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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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4-14 13:47
덕원의 순교자 34 : M. 에바 (오이게니) 쉬츠(M. Eva Schutz) 수녀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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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410일 베르리이트에서 태어난 오이게니(에바 수녀) 쉬츠는 툿찡 포교 베네딕도회 수녀원에 입회하여 마리아 에바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녀는 1926830일 툿칭 모원에서 첫서원을 하고 192694일 북한 원산 선교기지로 파견되었으며 1950810일 옥사덕 강제 수용소에서 선종하였다.

한국에서 에바 수녀는 모든 이들과 모든 것을 사랑하였다. 한국 수녀들도 친절하고 상냥했던 에바 수녀를 좋아했다. 그녀는 원산 수녀원에서 세 번에 걸쳐 부원장직을 역임하였고 두 번 수련장을 맡았다. 그 다음 신고산 선교기지에 첫 번째 책임자로 파견되었다. 에바 수녀는 타고난 선교사였으나 신고산에서 심장병을 앓아 활동에 제한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했으며 주어진 기회를 살려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들을 하느님께 이끌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에바 수녀는 원산 수녀원에 파견되어 재봉방과 의복방을 담당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소련 군대가 북한을 점령했을 때, 소련군 장교 부인들이 옷을 맞추러 수녀원에 왔다. 부인들은 에바 수녀의 바느질 솜씨에 감탄하여 수녀원에 많은 주문을 했고 이는 수녀원 재정에 도움이 되었다.

1945년 일본의 항복과 소련군의 북한 점령 이후, 북한 공산당이 인민 공화국을 수립하면서 베네딕도회 선교활동은 막을 내렸다. 19495월 수녀들은 체포되어 수감되었고 몇 달 후에는 북한 옥사덕 근교의 계곡에 위치한 청천의 수용소로 옮겨졌다. 여기에는 덕원 수도원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도 수감되어 있었다. 수용소의 수감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강제 수용소의 수녀 의사 디오메데스 메퍼트의 증언

에바 쉬츠 수녀는 원산 수녀원에서뿐만 아니라 본당에서도 활동했다. 그녀는 세례를 준비했던 한국 여자들과의 교제에 특별한 애착을 가졌다. 그녀는 체포되기 전에도 이미 병약하고 심장이 약했다. 3개월간의 감옥생활이 그녀의 건강을 매우 해쳤고, 또 찌는 듯한 8월의 더위에 수용소로 올라오는 힘든 노정이 또 다른 영향을 끼쳤다. 그녀가 길에서 졸도를 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살아서 올라올 수 있도록 돌보기 위해 수용소에서 불려 내려갔다. 캠퍼 주사를 맞고 나서 그녀는 소 등에 앉아 무사하게 올라올 수 있었다. 그녀는 서서히 회복해서 궁색한 바느질에 전념했다. 계속되는 몸의 부기와 위장 장애 그리고 장 질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1949년 성탄절까지는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있었으나 그 후에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병상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때로는 개천에서의 크나이프식 수욕 요법에, 때로는 약초에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심한 부기에 이어 갑작스러운 탈수 현상이 교대로 일어났다. 마지막 주에 그녀는 심하게 부은 다리 한 쪽을 짚대에 찔렸다. 진물이 밤낮으로 끊임없이 흘렀으며, 예상했던 것처럼 감염이 되었다. 우리한테 있는 어떤 약품으로도 열을 몰아낼 수가 없었다. 810, 그녀는 성 라우렌시오처럼 쇠침대에 누워서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께 바쳤다. 그녀는 베일과 신부의 화관을 쓰고 많은 흰 꽃들 사이에 묻혀 안치되었다.

이렇게 에바 수녀는 옥사덕 수용소에 온지 1년이 안 되어 51세의 일기로 고열과 고통 속에 숨을 거두었다. 한국에서 그는 진정한 선교사로 수도생활을 하였다. 그녀의 무덤은 북한 자강도 강계의 언덕에 이르는 길 가운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