

일시적인 행복이 육체에서 나온다면, 참되고 영원한 행복은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말씀이 머무는 ‘시온산’으로 변화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우리 각자가 복음의 거울이 되어 그리스도의 빛을 비출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며, 아울러 우리 부모들과 주변 사람들이 나를 통해 반사되는 복음의 빛을 받아 참되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변화될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이 미사를 계속 거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