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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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9-04 15:41
[세상에 빛을④] 서울 수도원③ 수도 생활 '하느님을 찾음'
 글쓴이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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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 베네딕도수도원 휴게실은 숭공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한국 전통 양식 가구들로 채워졌다.
 이 아름다운 가구 속에서 독일 출신 수도자들은 기도와 노동 속에서 '쉼'을 얻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수도자들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촬영 시기는 확인할 길이 없다.

 

   '들어라, 아들아. 스승의 계명을 경청하고 네 마음의 귀를 기울이며
어진 아버지의 훈시를 기꺼이 받아들여 보람 있게 채움으로써
불순종의 나태로 물러갔던 그분께 순종의 노고로 되돌아가거라.'
(「베네딕토 규칙서(Regula Benedicti, RB)」 머리말 1~2)

 '하느님을 찾음'(Querere Deum, RB 58,7).

 성 베네딕도회 수도생활의 기본 골격은 이 짧은 한 마디에 다 담겨 있다.
정주(定住, RB 58,17)와 함께 이뤄지는 공동생활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 삶'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영적 여정이다.

 1909년 12월 13일, 원장좌 수도원으로 승격된
서울 성 베네딕도 수도원 또한 교육사업을 위해 한국에 파견됐지만,
공동 전례기도(Opus Dei)와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 손노동(Labor Manum)이라는
수도생활의 근본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보니파시오 사우어 원장신부 또한 극동 최초 성 베네딕도회 파견지인
한국에 '수도회 생활'을 소개하는 것을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다.
사우어 원장신부는 서울 수도원을 자신이 살았던 독일 풀다(Fulda) 수도원처럼
한국 종교생활과 그리스도교 문화의 중심지로 삼으려 했다.

 일단 원장좌 자립수도원으로 승격됨에 따라 서울 수도원은 수련자를 받을 수 있게 됐고
그해 12월 11일 교황청 수도회성으로부터 관면을 받아 시간전례(성무일도)를 시작했다.
시간전례를 하려면 원래 수사신부 8명이 요구됐지만(옛 교회법 규정, 현재는 종신서원자 12명 필요),
서울 수도원은 수사신부 3명과 수사 4명으로 시간전례를 시작했다.

 기도와 더불어 '손 노동'도 시작됐다. 수도자들은 한국어를 익히면서
서울 변두리 동소문 근처 백동(현 혜화동) 낙산 아래 9만9173.6㎡(3만 평) 규모 대지에
수도원을 신축하고 농사를 지었고 빵굽기와 취사를 직접 해결했다.

 1909년 12월과 1911년 초 두 차례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서
수도형제들이 파견됨으로써 서울 수도원 식구는 14명에 이르렀고,
이들이 경리와 농장, 축산 소임을 각각 맡아 수도원으로서 틀을 갖췄다.
회원이 증가하자 1911년 봄 수도원 증축공사에 들어가
그해 7월에는 성당을, 9월엔 성당과 연결되는
3층 규모 새 수도원을 완공시켜 외적으로도 수도원의 면모를 갖췄다.

 이같은 노력으로 1913년 5월 15일 서울 수도원은 대수도원(Abbatia, 아빠스좌수도원)으로 승격됐고
보니파시오 사우어원장은 대원장(Abbas, 아빠스)로 승격됐다.
사우어 원장신부는 그해 6월 모원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서 아빠스로 축복됐다.
1차 세계대전(1914~18) 직전엔 모두 21명으로 늘어났으며,
세계대전 중에도 서울 수도원에선 양계나 양봉을 치기도 했고,
포도밭을 가꿔 미사주를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수도성소는 어려움이 많아 1914년 황 보니파시오, 김 플라치도 등 2명을 시작으로
1921년까지 한국인 지원자가 5명에 불과했다.

 또 서울 수도원 수사신부들은 수도생활을 하는 한편 본당사목도 하려 했다.
당시 서울엔 종현(현 명동)과 약현(현 중림동 약현) 두 본당밖에 없어
백동에 제3본당을 설립하려 했으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반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성 베네딕도회는 함경도로 이전하기에 이른다.
 
 
 

사진제공=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오세택 기자 sebastiano@, 전대식 기자 jfaco@,
[평화신문  2009.06.18]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09-09-04 15:57:56 아름다운글에서 이동 됨]